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세계 미술현장의 새 지형도 Paris

프랑스 (7)

페로탱갤러리Galerie Perrotin 본관

파리 갤러리, 수면 아래 백조의 발
심은록  미술비평

오랫동안 여행을 다녀와도 파리는 변하지 않고 늘 그대로인 것 같다. 서울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파리의 갤러리들도 호수 수면에서 유유자적 노니는 백조처럼 그렇게 고상하고 느긋하게 움직이는 것 같다. 적어도 겉모습만이라도 그렇게 보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파리의 갤러리들은 수면 아래 백조의 발처럼 거칠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패션만 유행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루이비통, 에르메스, BMW 아트카 등의 모드에 일조하는 슈퍼스타 아티스트의 동의어가 ‘브랜드 아티스트’라는 것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첨단적 감각을 미처 쫓아가지 못하면, 비록 단단했던 갤러리일지라도 문을 닫아야 한다. 이는 파리 갤러리만이 아니라 전 세계 갤러리의 대부분 상황이기도 하다. 불과 5년 전후로 프랑스의 현대미술 갤러리 지형도가 다시 그려진다. 우선 프랑스 전체의 갤러리 지형도를 보면 다음과 같다. 2013년 6월, 프랑스 문화부에서 발표한 통계(《Culture Etudes》)에 따르면, 2012년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대미술 갤러리는 총 2191개이다. 그중에 1000개가 넘는 갤러리(48%)가 파리에 집중되어 있다. 갤러리들은 파리의  20개 구區 중에서 대부분 3구, 6구, 8구에 위치해 있다. 예술구로 유명한 3구에는 퐁피두센터(국립현대미술관)와 마레지역이 있다. 이곳에는 206개의 현대미술 갤러리가 있으며 젊은 갤러리도 많다. 갤러리의 연평균 매상고는 115만 유로이며, 역사는 평균 16년 정도 되었다. 6구에는 189개의 갤러리가 생제르망 데 프레Saint-Germain-des-Prés, 생쉴피스Saint-Sulpice, 케 데 그랑조귀스탱quai des Grands-Augustins의 전통적인 삼각지대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는 국립미술대학과 2차 세계대전 이후 갤러리 덕분에 유명해진 거리들(뤼드 센, 뤼드 생페르, 뤼드게네고 등)이 있다. 이곳 갤러리들의 연평균 매상고는 190만 유로이며, 이 지역의 갤러리는 평균 23년 정도 되었다. 8구에는 152개의 갤러리가 있다. 이곳에는 특히 고가품 부티크이 많이 들어서 있다. FIAC과 아트 파리Art Paris가 열리는 그랑팔레, 세계적으로 중요한 옥션인 크리스티, 소더비, 아르퀴리알 등도 이곳에 있다. 이곳 갤러리들의 연평균 매상고는 107만 유로이며, 갤러리 역사는 평균 22년이다.
파리의 갤러리들은 프랑스 전체 매상의 86%를 담당하고 있으며, 4분의 3정도(72%)의 갤러리가 1차시장(작품이 갤러리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 및 거래)에 관여하고, 나머지 4분의 1정도의 갤러리가 2차시장(경매와 같은 재거래 시장)에 참여한다.

