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동아시아의 꿈을 담은 전시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리는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전>은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이상향을 주제로 한 작품을 한데 모았다 각국의 대표작을 한자리에 모았다는 것도 큰 의미가 있지만 동일한 주제의 작품을 나라와 문화권과 연계해 비교하며 볼 수 있다는 점도 이번 전시가 가진 의의라 하겠다.

박은순・덕성여대 미술사학과 교수

뜨거운 폭염으로 심신이 수고로운 한여름을 맞아 많은 사람이 몸과 마음의 피로를, 삶의 피로를 덜어낼 휴가를 꿈꾼다. 멀리 떠나는 휴가가 아니더라도 이 여름 행복한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고 하여 마음이 설렌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때로는 예술에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담아왔으니,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하는 특별전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는 한중일 선조들이 마음속에 품어왔던 이상향에 관한 전시이다. 이 전시는 한중일을 대표하는 100여 점의 산수화 작품을 모아 비교, 전시하면서 동아시아 사람들이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 감상하고, 이루어온 예술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게 될 것이다.
이번 전시는 특히 세계 최고의 미술관 중 하나인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소장된 중국회화 명품을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최초의 기회라는 점에서 더욱 기대된다. 또한 중국회화 소장품으로 유명한 상하이박물관 소장 작품도 여러 점 전시되며, 일본의 대표적인 국립박물관인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일본작품들도 전시되어 유사한 주제를 다룬 한중일 삼국의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보는 의욕적인 기획이자 국립중앙박물관이 성숙해가는 모습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이 전시는 대규모의 전시답게 전체 내용을 일곱 개의 주제로 분류하여 진행하려고 한다. 이 글에서는 각 주제를 따라 가면서 주요한 작가와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 내용을 간단히 살펴 보고자 한다.
먼저 첫 번째 주제는 ‘이상향으로 가는 길’이란 개념으로 전시의 프롤로그가 될 것이다. 한중일 삼국에서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시서화 및 각종 시각예술품을 통해서 이상향에 대한 염원을 담아내는 전통이 형성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백제에 만들어진 <산수문전>과 작품을 통해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산수문전>에는 고대의 이상적인 산수 표현을 대변하는, 세 봉우리를 가진 삼산형의 산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공간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공간은 아마도 신선들이 살았던 봉래산이자 현존하지 않을 것만 같은 아름답고 영원한 이상향에 대한 개념을 시각화한 대상일 것이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시작된 이상향을 시각화하는 전통은 회화작품을 통해서 꾸준히 이어지면서 한국 특유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화가 김홍도(金弘道)는 풍속화가로 유명하지만 유명한 고사나 문학작품을 주제로 한 작품도 자주 그렸다.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는 세상사를 벗어나 근심 걱정 없는 삶을 살고자 하였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평범하면서도 이루기 어려운 꿈에 대한 이야기를 구체화해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사람들이 꿈꾸었던 방식대로 이상향을 시각화하는 전통이 존재하였다.
두 번째 주제는 사람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장소들을 더욱 이상화해 그려 늘 감상하고자 하였던 작품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경향을 대변하는 주제 및 작품은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이다. <소상팔경도>는 중국 최대의 호수인 동정호(洞庭湖)로 흘러들어가는 여러 물줄기 가운데서 가장 이름난 절경이었던 소수와 상수가의 아름다운 경관을 담은 산수화이다. 소상팔경은 소수와 상수 주변 이름난 경치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여덟 곳의 경치를 선별하여 이르는 것으로 중국 후난(湖南)성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다. 필자는 어느 해 더운 여름 이 여덟 곳을 답사한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 남한만한 면적의 후난성 전역을 8일에 걸쳐 버스로 답사하면서 빡빡한 일정으로 벅찼던 기억이 난다. 즉, 이 아름다운 여덟 곳은 실재하는 장소들이지만 차도 없던 그 옛날 이 장소들을 방문하고 감상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이 아름다운 명승 금강산 여행을 꿈꾸면서 금강산도를 그리고 감상하였던 것처럼 중국사람들도 <소상팔경도>를 그리고 감상하였을 것이다.
