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자본주의-신자유주의 그리고 예술의 딜레마

The Soul of Money DOX. Foto Jan Slavik 08

프라하 DOX 현대미술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돈의 영혼> 전시 광경 2016 ⓒ DOX. Photo: Jan Slavik 호세 마리아 카노(Jose Maria Cano)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맨 왼쪽) 캔버스에 납화 187×532cm 2013

자본주의 돈의 민낯

박진아 미술사

지난 2011~2012년 피렌체 팔라초 스트로치에서는 <돈과 아름다움-은행가, 보티첼리, 허영의 모닥불>이라는 제목의 전시가 열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창조된 미술과 아름다운 도시와 문명의 뒤엔 돈과 권력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보여줬다. 지난해 독일 드레스덴 국립박물관에서 열린 <죽은 자들의 슈퍼마켓전전>(2015.3.14~2015.6.14)은 상품을 향한 현대인의 열망을 물신주의라 꼬집었다. 최근에는 독일 바덴 시립 쿤스트할레에서 <좋고도 나쁜 돈-그림역사로 본 경제(Gutes boses Geld)전>(3.5~6.19)이 개막해 고대부터 현재까지 돈이 미술작품 속에서 어떻게 묘사되어 왔는지를 보여준다. 그같은 추세를 몰아 올 초 체코공화국의 프라하 DOX 현대미술센터(DOX Center for Contemporary Art)에서 개막한 <돈의 영혼(The Soul of Money)전>(2.19~6.6)은 현대인에게 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주제로 현대미술 작품들을 전시한다.
체코인들은 그들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웅장한 이데올로기와 거창한 구호는 매번 외부 침략자들이 지배를 정당화하는 구실로 쓴 거대한 속임수였음을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 현대미술센터의 설립자 겸 관장인 레오쉬 발카(Leo? Valka)는 미술관 이름을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유래한 어휘인 독사(doxa)-또는 억견(臆見) 즉, 아무도 반문하지 않고 맹종되는 여론이나 신념-에서 따와 독스(DOX)라 짓고 미술전시회를 통해 우리 안의 억견을 뒤흔들고자 한다. ‘돈의 영혼’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전시에서는 돈이라는 억견을 현대미술 작품들을 통해 조명한다.
과거 유럽의 교권과 궁정 권력자들을 위한 미술에서 나치, 공산주의를 위한 구호와 프로파간다로서의 미술은 모두 권력에 봉사하는 수단이었다. 근대가 동트던 1903년 빈 합스부르크가의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중유럽권 최초의 공공 미술관인 근대갤러리(Moderne Galerie)를 프라하에 설립했다. 오랜 절대주의 통치에 반발하며 유럽 곳곳에서 민족주의가 불거지던 당시, 신세계의 신시대를 준비하며 근대적 개념의 미술관과 화랑을 설립해 문화로 여러 민족과 국가를 달래고 아우르려는 소프트파워 정책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돌이켜 보건대, 인생의 당연지사이자 만능 해결사인 돈을 주제로 한 도전적인 미술전시가 등장한 배경에는, 체코가 지난 한 세기 지구상에서 벌어진 온갖 이데올로기, 정치 체제, 국경 변화의 격동과 수난을 겪으며 헤쳐온 저력이 지탱하고 있는지 모른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패망과 함께 합스부르크 제국이 붕괴되자 체코슬로바키아가 탄생해 그 공백을 메우면서 나치가 침략한 1938년까지 20년 동안 독립을 누렸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체코는 소련 공산주의 체제로 다시 편입됐다. 1989년 동서독의 통일과 함께 슬로바키아와 분리된 후 다시금 중유럽권 독립국가로서 서방세계로 진입한다. 이렇듯 숨 가쁜 근현대 역사를 경험한 체코 공화국은 근대기 공산주의 체제의 유산을 안은 채 2004년부터 유럽연합 정치체제 및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사이서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미술은 창조되고 존재한다. 하지만 그 미술이 교환의 일부분이 되려면 가격이 매겨져야 한다. 미술작품의 가격은 신념, 협상 그리고 어느 정도의 조작의 결과이며 그 시스템을 지탱하기 위해 미술전문가, 딜러, 화랑업자, 큐레이터, 경매인 같은 중개인이 활동한다. 