주요 갤러리의 확장 혹은 소멸
프랑스는 2010년 이래, 갤러리 지형도가 많이 바뀌었다. 2010년 미술계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래리 가고시안의 파리 입성이었다. 파리에는 이미 많은 외국 갤러리가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기에, 또 다른 미국 갤러리가 지점을 내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래리 가고시안은 ‘미술계 최대 거상’이자 ‘미술계 파워 1인자’로 그 영향력이 지대하며, 제프 쿤스, 리처드 프린스, 데미안 허스트 등과 같은 현대 블루칩 작가들을 발굴하는 데 일조했다. 가고시안갤러리(Gagosian Gallery, 4, rue de Ponthieu, 파리 8구)는 프랑스의 중요한 미술 이벤트 중의 하나인 FIAC의 오프닝과 같은 날인 10월 20일 파리 샹젤리제 지척에, 그것도 크리스티 옥션 바로 옆에 갤러리를 개관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2년 뒤, 2012년 10월 FIAC 기간에 미술계의 두 가지 커다란 이벤트가 있었다. 가고시안갤러리와 타데우스 로팍Thaddaeus Ropac 갤러리가 각각 지점을 낸 것이다. 새로운 두 지점에는 공교롭게도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두 지점은 비슷한 시기에, 같은 파리 외곽 93지역(Seine-Saint-Denis)에서 개관하고 첫 초대작가로 안젤름 키퍼를 초청했다. 로팍은 4,700㎡의 새로운 갤러리를 팡탱 (Galerie Thaddaeus Ropac Pantin, 69, av du Général Leclerc, Pantin)에, 가고시안 갤러리는 1,650㎡의 갤러리를 르부르제(Galerie Gagosian, 800, av de l’Europe, Le Bourget)에 열었다. 이 두 지점은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국제공항인 샤를 드골 공항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특히 가고시안은 FIAC이나 중요한 행사를 위해 외국에서 오는 슈퍼리치 컬렉터 전용기들이 이용하는 사설공항인 르 부르제에 있다. 바쁜 컬렉터들은 그들의 전용기로 르 부르제 공항에 착륙해 파리까지 들어갈 필요 없이 작품만 보고 바로 이륙할 수 있다.
물론 평범한 일반 관람객이 자동차 없이 이곳을 방문하기란 쉽지 않다. 가고시안과 로팍의 새로운 두 지점은 파리 본점보다 훨씬 거대하기에 규모가 큰 스케일의 작품들을 선보일 수 있으며, 웬만한 미술관을 능가하는 좋은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큰 규모의 작품을 살 수 있는 컬렉터는 슈퍼리치 컬렉터, 미술관, 부자 재단들이다. 최근 바젤 아트페어에서는 갤러리 부스가 있는 메인 섹터를 좀 더 줄이고, 대신 거대한 설치작업을 보여주는 ‘언리미티드Unlimited’ 전시가 주목 받고 있다. 갤러리의 역할이 중요한 아트페어의 언리미티드 전시나 파리 외곽의 거대한 갤러리들은 대형 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 중국이나 아랍 미술관들, 슈퍼리치 컬렉터들을 겨냥하고 있다.
‘프랑스의 가고시안’이라고 불리는 에마뉘엘 페로탱은 17세부터 갤러리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는 파리에 세 개의 갤러리를 소유한 것을 비롯해 뉴욕, 홍콩에 각각 갤러리를 가지고 있다. 무라카미 다카시나 마우리치오 카텔란과 같은 국제적인 작가를 세계적으로 알렸으며 소피 칼, 장 미셀 오토니엘 등이 이 갤러리에 속해 있다. 가고시안이나 로팍과 달리 페로탱 갤러리는 올해 5월, 두 번째 지점(60 rue de Turenne, 파리 3구)을 본점과 지척인 곳에 열었다. 프랑스 대중매체는 이 오프닝 전시 <GIRL>의 참여 작가보다 큐레이터에 관심을 집중했다. 미국 대중가수 퍼렐 윌리엄스가 특별 큐레이터였고, 신디 셔먼,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소피 칼, 무라카미 다카시 등이 참여 작가였다. 카멜 므누르Kamel Mennour도 본갤러리 지척에 지점(47, rue Saint-André-des-Arts et 60, rue Mazarine, 파리 6구, 2007년 오픈)을 냈다. 아니시 카푸어, 다니엘 뷔랑, 이우환 등 역시 국제적인 작가들이 이 갤러리에 속해 있다.
이처럼 확장을 거듭하는 갤러리도 있지만, 문을 닫는 곳도 있다. 이본 랑베르는 19세에 베니스에서 자신의 갤러리를 처음 열고, 1977년 파리 퐁피두센터 지척에 갤러리(108, rue Vieille-du-Temple, 파리 3구)를 오픈하여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 전파에 주력했다. 60여 년간 갤러리스트로 일한 이본 랑베르는 2014년 12월, 아델 압데세메드Adel Abdessemed의 전시를 끝으로 은퇴한다. 이본 랑베르는 은퇴하는 형식을 취했기에 아쉬움은 있어도 커다란 반향은 없었다. 하지만, 1년 전, 젊고 잘나가던 제롬 드 누아몽 갤러리(Galerie Jérôme de Noirmont, 38, avenue Matignon, 파리 8구)가 문을 닫을 때는 미술계에 충격을 주었다. 제롬 드 누아몽과 에마누엘 드 누아몽 부부는 “갤러리를 운영하기에는 오늘날 프랑스의 정치, 경제, 사회적 배경이 열악하다”고 한탄했다. 일례로 프랑스 현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가 그의 대선공약을 지켜 2012년 5월부터 부유세(연간 100만 유로 수익의 고소득자에게 수입의 75%를 과세)를 시행했다. 이에 따라 많은 부자가 부유세 압력을 피해 가까운 외국으로 국적을 옮기는 리치노마드 현상이 가속화되었다. 부유세가 시행된 2012년, 벨기에 국적을 신청한 프랑스인 수는 4만7000명에 달했다.
<아트바젤> 디렉터를 역임한 사무엘 켈러는 “예술은 자본이 있는 곳에서 발전한다”고 말한 바 있다. 컬렉터들이 있는 곳으로 갤러리가 이전하거나 분점을 내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다니엘 템플랑 갤러리스트(30, rue Beaubourg, 파리 3구)의 부인 나탈리 오바디아 갤러리스트는 1993년 그의 갤러리를 파리에 열고, 2003년 퐁피두 지척에 분점(3, rue du Clotre-Saint-Merri, 파리 4구)을 낸 데 이어 2008년 브뤼셀에 지점을 냈다. 이처럼 프랑스 갤러리 다수가 브뤼셀에 지점을 내거나, 아니면 아예 브뤼셀로 옮겨간다. 프랑스 미술시장은 항상 세계 10대 주요 시장에 속하면서도, 정치경제적으로 복합적인 요소가 예민하게 작용하기에, 그 크기나 전통에 비하면 프랑스 현대미술의 판도는 약한 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루이비통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벨기에 국적취득을 취소한 것과 프랑수아 피노(프랑스 국적)가 여전히 프랑스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프랑스 현대미술의 든든한   양 축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현재 퐁피두센터는  제프 쿤스의 회고전(2014.11.26~4.27)을 개최하고 있음에도,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그의 작품을 한 점도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고 관장 베르나르 블리스텐Bernard Blistène은 말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중요 미술관, 뜻있는 갤러리, 훌륭한 예술가가 아니라, 슈퍼리치 컬렉터나 상업적 갤러리가 예술의 축이 되는 것은 프랑스뿐만 세계 전반적인 안타까운 현실이다. ●

퐁피두센터 앞에서 벌어진 거리 공연

퐁피두센터 앞에서 벌어진 거리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