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세계 미술현장의 새 지형도 London

영국 (6)

영국 (7)

SLAM 페캄 투어 현장_보스앤바움갤러리BOSSE AND BAUM(왼쪽)_credits Bethany Lloyd, 한나배리 갤러리HANNAH BARRY _credits Bethany Lloyd

전통 중심지의 해체 위기
지가은  골드스미스 대학 비주얼 컬처 박사과정

런던 미술계의 공간적 지형도는 크게 세 지역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런던 시내의 서부지역West End과 동부지역 East End 그리고 남부 지역South이다. 이 세 지역을 중심으로 한 미술계 움직임은 영국의 정치, 경제, 사회적 환경 변화를 반영하면서 각 지역의 특성에 부응하는 예술문화를 형성했다.
먼저, 전통적으로 화랑가가 형성돼 있던 중심가는 서부지역의 메이페어Mayfair이다. 런던의 도심에 해당하는  이 지역은 국제적인 대기업의 본사들과 각국 대사관을 비롯해 각종 명품 브랜드 매장이 즐비한 번화한 상업지구 중 하나이다. 코크 스트릿Cork Street에서 듀크 스트릿Duke Street, 알버메르 스트릿Albemarle Street, 본드 스트릿Bond Street까지, 주로 부유한 개인 대표가 운영하는 상업 갤러리들이 일찍이 둥지를 틀었고, 오랜 기간 이름난 딜러와 컬렉터들의 주무대였다. 1925년 개관해 코크 스트릿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어 갤러리The Mayor Gallery나 말보로 갤러리Marlborough Fine Art Gallery와 같은 터주대감 격 갤러리들과 티모시 테일러 갤러리Timothy Taylor Gallery, 가고시안Gagosian, 화이트 큐브White Cube, 하우저 앤 워스Hauser & Wirth, 블레인 서던Blain Southern 등 뉴욕, 베를린, 홍콩 등지에도 지점을 둔 국제적 규모의 갤러리들도 모여 있다. 더불어 이 지역은 현대미술뿐만 아니라 유럽 올드마스터 회화나 조각작품을 집중적으로 거래하는 역사가 유구한 갤러리도 많은데, 콜나기Colnaghi나 애그뉴Agnew처럼 대를 이어 가족 사업으로 운영되는 곳이 대표적이다.
서부지역과 달리 동부지역은 런던에서 가장 낙후한 빈민가였다. 산업혁명 이후 도심의 일자리를 찾아온 이주 노동자들과 각국의 이민자들로 이 지역은 인구 과밀 상태에 이르렀고, 19세기 말까지 가난과 범죄로 악명 높았다. 영국 정부는 이러한 지역 간 빈부 격차와 문화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지역재생사업에 착수했고, 그 일환으로 1901년 화이트채플 갤러리Whitechapel Gallery를 설립했다. 갤러리는 특히 1940~1960년대 유럽과 미국의 새로운 미술을 영국으로 유입하는 진보적인 통로가 되었고, 동부지역의 다문화적 배경과 공생하는 전시 및 교육 프로그램 기획에 힘쓰면서 대표적인 공립미술관으로 자리매김했다. 1970년대에 이르러 독dock이 폐쇄되고 여러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쇠퇴한 동부지역에는 점차 임대료가 저렴하고 공간이 넓은 작업실을 원하던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서부지역의 주류 갤러리들이 주도하는 미술의 고급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혹스톤Hoxton 지역을 중심으로 쇼디치Shoreditch, 마일 엔드Mile End 그리고 해크니Hackney까지 자신들만의 독특한 사회 비판적, 반항적 문화를 형성했다. 이후 실험적 시도를 하는 프로젝트 공간이나 신생 갤러리들도 속속 생겨났다. 이러한 변화는 지역 경제 자체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지금은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 디자인, 건축 등 다양한 분야 예술가들이 밀집한 덕분에 관련 사무실과 상점이 들어서면서 상권이 팽창했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갤러리로는 빅토리아 미로Victoria Miro,  매츠 갤러리Matt’s Gallery, 다문화 시각예술연구소 이니바INIVA 및 비영리 사진예술단체 오토그라프Authograph ABP의 터전인 리빙톤 플레이스Rivington Place, 치젠해일 갤러리Chisenhale Gallery, 셀 프로젝트 스페이스Cell Project Space 등이 있다.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와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사라 루카스Sarah Lucas 등 일명 ‘yBaYoung British Artists’라 불리는 스타 군단의 에너지가 배태된 곳도 이 동부지역이다. 긴축재정으로 영국의 경기침체를 극복한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가 장기 집권하면서 예술 분야에 대한 정책적, 재정적 지원이 현저하게 떨어진 시기, 이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소개할 자구책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다.  창고를 빌려 전시회를 개최하고 사기업의 후원과 대중매체 친화적인 태도로 자발적인 홍보에 임한 이들은 충격적인 형식과 내용의 작품으로 변두리에 있던 영국 현대미술을 국제 무대로 옮기는데에 큰 역할을 했다.