여전히, 아니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미술관 기관과 화랑업계 대다수는 미술시장에 참여하거나 기업의 후원에 의존하며 돈에 대한 억견에 힘입어 작동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덩달아 문화계에서도 돈은 막강한 권력으로 세도를 부린다. 19세기 후반 낭만주의와 더불어 교권과 궁정 귀족에 봉사해 오던 유럽 미술은 드디어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새 기치 아래 권력자에게 봉사하는 미술을 접고 미술가 개인의 자율성과 자발적인 창조력을 주창했지만, 여전히 미술가들은 돈을 가진 후원자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돈이 그 누구도 의문시하지 않는 만능 수단이 된 오늘날, 미술 역시 많은 돈을 가진 자에 봉사하는 시녀로 전락한 게 아닐까? 미술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과 미술작품에 매겨진 가격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나? 권력자 후원의 수혜자였던 근대기 이후 예술을 위한 예술을 외치던 미술가의 위상은 달라졌나? 미술작품에 붙을 가격표는 미술가가 아닌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자들에 의해 결정되고 있지 않은가?
2008년 10월 공식 개장하여 대중관객에게 문을 연 DOX 현대미술센터는 프라하 남동쪽을 끼고 흐르는 블타바 강가 홀레소비체(Hole?ovice)라는 교외에 위치해 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지어졌다 폐허가 된 옛 공장 건물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이 미술관 근처에는 프라하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프라하 국립미술관(Narodni galerie v Praze)이 자리해 있기도 하다.
DOX는 벌써 지난 몇 년 홀레소비체 구역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추세를 이끌며 특히 문화와 영미권 신 라이프스타일을 누리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이 오가는 새로운 힙스터 구역으로 탈바꿈했다. 글로벌 표준형 인테리어로 꾸며진 카페에서는 커피체인 스타벅스와 진배없는 미국풍 커피와 분위기를 팔고, 거리 매장에는 세련된 패션 부티크, 서점, 작은 공연장, 고급 이탈리아 레스토랑들이 속속 들어서며 문화 소비욕구에 맛들인 젊은이들과 해외관광객들을 반기고 있다. 황량히 버려졌던 과거 제국시대의 허름한 공장 건물들은 냉전기 공산주의 시대엔 노동자들의 일터가 되었다가 이제 21세기 미술문화가 기획되고 전시되는 미국식 글로벌리즘 ‘문화 공장’으로 다시 한 번 재탄생하며 호불황이 교체하는 불변의 경제 순환(boom and bust cycle) 원칙과 교훈을 상기시킨다.
<돈의 영혼전>은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이 정의한 돈에 대한 세 가지 시점을 빌려, 즉 첫째 돈을 상업적 용도와 숭배의 대상으로 보는 실리적 시각, 둘째 돈이란 노동의 양을 환산한 심볼이라 여기는 고전 정치경제학적 시각, 셋째 상품의 가격은 장내 공급과 수요의 반영이라 여기는 신고전주의적 시각에 따라 구성되어 있다. 스페인 작가 호세 마리아 카노(Jose Maria Cano)는 캔버스에 왁스를 발라 제작한 초대형 10파운드짜리 영국 지폐 속에 묘사된 영국 여왕의 두상은 환상적으로 반짝이며 비록 한 장의 종이로 보일지 언정 돈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 숭배의 대상이라고 지적한다.
그런가 하면 동독 출신의 큐레이터 겸 컬렉터인 볼프강 셰페(Wolfgang Scheppe)가 직접 기획하고 전시한 설치작 <죽은 자의 슈퍼마켓(Supermarket of the Dead)>은 돈과 럭셔리 상품을 향한 중국인들의 못말리는 물신주의(fetishism)와 무분별한 소비주의를 꼬집는다. 동경하는 물건 모양새를 금은종이로 만들어 태워 날리며 죽은 조상들에게 부와 태평을 빌던 고대 중국문화를 조상숭배와 물신주의의 결합이라 해석한다. 원래의 역사적 맥락은 무시한 채 조악해 보이는 프라다 구두, 삼성 텔레비전, 애플 컴퓨터, 말보로 담배갑, 현금 꾸러미 종이 모형들을 진열해 놓은 싸구려 슈퍼마켓 설치에 마르크스주의 물신론을 적용해 타문화의 제례 문화를 우스꽝스럽고 부조리한 산물에 불과하다고 손쉽게 결론내린 것은 아닐까?
한 장의 종이 위에 미술과 돈의 관계도를 그린다 치자. 그 두 요소 간의 관계선은 흔히 깔끔한 직선이 아닌 경우가 많다. 정치판에서 회자되는 고전적인 농담도 있듯이, 정파란 모름지기 아무도 모르는 제일 복잡한 선이라고 했다. 미술과 돈을 잇는 선도 그에 못지 않게 꼬불꼬불하고 복잡하다. 미술과 돈의 연계는 바로 권력과 정치를 재료로 삼아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메커니즘을 일찍이 깨닫고 어떤 미술가들은 일찍부터 미술시장의 원리를 이용했다. 바로크 시대 거장 피터 폴 루벤스는 일찍이 공장형 아틀리에를 운영하며 그림을 대량 생산했고, 이후 앤디 워홀은 팩토리에서 미술품을 대량 생산해내며 “돈을 버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라고 거리낌없이 말하지 않았던가. yBA 데미언 허스트는 2008년부터 화랑업자의 중개매매 단계를 끊고 컬렉터와 직접 거래를 시도해 화재를 모았다.
