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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열, 황세진 〈생명의 탄생〉 디지털 회화 2013

정문열, 황세진 〈생명의 탄생〉 디지털 회화 2013

인간과 기계의 창의력

정문열 | 서강대 영상대학원 교수

최근 화제가 된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경기는 기계가 인간과 같이 직관력과 창의력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에 본 글에서는 인공지능 기계의 ‘창의력’과 인공지능 기계가 ‘미술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직관력과 창의력은 인간 고유의 능력이며, 기계는 근본적으로 이런 능력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최근에 인공지능 바둑 기계 알파고가 세계적인 프로 바둑 기사 이세돌을 압도적으로 이기자 이런 생각이 흔들리고 있다. 즉 기계도 직관력과 창의력을 가지도록 설계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즉 다음과 같은 입장이 가능해졌다 : 인간은 뛰어난 직관력과 창의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는 인간 고유의 능력만은 아니다. 기계도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의 직관력과 창의력을 가질 수 있다. 인공지능 바둑이 가능하다면, 인공지능 예술도 가능한가 하는 질문도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인공지능 바둑보다는 어렵겠지만, 가능한 길이 있는지 모색해 보고자 한다.

알파고의 영향과 평가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은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필자도 이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전 대국을 실시간으로 시청했다. 이 경기 결과에 대해 도올 김용옥은 JTBC 방송에 나와 손석희 앵커와의 대담에서 “바둑이 아무리 복잡하다고해도 착점의 수가 유한하므로 빠른 연산능력을 가진 컴퓨터가 인간을 이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즉 이것은 근본적으로 불공정한 게임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알파고는 프로그램일 뿐 지능이 아니라고 했다. 어떤 변호사는 알파고가 엄청난 컴퓨터 연산 능력을 이용하여 모든 수를 미리 다 두어보고 승리로 이끄는 수들을 미리 확인한 다음 착수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자신이 둘 수 있는 모든 수와 상대가 둘 수 있는 모든 수의 조합을 다 시도해 본다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두는 것은 바둑의 원리를 마스터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알파고는 진정한 의미에서 바둑을 둔 것이 아니며 이번 경기는 구글이 벌인 사기극이라 했다.

반면에 문병로 서울대학교 컴퓨터 공학부 교수는 《중앙일보》에 ‘알파고가 우리에게 남긴 것’이란 글을 기고했는데 알파고 작동방식에 대한 그의 설명을 토대로 알파고의 착수 추정능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번 대국에서 알파고는 한 수에 평균 1분이 조금 넘는 시간을 썼다. 바둑의 승패가 결정되려면 보통 200수 넘게 진행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사는 현재 상황을 토대로 다음에 두고자 하는 수의 효과, 즉 이 수가 경기를 승리로 이끌 가능성을 추정해야 한다. 자신의 수와 상대의 수에 대한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시도해보는 것은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바둑기사는 오랜 경험과 이에 근거한 직관을 이용하여 착수의 효과를 추정한다. 물론 알파고도 예외는 아니다. 알파고도 수많은 기보를 학습 데이타로 이용하여 착수의 효과를 추정하는 능력을 학습하며, 다른 알파고와 많은 경기를 함으로써 그 능력을 개선한다. 각 착수의 효과를 추정하는 능력으로 보았을 때 알파고가 프로 바둑 기사보다 못하지만, 수많은 컴퓨터를 동시에 이용하는 막강한 계산능력으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여 전체적으로 프로 바둑 기사를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착수의 효과를 추정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추정능력이 없으면 계산능력을 아무리 보강하더라도 평균 1 분 안에 착수의 효과를 평가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알파고의 착수효과 추정능력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직관력과 창의력과 유사한 능력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또한 인간의 직관력과 창의력이 그렇게 신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인공지능의 한계