이렇게 동부에서 정점을 찍은 현대미술의 실험성과 열기는 남쪽으로 이어졌다. 테이트 모던Tate Modern과 헤이워드 갤러리Hayward Gallery에서 시작하는 템스강 이남 지역은 특히 골드스미스 대학Goldsmiths College과 캠버웰 미술대학 Camberwell College of Arts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2000년 뱅크사이드Bankside의 테이트 개관을 신호탄으로 남동부 지역의 계획적인 재개발 착수는 동부의 예술적 분위기와 에너지를 버몬지Bermondsey, 페캄Peckam, 데포드Deptford, 그리니치Greenwich로 이끌었다. 이 지역에는 가스웍스Gasworks, 사우스 런던 갤러리South London Gallery, 한나 배리 갤러리Hanna Berry Gallery, 플랫 타임 하우스Flat Time House 등 다양한 성격의 레지던시 및 전시 공간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고, 대학가를 중심으로 신진 작가와 큐레이터들이 기획한 크고 작은 전시와 관련 이벤트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곳 갤러리들은 보다 효과적으로, 조직적으로 관객의 발길을 남쪽으로 돌리기 위해 2010년 ‘사우스 런던 아트맵South London Art Map (이하 SLAM)’이라는 네트워크를 발족했다. 주요 갤러리 위치를 안내하는 온라인 지도 서비스를 운영하며 서로 긴밀한 협력 관계 아래 전시 개막일이나 행사 날짜를 조정하고 권역별로 잘 알려지지 않은 전시 공간을 소개하는 투어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SLAM이 본격 가동되면서 이 지역 갤러리 수가 2배 이상 증가했고 새로운 미술 중심지로서의 활기에 가속도가 붙었다. 주목할 만한 변화 중 하나는 동부의 최전성기를 함께했던 화이트 큐브가 1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혹스턴 스퀘어를 떠나 2011년 버몬지 길목으로 옮겨갔다는 점이다. 동부지역이 상권 팽창으로 진부해져 예전같지 않자 새로운 기운이 움트는 남부지역으로 눈길을 돌렸다는 뜻이다. 한때 갤러리 밀집가로 많은 사람이 찾았던 동부의 바이너 스트릿Vyner Street은 대부분의 갤러리들이 빠져나가 한창때의 열기가 식었고, 예술가들과 영세 갤러리들은 지속적으로 오르는 임대료 시세를 피해 좀 더 깊숙한 동쪽으로, 남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또 하나의 흥미로운 변화는 오히려 갤러리들이 동부에서 서부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30년 넘게 올드 스트릿Old Street에서 입지를 굳힌 빅토리아 미로도 얼마전 메이페어에 따로 지점을 열었고, 터너 프라이즈 우승자를 배출하는 등 동부에서 성장해 명성을 얻은 MOT 인터내셔널MOT International도 뉴 본드 스트릿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런던에 들렀다 작품을 구매하고 바로 떠나는 컬렉터들의 발길을 잡기 위한 갤러리들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기도 하다. 이들이 동부지역까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 뉴욕을 주무대로 활동하는 갤러리 세 곳, 데이비드 즈위르너David Zwirner와 마이클 워너Michael Werner, 페이스 갤러리Pace Gallery가 모두 2012년 메이페어에 새 지점을 열었다. 다시금 예전의 서부지역 부흥기를 연상시키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그 양상은 조금 다르다. 서부지역의 핵심가였던 코크 스트릿마저 거대 외국 자본의 부동산 투자 개발 압박에 못이겨 많은 갤러리가 떠났고, 대신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메이페어보다 근처 피츠로비아Fitzrovia 지역을 선택하는 갤러리가 늘어나고 있다. 2008년 이후 이 곳에 생긴 갤러리는 30곳이 넘는다. 서부의 전통적인 미술 중심지는 해체될 위기에 처한 반면 근접한 지역에서 새로운 움직임으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지역성을 가진 런던의 각 미술 중심지는 이렇게 시기에 따라 주도권을 주고받으며 변화의 역사를 거듭했다. 이러한 변화에는 지역 간 빈부 및 문화 격차, 정부 차원의 문화예술 정책 등 여러 요인이 얽혀 있겠지만, 서부에서 동부로, 동부에서 남부로 이동하는 런던 미술 지형도의 움직임에도 어김없이 상업 자본의 흐름이 두드러지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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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줄리아 알바레즈는 아트 딜러이자 큐레이터. 2001년 골드스미스 대학을 졸업하고 2005년부터 런던 남부지역의 데포드 하이 스트릿Deptford High Street에 위치한 베어스페이스Bearspace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남부지역의 미술 협력 네트워크인 ‘사우스 런던 아트맵South London Art Map’과 그 전신인 ‘데포드 아트맵Deptford Art Map’의 창립자이자 디렉터이다.
사우스 런던 아트맵 www.southlondonartmap.com
베어스페이스 www.bearspace.co.uk