이번 전시에서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 표지 로고를 크게 확대한 그림을 선보인 스페인의 호세 마리아 카노는 이미 지난 2008년 <자본주의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Capitalism!)> 제하의 DOX 창립 기념 전시회에 초대되어 전 세계 유명 인사들의 초상을 왁스 엔코스틱 기법으로 그린 회화로 주목받았다. 때마침 바클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은 국빈 방문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카노의 오바마 초상화를 선사했고, 그 사건을 계기로 카노는 별안간 작품 당 수백만 달러를 호가하는 인기화가가 되었다.
카노는 경제지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초상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대로 도용해 자기가 그린 초상인 양 전시하고 이 초상화를 그린 <월스트리트저널> 소속의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을 인용한 사실은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은 상태다. 신문이나 화폐 속의 시각 콘텐츠는 공유물인가? 그렇다면 표절과 인용의 경계는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미술작품에 대한 가격 책정은 정치 권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일 뿐만 아니라 미술관 기관은 현대미술가의 직업적?경제적 성공을 좌지우지하는 결정적인 제도권임을 재입증한 미술계 뒷이야기임에 분명하다.
루마니아 출신 작가 단 페르조브스키(Dan Perjovschi)는 사소한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세상사나 고정관념을 만화풍 드로잉으로 풍자하는 화가로서 특히 최근 유럽 미술계에서 높은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시장 내 흰색 벽면을 스케치북 삼아 글로벌 시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뒷받침된 금융 체제의 부조리를 꼬집은 수많은 드로잉을 선보인다. 하나의 사물에서 다른 사물로 변형(morph)되는 드로잉 속 형상들을 통해서 페르조브스키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규칙과 법안을 바꾸는 것도 마다않는 무자비한 국제 금융시장의 메커니즘을 은유적으로 꼬집는다.
페루 출신 설치작가 호타 카스트로(Jota Castro)에 따르면 그러한 금융시장의 조작 결과는 죽음뿐이라고 암울한 결론을 내린다. 예컨대 그가 이번 전시에 출품한 설치물 <모기지(Mortgage)>는 달러 지폐를 꼬아 만든 참수대와 밧줄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내 집 마련의 꿈을 좇던 무고한 대중이 싼 이자의 대출 유혹에 홀려 갚기 어려운 빚의 늪 속으로 빠지고 급기야 목숨으로나 되갚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실제로 영단어 모기지의 ‘mort’는 죽음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에서 기원했다. 그런가 하면 페르디난도 몰레레스(Ferdinando Moleres)는 비트코인 환전기를 전시장 한구석에 설치하고 21세기 디지털 사회에서 디지털 머니의 시대가 멀지 않아 도래할 것이라고 논평한다.
만사의 금융화 추세와 경제성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억압 속에서, 오늘날 과거 어느 시기보다 많은 억만장자가 탄생했고 또 제3세계 수많은 빈곤층도 절대극빈 상태를 벗어났다. 하지만 돈과 노동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빚어진 금전적 대가의 격차와 불평등의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했는데, 아프리카, 홍콩, 인도 노동자들의 고난과 빈곤상을 고발하는 리사 크리스틴, 이언 베리, 페르디난도 몰레레스, 파울로 파트리치의 사진작품들을 통해서 이 쟁점을 보도한다. 끝으로 이 전시는 조지 오웰의 <1984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브래버리의 <파렌하이트 151>을 인용해 3개의 디스토피아적 미래 사회를 예견한 3편의 설치작으로 암울한 전망을 내리며 마감한다.
미술은 메시지 전달을 위한 수단이다. 미술은 권력자가 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역으로 말하기 꺼려하는 것을 말해줄 수도 있다. 미술작품의 가격은 미술시장이 결정하지만 바로 그 미술시장에 의문을 가할 수도 있다.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미술이 기업의 후원과 금융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지금, 체코공화국의 수도 프라하에 자리한 DOX 현대미술센터에서 오는 6월6일까지 계속될 <돈의 영혼전>은 돈-권력-문화의 관계에 의문을 던지고 재고할 기회를 마련해 준다. ●

