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이우환 작업이 벌이는 관객과의 끊임없는 대화

성하(盛夏)의 계절을 맞은 베르사유는 따가운 햇살로 가득했다. 2013년 유럽을 휩쓴 이상 고온 현상이 낯설지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유럽 특유의 쨍쨍한 햇살도 강렬했다. 그 아래 베르사유궁을 마주하고 선 이우환의 <관계항-베르사유의 아치(Relatum-L’arche de Versailles)>의 은색 호(弧)가 유난히 반짝였다. 프랑스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외관을 대표하는 베르사유궁과 이우환의 아치는 과거와 현재, 화려함과 단순함, 서구와 동양 등 대립되는 다양한 요소가 마치 기싸움을 벌이듯 마주서 있었다. 폭 15m에 이르고, 높이 11m에 이르는 이 아치는 양 옆의 바위에 기댄 것처럼 세워져 있었고 베르사유궁의 정원으로 향하는 이들의 출입문 같아 보였다. 이미 《르몽드》에 실린 프랑스의 저명한 비평가 필립 다장(Philippe Dagen)과의 인터뷰에서도 밝혔듯 이우환은 “시골 길에서 비가 멈추자 뜬 무지개를 봤다. 그것이 너무 근사해서 언젠가 저것을 모티프로 작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후 기억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그 일을 잊고 있었지만. 그런데 베르사유궁에서 그랜드 커널이 보이는 곳에 서니 예전에 무지개를 보며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무지개를 만들 수는 없지만 아치를 만들면 그 당시 걸으며 느낀 공간에 대한 감동과 기억을 환기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라며 작품의 모티프를 설명했다.
6월 12일 프레스컨퍼런스를 마치고 겨우 시간을 내어 한국에서 온 취재진을 따로 마주한 이우환은 일정에 쫓겨 좀처럼 여유를 갖지 못하는 듯 보였다. 기자간담회 준비로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며 어린아이처럼 손에 꼬치 하나를 들고 나타난 그는 그마저 다 먹지 못했다.
이번 전시에는 총 10점이 베르사유궁 실내외에 설치되었다.
이 전시를 위해 이우환은 50여 회 이곳을 방문했다. 베르사유궁에서 전시한다는 것은 작가의 일생에 단 한 번 올까말까 한 매우 드문 기회임을 알기 때문이다. “베르사유궁은 1973년에 관광차 처음 왔었다. 그때 강한 인상을 받았다. 정원이 인공적으로 완벽하게 다듬어져 있다는 것에 굉장히 놀랐다. 나무를 사각형, 원통형, 구형으로 깎아놓았더라. 그렇게 완벽하게 만들어 놓았으니 나 같은 작가가 개입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환경에서 작품을 하면 자연성이 너무 강해 내 작품이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깐 비자연적이고, 인공미가 강하며, 산업적으로 발전한 공간에서는 내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완벽한 정원을 만든 앙드레 르 노트르가 자신에게 완벽과 또 다른 공간을 열어달라 부탁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그런 르 노트르에 대한 오마주 형식의 작품이 바로 <Relatum-The Tomb, Homage to André Le Nôtre>이다. 이 작품이 놓인 공간은 그간 폐쇄되어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었던 곳으로 이날도 따로 관리인의 도움을 얻어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이우환은 이 작품에 대해 “르 노트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시간의 덩어리처럼 땅 밑에 웅크리고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알프레드 파크망 전 퐁피두센터 관장은 “모든 작품은 신작으로 베르사유궁이라는 공간에 맞춰 작업했다. 물론 베르사유궁의 모든 공간을 사용할 순 없었지만 선택할 수 있는 한 그가 직접 전시 공간을 찾아내어 베르사유와의 대화를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한 “특히 몇몇 작품은 신작일 뿐 아니라 형태와 구조 면에서도 전혀 다른 방식을 띤다. 그런 의미에서 베르사유궁이란 공간이 그에게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했다고 본다”며 이우환의 작업이 베르사유궁에서 특별한 무엇을 만들어냈음을 강조했다.
오픈된 공간에 펼쳐놓은 작품이어서 화이트큐브에서 만났던 이우환 특유의 경건함과 작품 주위를 맴도는 긴장감이 다소 누그러진 듯하다는 기자의 말에 파크망은 “나의 생각은 다르다. 베르사유궁의 환경이 다른 화이트큐브와 다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가 이전에 보여주지 않았던 부분을 증진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Relatum-The Shadow of the Stars>나 <Relatum-The Tomb, Homage to André Le Nôtre>의 경우, 관객은 작품과 개인적 관계를 느끼고 경건한 묵상의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면에서 그의 작업은 갤러리에 놓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관람객의 수가 많고 적음과 무관하게 같은 의미를 띤다. 작업에 사용하는 물질, 작업의 구성과 외부 즉 관람객과의 대화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베르사유궁을 방문하는 이는 하루에 약 2만5000명이라고 한다. 또한 여름 성수기에는 그 수가 10만 명까지 훌쩍 늘어난다고. 그들 모두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우환의 작품을 스쳐지나게 되는 셈이다.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내 이름이나 작품의 의미를 알 필요는 없다.
그저 ‘아 신기하다’ ‘여기 이런 작품이 있네’ 정도의 감흥을 받으면 된다. 언뜻 들어보니 관객들에게서 그런 반응이 있어 좋았다. 내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였다.”
건강을 묻는 마지막 질문에 “엉망진창이다. 허리도 좋지 않다. 정말 쓰러질 것 같다. 그런데 백남준이 그랬듯 아무리 작은 전시도 다음은 없다는 생각으로 열의, 성의와 돈, 생각을 몽땅 다 털어넣는다”라고 답하며 다음 일정을 위해 자리를 떴다.

베르사유=황석권 수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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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베르사유궁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