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미술과 通한 사람들 – 고양이를 부탁해_고경원

고양이를 부탁해

고양이 전문기자 고경원

‘길고양이’ 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다. 도시의 무법자, 혹은 달갑잖은 불청객. 언론매체에서 길고양이 뉴스를 다룰 때 묘사하는 방식은 대개 그랬다. 사람들은 흔히 사진이 진실만을 기록한다고 믿지만, 어떤 관점으로 편집되느냐에 따라 사진의 메시지는 달라진다.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기자로 일하면서 편집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경험했기에, 부정적인 필터를 거쳐 편집된 길고양이가 아닌,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웹진 기자로 일하던 2002년 여름부터 길고양이를 찍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길에서 만나는 고양이들이다 보니 꼬질꼬질한 얼굴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세상모르고 곱게 자란 집고양이보다 고단한 삶을 의연하게 이어가는 길고양이들이 내겐 더 마음에 와 닿았다. 그 감정은 단순한 연민이기보다,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동지를 발견했을 때의 연대감에 가깝다.
고양이에게 별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내 사진이 별 감흥을 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고양이 사진을 찍는 이유가 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길고양이의 삶을 더 생생하게 전하니까. 그리고 그 사진이 무심했던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 모르니까. 거리의 고양이에게도 사연과 감정이 있고, 소중한 삶이 있음을 눈으로 보게 된다면 생명의 무게가 좀 더 묵직하게 와 닿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찍은 길고양이 사진은 1인 미디어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catstory.kr)에서 공유되며, 단행본으로 제작되어 오프라인에서도 독자들과 만난다. 첫 책《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갤리온, 2007)를 펴낼 때만 해도 길고양이를 주인공으로 다룬 한국 작가의 사진 에세이가 전무했기에, 출판기획자로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보람이 있었다. 최근에는 지난 10년간의 길고양이 관찰기를 모아《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앨리스, 2013)을 펴내기도 했다.
고양이라는 소재는 다양한 분야와 접목될 때 이야기가 더욱 풍부해진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고양이와 여행, 예술 이야기를 접목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2007년 여름부터 ‘세계 고양이 여행’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고양이 여행자의 눈으로 각국의 애묘(愛猫)문화와 고양이 명소를 소개하는 작업인데《 고양이, 만나러 갑니다-행복한 고양이를 찾아가는 일본 여행》(아트북스, 2010)은 그 첫 번째 결과물이다.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공존’이라는 주제가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올 수 있도록, 일본 외에 타이완, 스웨덴, 프랑스 등 다른 나라의 고양이 여행기도 순차적으로 쓰고 있다.
spec12고양이를 작품의 소재로 삼아 창작하는 작가들을 인터뷰하고 작품세계를 알리는 것도 요즘 주력하는 일 중 하나다. 고양이를 사랑한 예술가의 작업실 탐방기《 작업실의 고양이》(아트북스, 2011)가 그것이다. 최근에는 순수예술 작가뿐 아니라 고양이 만화를 그리거나, 길고양이를 위한 제품 디자인을 하는 분들도 인터뷰하고 있다.
길고양이를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동물운동가처럼 활동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 고양이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꾸준히 한 목소리를 낼 때, 길고양이 문제는 동물운동의 영역에 갇히지 않고 사람들 사이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2009년 9월 9일에 시작한 ‘고양이의 날’ 기획전도 그런 마음을 담은 것이다. ‘고양이 목숨은 아홉 개’라는 민간 속담이 있지만, 그 말이 무색할 만큼 길고양이들의 삶은 짧고 고단하기만 하다. 1년에 하루만이라도 그들의 생명을 생각하는 날이 있기를 바라며 9월 9일을 ‘고양이의 날’로 삼아 매년 기획전을 열고 있다. 9월 9일은 고양이의 강한 생명력을 뜻하는 아홉 구(九)와, 고양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오랠 구(久)의 음을 따 정한 날이다. 또한 동음이의어인 구할 구(求)의 뜻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 자비로 진행하는 행사이다 보니 예산이 빠듯해 무상대관이 가능한 전시장을 섭외하는 게 가장 어렵지만, 올해도 뜻 맞는 분들을 찾아 나설 예정이다. ●

고경원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고 2001년부터 웹진 및 잡지기자로 일했다. 2002년부터 여름 길고양이의 삶을 글과 사진으로 담기 시작했다. 고양이와 관련된 저서로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하다》 《고양이, 만나러갑니다-행복한 고양이를 찾아가는 일본여행》 《작업실의 고양이》등이 있다. 국내외 고양이 문화와 길고양이 이야기를 그녀의 블로그 ‘길고양이 통신’에서 자세히 만나볼 수 있다. 블로그: http://www.catsto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