P.S. 이 원고는 레오쉬 발카 DOX 현대미술관 관장과의 인터뷰를 주선해주고 동유럽 문화사에 대한 깊은 식견으로 폭넓은 정보를 제공해 준 마리오 갈리아르디(Mario Gagliard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음을 밝힌다.
마리오 갈리아르디는 오스트리아 태생 디자이너, 문화정책자문가, 문필가, 디자인 교육자로 현재 빈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보다 자세한 정보 및 집필 활동은 그의 블로그 www.mariogagliardi.com 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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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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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21세기 패러독스”

레오쉬 발카 DOX 현대미술센터 관장

돈을 주제로 한 미술전시회를 기획하게 된 동기나 이유가 있나?
이 세상에는 미술보다 더 중요한 사안이 많다. 오래전부터 나는 사람들이 돈을 다루는 방식과 그 변천상을 보면서 늘 매력을 느꼈다. 과거 공산주의 시대 공장에서는 현금을 봉투에 넣어 노동자에게 월급으로 주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신용카드를 사용하여 돈의 거래 흔적을 남기는데 나는 그것이 맘에 들지 않는다. 돈은 15세기의 산물이지만 21세기가 된 지금 일종의 패러독스가 되었다. 세상에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충분한 돈이 있다. 과거 나는 소비자를 확보하기 위해 시장들끼리 경쟁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오늘날 소비자조차 상품(commodity)에 불과하다.

당신은 이 미술관의 관장인 동시에 전시회 기획도 직접 진행한다. 한 편의 전시를 기획하고 개막하기까지 얼마나 걸리는가?
야로슬라브 얀델(Jaroslav And?l) 전 예술디렉터가 자리를 떠난 후 내가 직접 기획한다. 전시 준비하는 데 약 1년 정도 소요된다. 나는 과거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서 성장했다. 학문으로 성공하고 싶은 야심이 없었기 때문에 특별한 교육을 받지도, 대학에서 전공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전시회를 기획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미술을 활용해 메시지를 알리는 사회운동가라고 여긴다. 결국 모든 미술은 정치 미술이라고 생각한다.

미술에 대한 당신의 철학이나 견해가 궁금하다.
미술은 우월하다는 지위감이나 미술을 둘러싼 신화는 모두 허튼소리다.
(이 말과 함께 발카 관장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쓴 책 《예술의 음모(The Conspiracy of Art)》를 집어 보여주며 이 책은 자신의 바이블과도 같다고 말했다.) 앞서도 말했듯 나는 스스로를 사회운동가라 생각하며 나에게 미술은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물론 그 목표가 성공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미술 전시 기획만 할 뿐 미술작품을 모으고 소장하는 미술컬렉터가 아니다.

현재 체코의 현대미술계를 간단히 요약한다면?
현재 체코에서 몇몇 소규모의 미술관이 운영되고 있지만 활동이나 성과는 대체로 미미한 편이다. 서구미술계처럼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는 개별 미술가도 별로 없다. 체코 미술가들은 대체로 서구와 동구 서방세계 양쪽 모두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그렇다 보니 이곳 미술인들은 각자의 관심과 이해관계에 맞게 서로서로 도우면서 대체로 눈에 띄지 않게 소규모 단위로 활동한다.
프라하=박진아

레오쉬 발카(Leo? Valka)
1981년 체코슬로바키아를 떠나 호주로 건너갔다가 1996년에 귀향해 현재 프라하에 살고 있다. 호주에서 건설업과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 사업가로 활동하며 성공했지만 그의 진정한 평생 열정은 건축과 현대미술이라고 한다. 2008년 로버트 아페스(Robert Aafjes)와 함께 DOX 현대미술센터를 설립했으며, 현재 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2011년 그는 시각예술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체코 정부로부터 문화부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