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광복 70주년, 한국미술 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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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미술특별전> 5.23~8.23 대전시립미술관

“예술과 역사의 동행, 거장들의 세기적 만남”

<광복 70주년 한국근현대미술특별전>이 대전시립미술관에서 5월 23일 개막해 8월 23일까지 계속된다. ‘예술과 역사의 동행, 거장들의 세기적 만남’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전시는 오원 장승업에서 최정화, 이불의 동시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시대마다 뚜렷한 흔적을 남긴 67명의 거장을 초대하여 격렬했던 20세기를 성찰하고, 이중섭, 박수근과 같은 잘 알려진 작품을 직접 감상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한 야심 찬 기획이다. 그간 주목할 만한 한국근현대미술 전시가 주로 서울에 집중되었던 것을 생각할 때 대전에서 마련된 이 대규모 특별전은 한국 근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을 확산시키는 의미 또한 깊다.
한국 근현대미술 전시의 작품 선별과 배치는 그 자체로 지난 20세기를 바라보는 시각과 서사를 만들어낸다. 이번 특별 전시회는 ‘계승과 혁신’, ‘이식과 증식’, ‘분단과 이산’, ‘추상과 개념’, ‘민중과 대중’ 이라는 5개 장으로 나뉘어, 앞의 2개 장은 근대기 전통화와의 변모와 서양화의 도입을 다루고 후자의 2개 장은 6·25전쟁 이후의 흐름을 보여준다. 근대 수묵화는 안중식을 거쳐 이상범의 풍경에서 토착화되었고, 박생광의 강렬한 채색화는 전통의 혁신으로 제시되었다. 고암 이응노의 사실주의, 김기창과 박래현의 파격적인 추상화는 한국미술이 격동의 역사에서도 단절 없이 창안되어 왔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한편 근대기 자아를 표현하고 세계를 인식하는 새로운 시각매체로 유입된 유화가 결국에는 한국의 서정을 구현해냈음을 오지호, 김환기, 박서보 등의 작품을 통해 증명해 보인다. 조각은 오롯이 김복진에게 초점을 맞춘 후 권진규의 테라코타에 집중하는데, 특히 김복진의 1935년 미륵불은 불교조각의 전통과 현대적 감각을 모두 갖춘 한국 근대미술의 정수로 특별한 조명을 받고 있다.
광복 70주년 특집이라는 전시 콘셉트에 비추어 볼 때, ‘전쟁과 이산’은 핵심이 되는 장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심혈을 기울였을 터, 재일조선인 화가 전화황의 1960년 작품 <낙오자>를 핵심으로 송영옥과 월북화가 배운성의 작품이 여럿 출품되었다. 배운성이 독일에서 그린 조선 풍속화 수점은 대작 <가족도>와 함께 관람객들의 큰 관심을 얻고 있는데, 북유럽 전통의 유입에 따른 도상의 특이함, 가족이라는 우리에게 각별한 주제 때문인 듯했다. 전쟁기 이별과 가난의 기억이 새겨진 이중섭, 박수근의 작은 그림에 우리가 한없이 몰입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 이우환의 <조응>을 디아스포라의 공간에 배치한 점도 이전에 볼 수 없는 방식이다. 단색조 회화와의 형식적 유사성보다는 일본에서 모노하 미술가로 활동한 이우환의 역사적 위치를 먼저 헤아린 결과였다.
이러한 미묘한 변화는 전시 후반부에서도 드러나는데, 단색조 회화에 뒤이은 분방한 최욱경 작품의 배치라든지 민중미술의 시작을 홍성담의 <5·18 연작-새벽>으로 압도한 것 등이다. 이동훈과 임동식을 비중 있게 전시에 편입시킨 것은 충청지역 대표 미술관으로서의 역할을 고려한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이 모든 다채로움은 20세기 한국미술사의 정론을 넘으려는 대전시립미술관의 적극적인 시도가 가져온 즐거운 변주였다.
그렇다면 명작을 앞세워 대중성을 담보하고 새로운 서사로 한국미술사를 재편하려는 애초의 의도는 얼마나 달성된 것일까.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이식과 증식’, ‘민중과 대중’ 같은 반복적 대구(對句)가 혼성의 시공간이었을 역사를 이분법의 프레임에 가두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묵은 계승으로, 채색화는 혁신으로 본다거나, 한국 사회의 탈근대성을 민중에서 대중사회로의 진입으로 쉽게 치환해버리는 것 등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식’이라는 용어는 근대미술을 자칫 모방의 역사로 깎아내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정작 전시는 근대기 양화를 신문화의 포용으로 열린 해석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잘못된 작명이 불러온 오해인 듯싶다.
사실 이 같은 시시콜콜한 지적은 전문가의 삐딱함의 산물일 뿐이다. 차분하면서도 알차게 마련된 근현대미술 걸작들은 가족을 동반한 시민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고 있었다. 김달진자료박물관의 세심한 미술교과서 전시도 ‘추억 돋우는’ 코너였다. 그럼에도 ‘2%’ 부족한 것은, 이인성, 변관식, 김환기의 난만한 완숙기 작품이 빠진 것, 동시대 작가 이불이나 최정화 특유의 도발과 요란함을 받쳐줄 전시 스텍터클의 부재였다. 우리가 광복을 기념하는 벅찬 자리에 늘 미술을 빼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술은 외압과 내분으로 격렬했던 우리 근현대사의 산 증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민족국가를 세우기 위해서, 혹은 통일 논쟁으로 부딪혔던 열기마저 사그라져가는 요즈음 광복 70년을 기념하는 한국 근현대미술전람회는 한껏 소란하고 강렬해도 좋을 것이다. ●
김미정 미술사

위 박생광 <무당>(사진 맨 왼쪽) 1961 대전시립미술관 <한국근현대미술특별전> 전시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