중국에서 11세기경 그려지기 시작한  <소상팔경도>는 특히 문인계층에게 선호되면서 후대까지 비교적 꾸준히 제작되었다. 중국에서 그러하였듯이 소상팔경은 시문(詩文)의 주제로도 선호되었다. 따라서 <소상팔경도>는 시화 (詩畵)일치를 대표하는 산수화의 주제이기도 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명대의 대표적인 문인화파인 오문화파(吳門畵派)의 대가 문징명(文徵明)이 그린 <소상팔경도>를 감상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상팔경도>는 고려시대 11세기 중엽 이후 소개되면서 꾸준히 애호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소상팔경은 꿈에서만 갈 수 있는 이상향이었다. 중국 사람들에게 명승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선 그야말로 이상향이었던 것이다 그래선지 <소상팔경도>는 어쩌면 중국에서보다 우리나라에서 더욱 많이 제작, 감상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도 15세기 이후 19세기까지 <소상팔경도>는 관념산수화의 대표적인 주제로서 지속적으로 제작, 감상되었다. 그리고 이상적인 명승을 대변하는 소상팔경의 전통은 18세기 진경산수화의 대가 정선이 한양 장동의 아름다운 팔경을 그린 <장동팔경도(壯洞八景圖>까지 그 여맥이 이어졌다.
세 번째 주제는   ‘현인이 놀던 아홉굽이, 무이구곡도’이다. 무이구곡(武夷九曲)이란 남송대 주자학의 창시자 주자(朱子)가 중국 푸젠(福建)성에 있는 명산인 무이산에 은거하면서 아홉 굽이의 물줄기를 구곡이라 명명한 것에서 유래된 개념이다. 조선시대는 성리학의 시대였고, 주자는 성리학의 연원이 된 신유학, 주자학의 창시자로서 지속적으로 존경받았다. 성리학과 그 시조인 주자에 대한 존경은 주자가 살던 무이구곡을 본따 이이(李珥)가 황해도 은거지에 고산구곡(高山九曲)을 설정하거나 주자가 지은 <무이구곡가>를 본따 <고산구곡가>를 짓는 등 특히 16세기 이후 조선 선비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무이구곡을 그린 <무이구곡도>를 본따서 조선에서도      <무이구곡도>를 그리는 일이 이어졌다. 중국에서는 의미있는 명승의 실경으로서 <무이구곡도>가 그려졌다고 한다면 조선에서는 이상적인 학자 주자가 살던 이상적인 장소로서 무이구곡에 대한 상상과 흠모를 전제로 그려지고 감상되었던 것이다. 즉, 시적인 영감을 일으키는 명승으로서의 <소상팔경도>와 또 다른 맥락에서 성리학의 이상향으로서의 <무이구곡도>가 존재하였다.
1592년 선비화가 이성길이 그린 <무이구곡도권>, 16세기에 제작된 필자 미상 <주문공무이구곡도>, 1915년에 제작된 채용신의 <무이구곡도> 등은 조선시대 성리학적 관념의 이상향으로서 무이구곡에 대한 열망과 흠모를 담고 있다. 또한 중국 청나라 때의 정통파 문인화가 왕휘가 그린 <무이첩장도(武夷疊嶂圖)>는 위의 작품들과 달리 단폭에 그려진 작품으로서 중국과 조선 무이도의 공통점과 상이점을 비교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죽주거

포기하지 않은 꿈
네 번째 주제는 ‘태평성대를 품은 산수’로서 시대를 초월한 이상으로서 훌륭한 정치가 이루어진 태평성대에 대한 이상을 담은 작품들이다. 이러한 이상은 때로는 현실적인 실경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그러한 시대에 대한 꿈을 담은 관념적인 산수화가 될 수도 있다. 18세기에 제작된 두 작품은 대조적인 두 가지 경향을 보여준다. 궁중에서 활동하던 화원들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태평성시도  (太平城市圖)>는 왕도정치가 이루어진 시절 번성하는 수도에서 살고, 노동하고 즐기던 백성들의 삶을 이상화해서 표현하였다. 그려진 건축물과 사람들의 모습은 중국인지 조선인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결국 가장 평화로운 시절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구가하는 백성들의 모습과 사회적 환경을 시공을 초월한 모습으로 표현한 풍속화이자 산수화이다. 이러한 작품이 정치적, 사회적 이상을 좀 더 현실적인 방식으로 재현하였다고 한다면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는 무궁하게 펼쳐지는 아름다운 자연의 경관을 모든 상상력을 다 동원하여 이상향에 대한 최대한의 가능성을 펼쳐본 작품이다. 이처럼 조화롭고 아름다운 경치를 누린다는 것은 곧 가장 이상적인 삶이고, 그러한 삶을 누린다는 것은 곧 태평성대의 도래를 통해 현실 속의 이상향을 만나는 것이리라. 18세기 말 정조연간 최고의 산수화가로 이름이 높았던 이인문(李寅文)은 당시 사람들이 꿈꿀 수 있었던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자연경을 창조하였다. 이 대작 속에는 당시 유행한 남종화(南宗畵)뿐 아니라 북종화(北宗畵)의 다양한 소재와 기법이 총체적으로 동원되었으며, 안정되고 번성하던 정조연간의 시대적 자신감과 예술적 수준이 성공적으로 담겨 있다.
