[특별기획] 미술과 通한 사람들 – 감동으로 하나 되는 예술_권순훤

감동으로 하나 되는 예술

피아니스트 권순훤

피아노를 전공한 내가 미술가와 미술작품을 다루는 책을 쓰게 되기까지,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 있다. 2007년 12월, 런던의 왕립음악학교에 시험을 치르러 간 나는 귀국 전 파리를 방문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미술관 해설을 담당하는 ‘이용규’란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엔 그가 하는 일에 대한 관심보다 파리를 속속들이 아는 친구와 도시의 정취를 한껏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술관을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친구의 말에 오르세 미술관을 방문했다.
전문적인 식견이 있는 것도 아니니 ‘과연 이게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하는 막연한 궁금증으로 작품을 보았다. 작품 감상 방법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르세 미술관에서 마네의 <올랭피아>에 대한 친구의 설명을 듣고 그림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친구는 어떤 직업의 주인공을 그렸는지, 침대 위의 고양이가 내포하는 의미는 무엇인지, 그림 속 주인공의 시선이 누구를 향해 있는지, 그림에 담긴 사회적 분위기와 비판적 어조의 상징 등을 흥미진진하게 설명해 주었다. 또한 고흐의 그림에 보이는 강렬한 붓터치는 고흐의 정신적인 압박감과 심신의 질환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며, 르누아르 그림의 모델은 당시 르누아르의 애인이자, 로트렉과 다른 거장의 애인이기도 했던 누구였다는 점 등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무릎을 탁 쳤다. 클래식 음악도 이와 유사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이 있는데, 이를 공연에서 이야기하면 어떨까? 이 여행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진행하게 된 공연이 ‘미술관에 간 피아니스트’였다. 훌륭한 프로듀서들과 함께 작업한 이 공연은 유료관객 매진이라는 즐거운 기록을 남기며 무척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미술관에서 얻은 감동이 클래식 공연장에서도 이어지는 모습을 보며, 한발 더 나아가서 이 두 가지를 통섭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이 생각을 실천으로 옮긴 저서가 얼마 전 출간된《 나는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다.
spec5왜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릴까. 나는 이 두 예술가가 가진 ‘미완의 사랑’에서 힌트를 얻었다. 클림트와 에밀리 플뢰게, 베토벤과 줄리에타 귀차르디에. 클림트는 동생의 처형이던 에밀리 플뢰게와의 이룰 수 없던 사랑을 <키스>라는 작품으로 완성했다. 이 그림은 두 남녀가 절벽에서 불안하게 키스하는 장면을 담았는데 남성은 여성의 입술에 입을 맞추지 못하고 볼에 키스를 하며, 여성 역시 불안한 표정으로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두 사람이 처한 당시의 상황이 보이는 듯했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 이 작품을 다르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감상자로서 예술작품을 느끼는 데 ‘감동하는 마음’이 중요하기에 감상의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편 베토벤의 사랑 이야기와 그가 작곡한 <월광 소나타>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베토벤이 당시 만났던 명문가의 소녀인 줄리에타 귀차르디에와의 사랑의 감정이 녹아있는 곡으로 베토벤은 그 소녀에게 이 곡을 헌정하기도 했다. 베토벤은 음악가로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지만, 당시 음악가라는 직업의 사회적인 위상이 귀족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기에는 힘든 위치였다. 월광곡에는 베토벤 스스로 명문가의 자제인 줄리에타와 정말로 결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유명한 피아니스트였음에도 경제적인 풍요, 사회적인 배경도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 고민하는 여러 감정이 녹아 있다. 특히 1악장에는 이러한 베토벤의 암울한 정신적 고뇌가 녹아 있다. 그리고 이 곡이 완성될 때쯤 줄리에타 귀차르디에는 집안의 뜻을 거역하지 못하여 다른 귀족과 결혼을 했다. 베토벤도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3악장은 그 분노를 담아 작곡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3악장은, 과연 이 악장에 <월광>이라는 제목이 가당키나 한가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모든 예술은 ‘감동’이라는 조그마한 ‘점’이 되는 곳에서 최후에 조우한다고 말하곤 한다. 미술, 음악, 영화, 공연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의 최종 목표는 ‘감동’이다. 또한 그런 ‘감동’ 뒤에는 그 작품을 만들어낸 예술가들의 삶이 녹아들어 있다. 나는 작가의 삶과 시대적인 배경을 통해, 새로운 재미와 감동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미술 속 이야기를 들으며 음악가의 삶을 떠올리고 음악인으로서 음악을 다양한 각도로 이해한 듯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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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훤은 피아니스트, 네오무지카 대표, 서울종합예술학교 겸임교수로 그의 이름 뒤에는 많은 타이틀이 따른다. 가수 보아의 큰오빠도 그의 타이틀 중 하나. 선화예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영국왕립음악원에 합격했으나 전문 피아니스트가 되기보다는 클래식 음악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길을 선택했다. 다양한 장르 간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