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표류하는 국립현대미술관

누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으로 적합한 인물인가?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

“미술계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은 문화체육관광부다. 이에 더해 국립현대미술관장 후보들에 대해 입방아를 찧는 몇몇 미술인이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그들은 겉으로는 미술계의 앞날을 걱정하지만 속으로는 누가 관장이 되면 자신에게 유리할지 저울질하는 처세꾼들이다.”

국립현대미술관장 재공모 소식이 언론 보도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던 날, 한 미술인이 내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답답한 심정을 전했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는 없겠지만 실체도 없이 떠도는 소문을 부풀려 퍼뜨리거나 심지어 악의적으로 가공하는 미술인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훼방꾼들이 국립현대미술관장 선임을 더욱 꼬이게 만들고 첩첩산중으로 몰아가는데 일조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왜 창작의 산실이자 비판적 지성의 공론장인 미술계가 실력보다 학연과 인맥 관리에 열중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이번 관장 재공모 건을 계기로 미술계는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내 편 네 편 가르기’, 내 이익만 좇는 ‘줄 세우기’ 등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큼이나 중요한 또 한 가지는 누가 신임관장으로 가장 적합한가, 즉 관장의 자질과 역할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일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와 미션, 목표는 일반 공공기관이나 기업과 다르다. 따라서 특별한 리더십이 요구된다. 리더십이 부족하거나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관장이 되면 국립미술관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미술계에도 피해를 주게 될 것이다.
국내 유일한 국립미술관장이라는 대표성 때문인지 덕망과 인품을 갖춘 미술계 원로가 차기 관장감이라고 주장하는 미술인들이 있다. 혹은 빼어난 학식을 가진 미술사학자나 평론가, 탁월한 기획력을 인정받은 기획자, 유명작가, 경영마인드가 뛰어난 스타급 최고경영자(CEO), 문체부 고위관료, 심지어 미술계의 히딩크 같은 외국인을 전격 영입하자는 파격적인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들 중에서 과연 누가 책임운영기관으로 법인화를 추진 중인 국립현대미술관의 각종 문제점과 미술관 내부 갈등을 잠재울 수 있는 후보일까?
정답은 없겠지만 이철순 양평군립미술관장의 <예술기관 CEO에게 요구되는 덕목과 사례연구>와 정진우 임보영 류영아의 <책임운영기관장의 리더십 유형이 조직 몰입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관장은 예술기관장을 다음과 같이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이들 중 바람직한 리더는 예술 전문성과 행정 전문성을 모두 갖춘 인물이라고 말했다. 첫째 유형은 ‘공무원 기관장’으로 오랜 공직 생활과 관리직 경험으로 조직 관리가 능하지만 예술적 전문성이 부족해 예술적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둘째 유형은 ‘예술가 기관장’으로 예술가이므로 예술 창조에 관심을 갖고 추진할 것이며, 그 결과 예술적 성과가 기대된다. 반면에 조직관리 경험 부족으로 예술기관 운영에서의 조직 관리는 철저하지 못할 것이다. 셋째 유형은 ‘일반기업 CEO 기관장’으로 대기업 조직관리 경험으로 조직을 잘 관리할 것이 기대되지만 예술적 가치와 수익성의 충돌로 예술적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넷째 유형은 ‘예술경영자 기관장’으로 오랜 예술기관 경험이 조직 관리에 적합할 수 있고, 본인이 예술가는 아니지만 예술 기관에서의 경험은 예술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예술적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정진우 임보영 류영아는 ‘변혁적 리더십’을 책임운영기관장의 자질로 꼽았다. 변혁적 리더십이란 조직 구성원에게 미래에 대한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고 비전을 실현시켜나가는 과정에서 동기를 부여하며 적절한 성취 수단을 제공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예술전문성과 행정전문성, 변혁적 리더십을 갖춘 최적의 인물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다. 차선책은 세계적인 리더십 전문가 존 맥스웰의 조언에 담겨 있다. “위대한 리더는 자신의 리더십 강점 영역을 더욱 향상시키되, 약점 부분은 그것이 강점인 구성원들을 찾아 팀을 꾸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기 관장에 대한 윤곽이 드러난 셈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리더로서의 잠재력을 지닌 인물을 관장으로 뽑고 최고의 미술전문가들을 운영자문위원으로 위촉해 리더의 주위를 채우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