알파고가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는 입장은 알파고의 작동 방식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하지만 아주 빗나간 평가라 하기는 어렵다. 알파고의 지능이 동물이나 인간보다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이를 몇 가지 점에서 살펴보면, 첫째, 알파고를 비롯한 인공지능 기계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의식이 없다. 예를 들어 중국어를 잘 하는 인공지능 기계가 있다고 했을 때 자기가 중국어를 한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며 따라서 중국어를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알파고와 이세돌 대국을 해설한 프로기사들은 알파고가 두는 어떤 수들이 파격적이고,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며 그런 수를 두게 된 알파고의 생각을 알고 싶어 했으나 알파고는 그런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다. 둘째, 현재 인공지능 기계는 외부 환경에서 발생되는 정보를 획득하는 능력이 없거나 매우 부족하다. 우리는 보통 정보라는 것이 외부 환경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어서 유기체가 이를 단순히 집어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기체가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외부의 신호에 반응하고 행동하는 과정에서 정보가 생성되고 분류되므로 그 전까지 외부 신호는 의미 없는 잡음에 불과하다. 전통적인 인공지능에서는 기계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생성하고 분류해준다. 사실 이 과정이 제일 어렵고, 이것이 해결되면 고급 지능을 구현하는 작업이 간단해진다. 셋째, 현재 인공지능 기계는 주어진 과업은 잘 수행하지만, 주변 환경이 조그만 달라져도 이에 대응하는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 이것은 위에서 설명한 두 번째 한계와 연관이 있다. 이것은 인공지능 기계가 주변 상황에 따라 외부의 신호를 자기에게 적합한 정보로 바꾸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기계는 이 세상에서 생존하면서 진화할 수 없다. 특수한 과업은 거의 인간에 못지않게 수행하지만, 실제 세계에서 생존하는 능력은 원시적인 벌레에도 미치지 못한다.

인공생명

현재의 인공지능 기계는 프로그래머가 제공한 정보를 토대로 특정 과업을 수행하는 능력을 학습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 생명체처럼 이 세계에서 생존하고 사람을 비롯한 다른 유기체와 어울려 살아갈 수 없다. 이를 보완하고자 원시적이지만 생명 현상 자체를 인공적으로 구현하려는 연구 분야가 있다. 바로 ‘인공생명(Artificial life)’이다. 인공지능의 한 지류로 볼 수 있지만 주류 인공지능 연구의 패러다임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대안적 인공지능이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하다. 원시적인 기능만을 갖고 있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생존 가능한 벌레 로봇을 구현하거나 소프트웨어적으로 생명체를 진화시킨다. 인공생명체의 진화는 유전체(genotype)가 돌연변이와 결합해 새로운 유전체로 변화하고 이로부터 발생한 표현체(phenotype)가 가상공간에서 적자생존을 통해 선택되는 과정을 거친다. 인공생명 기술은 당장 실용적인 기계를 구현하기엔 아직 부족하지만, 위에서 지적한 인공지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지능 예술의 가능성

바둑처럼 정의된 문제에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하면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렇다면 인간의 고유한 영역으로 인식되는 예술은 어떠할까? 이 분야는 아직 논쟁거리가 많이 있다. 대표적 이슈는 “기계가 새로운 것을 창출할 수 있는가”, “인간의 미학이 형식화(절차화)될 수 있는가” “작품이 기계적으로 생산될 수 있다면,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등의 문제가 제기된다. 예술작품이 기계적으로 자동적으로 생산될 수 있다면,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예술 창작에 정형화된 문제해결 방식인 전통적인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점이 있다. 그래서 인공지능 예술을 시도하는 작가들은 보다 유연하고 생명체의 능력을 더 잘 반영하는 듯이 보이는 인공생명 기술을 이용하는 경향이 많다. 그 중 대표적인 예가 생성예술이다. 생성예술은 완전히 동일한 개념은 아니지만 인공생명예술, 알고리듬 예술, 시스템 예술 등으로도 불린다. 생성예술에서는 이미지나 형태를 만드는 과정과 시스템 자체를 구현하는데, 이 과정과 시스템 자체를 예술작품이라고 보고 이것이 만들어 내는 이미지나 형태는 예술 작품의 내면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과 시스템은 자율적인 변화를 나타낼 수 있도록 생물 진화 및 발생 과정과 비슷한 방법으로 구현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도 수정란이 세포분열과 이동, 그리고 세포간의 결합을 통해 하나의 유기체로 발생되는 과정을 모방한 이미지 자동 생성 시스템을 구현한 바 있다. 생성예술은 아직 논쟁의 대상이다. 그러나 작가가 작품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은 편견이다. 부모가 자식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한다고 해도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의미가 반감되지 않듯이 작가가 스스로 작품을 생성하는 과정과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작품을 직접 만드는 것과는 다른 즐거움과 신기함을 제공할 수 있다. 전통적인 시각예술에서는 움직이지 않는 물체를 표현했으나 점차 운동이나 움직임 자체에 관심을 가쳐 ‘키네틱아트’가 등장했다. 더 확장하면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어떤 과정과 시스템 자체도 예술창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과정과 시스템은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핵심이므로 인공지능기술의 도움을 받으면 그 완성도가 높아질 수 있다. 따라서 예술 창작의 대상이 이렇게 확장되면 인공지능기술이 예술가의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