다섯 번째 주제는 ‘자연 속 내 마음의 안식처’로서 자연 속에서 은거하는 이상적인 삶을 다룬 작품들을 전시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주제를 대표하는 화제로 <귀거래도(歸去來圖)>는 중국 육조시대의 유명한 시인으로 은거하는 삶을 구가하였던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유래했다. 명나라 초에 제작된 작자 미상의 <귀거래도>는 중국에서 제작된 <귀거래도>의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참고가 된다. <귀거래도>는 조선 초부터 말까지 꾸준히 제작되면서 조선 선비들의 이상을 담아냈다. 또한 19세기에는 전기(田琦)의 <매화초옥도>와 이한철(李漢喆)의 <매화서옥도>에서 확인되듯이 중인 여항화가들이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를 자주 그렸다. 이 또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는 시절, 즉 겨울로 은유되는 시절에 깊은 산중에 은거하며 자신의 뜻을 펼 날을 기다리는 은자의 삶을 재현한 화제이다. 여항화가들은 조선시대 신분제도의 한계에 갇혀 뜻을 펼칠 수 없었던 중인의 고뇌를 이러한 화제를 통해서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여섯 번째 주제는 ‘도가적 세계관 속 이상적인 산수’이다. 도가적 이상을 잘 반영한, 가장 애호된 화제는 <도원도(桃源圖)>였다. 도원도는 도연명이 지은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유래된 화제로서 현실 속에서 발견할 수 없는, 평화롭고 안락한 삶을 사는 도화원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복사꽃이 활짝 핀 아름다운 도화원의 경치를 부각시켜 그리거나 현실과 유리된 장소로서 도화원을 그린 작품이 조선시대 내내 제작되었다. 물론 중국에서도, 또 일본에서도 도화원은 꾸준히 재현되었다. 불교에서 서방극락정토가, 기독교와 천주교에서 천국이 이상향이라고 한다면 한중일 동아시아의 선조들에게는 도화원이 그러한 이상향에 해당하였다.
중국화가 정운붕의 <도원도>와 20세기 초 일본화가 도미오카 데사이가 그린 <무릉도원도>, 조선 초 화원 안견(安堅)이 그린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그리고 19세기 화원 안중식(安中植)이 그린 <도원문진도(桃源問津圖)>는 곧 그러한 곳에서의 삶을 동경하는 뜻을 담은 작품들이고, 동시에 어쩌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에 대한 열망, 혹은 그러한 이상향을 현실 속에 이루고 싶은 소망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한 꿈이란 현대인이 꿈꾸는 삶과 그리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이처럼 더운 복날 따사롭고 기분 좋은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복사꽃이 활짝 핀 시절은 그저 먼 꿈이야기만 같다. 도원도를 보면서 우리는 언제나 꿈을 꾼다. 언젠가는 나도 그러한 곳에 살리라는.
일곱 번째 주제는 에필로그로서 ‘현대미술 속 재해석된 이상향’을 재현한 작품들이다. 이상향이란 시대를, 국적을, 민족을 초월하여 인간이 꿈꾸는 파라다이스이다. 선조들이 지녔던 이상향에 대한 소망은 시대를 초월하여 20세기, 21세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련한 봄날을 그린 이상범의 작품 속에, 낙원을 꿈꾼 백남순의 작품 속에, 순진무구한 동심의 세계로 표현된 장욱진의 풍경에도 이상향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다. 시대와 국적을 초월한 인간의 꿈이 시대적 경향을 통해서 변화된 채로, 그러나 그 본질만큼은 영원히 변치 않은 채로 우리의 눈 앞에 펼쳐져 있다. 꿈을 포기하지 않은 한 이상향에 대한 우리의 시각화는 멈추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견하면서 전시장을 나오게 될 것이다. ●

도원문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