영국 (3)줄리아 알바레즈Julia Alvarez
사우스 런던 아트맵(South London Art Map – SLAM) 디렉터

“런던 남부의 미술지형도가 변화하고 있다”

SLAM의 전신인 ‘데포드 아트맵Deptford Art Map’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이를 SLAM으로 확장하게 된 과정은?
데포드 지역 갤러리 대표들에게 보다 많은 관객 유치를 목표로 서로 협력해 아트맵을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일단 데포드 지역 갤러리들의 연대를 바탕으로 아트맵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고, 관객들도 몰렸다. 지역 갤러리들이 저녁 늦게까지 전시를 오픈하는 ‘데포드의 밤Deptford Lates’을 진행하는 등 공동의 프로그램이 효과를 본 것이다. 《타임아웃TimeOut》, 《가디언Guardian》 같은 주요 매체에서도 아트맵에 주목했다. 그제서야 예술위원회 측이 이를 남부지역 전체로 확장해보자는 제안을 역으로 해왔다. 그래서 뱅크사이드와 페캄의 주요 갤러리 및 스튜디오까지 참여하게 되었고 지금은 버몬지와 그리니치까지 아우르게 되었다. 처음 70곳 남짓했던 참여 갤러리가 4년 사이 180곳으로 늘었다.

갤러리는 10년, SLAM은 4년차 운영에 접어들었는데 그간 남부지역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일차적으로 갤러리 수와 관객 수가 늘었고 거주 예술가 수도 마찬가지다. 10년 전 함께 일한 작가가 모두 동부 지역에 살았다면 지금은 대부분 남부에서 작업한다. 남부에도 ACME나 ASC 같은 대형 스튜디오 건물이 많이 생기면서부터다. 그러나 여전히 갤러리와 아트맵 운영에 여러모로 지원과 생존전략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남부는 앞으로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을 띠게 될텐데, 여기에는 긍정적, 부정적 측면이 모두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그리니치 지역의 대규모 주택 개발에 투자한 중국계 업체는 단지 내 갤러리를 신설하고 SLAM의 그리니치 아트맵 확장을 지원했다. 단순히 지역 내 예술 인프라를 이용하기보다 이에 능동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지역에 유입되는 자금의 흐름이 남부의 아트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새로운 예술 허브로서 남부지역의 강점은 무엇인가? 남부지역만의 예술적 특색도 머지않아 동부지역처럼 상권에 밀려나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없나?
동부지역의 미술 지형도는 화이트 큐브나 데이비드 리즐리David Risley 같은 개인의 영향력을 중심으로 성장한 측면이 많다. 이들이 떠나면 그 영향력도 줄어든다. 5년 전까지만 해도 남부 지역에 이런 규모의 미술 네트워크가 생길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다. 이 네트워크 뒤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사람과 지역 공동체, 예술 사이에 진정한 교감이 이루어지고 있고 서로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도 있다. 이러한 상호 협력이 이 지역의 중요한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부가 앞으로 어떤 변화를 겪으며 성장할지 기대도 된다. 다만, 우리가 지금까지 다져놓은 SLAM이라는 토대가 보다 장기적으로 지속성을 가지고 변화에 대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런던=지가은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