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Review] 최인선

성(聖)과 속(俗), 그리고 미술관

캔버스 앞에서 다양한 형식적 실험을 거듭해온 화가 최인선의 25년간의 작품세계를 조망한 전시가 지하 4층에서 3층에 이르는 아라아트센터의 전관에서 열렸다. <최인선의 미학오디세이 25년>(6.5~8.5)이 그것.
초기에 선보인 단색화에서 다양한 색을 끌어들인 근작에 이르기까지 총 4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한 예술가의 예술적 고민뿐 아니라 삶의 고뇌까지 엿볼 수 있는 자리이다.

양은희  미술사

한 화가의 역사를 보는 일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과 같다. 아직 살아있는 화가의 그림을 통해 25년이라는 시간을 보는 일은 각각의 화폭에 구현된 이미지를 통해 아직 결말에 도달하지 않은 진행형의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개인사의 세부를 다 파악할 수는 없지만 그림 속의 여러 풍경, 인물, 정물을 통해 그의 시선을 추측하고, 안료, 색채, 질감을 통해 성격을 보며, 드로잉이나 스케치와 같은 흔적을 통해 그의 사고를 들여다볼 수 있다.
아라아트센터의 전층에 걸쳐 전시되고 있는 <최인선의 미학오디세이 25년전>은 작가가 직접 수백 점을 디스플레이하면서 플롯을 만들고, 연도순이 아니라, 작가가 설정한 개연성을 따라 극적 긴장과 이완을 담은 전시이다. 이 전시는 캔버스 앞에서 25년 이상의 시간을 보냈을 작가의 성과를 보여준다는 목적에 맞게 물질, 질료, 색채, 점, 선, 면, 추상, 구상과 같은 회화의 고유한 요소와 특성이 한 예술가의 정신과 육체를 거쳐 승화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세계를 보여주는 진행형의 영화처럼 보인다. 한 인터뷰에서 그가 “예술을 위한 예술”에 지나치게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한다고 말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마치 숙명처럼 받아들인 사각형의 평면에 충직하게, 그리고 고독하게 지난 수십 년간 전개된 다양한 형식적 실험을 통해 이미지, 사고, 언어의 삼각관계를 보여준다.
이 전시에는 버려진, 거친 물질로 만든 초기 작업에서부터 은은하게 반짝이면서 세련된 표면을 뽐내는 대형 회화작업, 그리고 빨강, 노랑, 흰색 등 원색의 물감을 쌓아 올린 최근의 회화작업까지, 광범위한 작업이 소개되고 있다. 또한 눈이 부실 만큼 다채로운 색채로 채운 회화가 무수히 걸린 전시장 한쪽에 그의 개인적 사색의 흔적이 담긴 종이들도 수줍게 걸려 있다. 최인선의 지난 25년은 치열한 싸움, 예술과의 싸움이었음을 보여준다.
1990년대 초반 나온 <영원한 질료> 시리즈는 물감에 이물질을 섞고, 캔버스 위에 종이를 붙이는가 하면 물감을 두텁게 이겨 바르거나, 때로는 맑은 수채화 물감처럼 흐르게 둔 채 질료의 성격과 가능성을 다루면서 다양한 기법과 양식을 담아내  구체적 이미지를 거부하고 흔적, 움직임에 대한 사고를 통해 회화의 근본을 보여준다. 그 탐색의 과정에서 어떤 목적을 이루어야 하는 의지와 그 의지를 향한 열망을 표명하듯 거칠면서도 감정적으로 물질을 다루고 있다. 그의 작업은 199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보다 정돈된 사고를 보여준다.    <생산되어진 흰색>과 같이 흰색과 회색조의 단색을 주로 사용한 작업들은 은색, 흰색 등 단색의 범위 내에서 미묘한 변화를 포착하는 동시에 추상의 언어를 사색의 공간으로 끌어갔다. 선은 가늘어지고, 작은 흔적 하나도 그의 생각의 파편을 반영하기 시작한다. <움직이는 구조>(1999)를 보면 미니멀한 바탕에 선으로 묘사된 원과 이어진 선들이 나열된 회화로 선들은 마치 그의 머릿속에서 오고가는 사고의 지도를 그린 듯 구역을 나눈 자유분방한 선과 그 위에 시간의 질서를 이식한 것 같은 수평의 직선들이 배치되어 있다.
2000년대 이후 주목할 만한 그의 회화는 스스로 “명제”라고 부르는 <미술관 실내>, <날것의 빛> 시리즈이다. 이 두 시리즈는 아마도 최근에 가장 잘 알려진 작업으로 빛과 물체가 만날 때 그가 얻는 모든 색과 형태를 포착한 작업이다. 이 두 시리즈는 사실 제목만 다를 뿐 소파, 식탁, 싱크대처럼 중산층 가정의 실내를 온갖 점, 선, 면으로 해체한 그림들로서 내용은 거의 대동소이하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그에게 제목은 직접적인 어떤 대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중시하는 주제의 표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의 미술관은 작가가 바라보는 물건이나 풍경을 화폭으로 옮길 때 그의 지각과 사고를 거쳐 비자연적인 색채를 통해 점, 선, 면으로 번역하면서 나온 결과물이다. 다양한 형태와 물감의 영토, 사색을 거쳐 나온 기호의 영역, 바로 그곳이 그의 미술관이다.
그러나 이 전시는 예술가가 예술만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는 것도 보여준다. 그는 예술과의 싸움 이상의 것, 삶을 살아야 하는 실존적 인간의 고뇌와 그 삶 속에서 자신에게 소중한 가치들을 지키기 위한 싸움도 보여준다. 전시된 수백 점의 작업에는 물질과 재료, 형식과 양식에 대한 고민도 들어있지만 유학생활의 소회,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 사랑하는 이들과 살아가는 공간,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가 경배하는 절대자에 대한 생각까지 모두 드러난다.
<로젠달에서 오다>(1996)는 미니멀한 평면에 집, 길, 초원을 시사하는 몇 개의 선과 면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로젠달은 아마도 그가 유학시절 접했던 지역, 뉴욕 주의 로젠데일을 일컫는 것 같다. 뉴욕 주의 한 동네를 사색적으로 표현한 이 그림은 그가 질료와 형식에만 몰두하지 않고 자신이 지나간 공간에 대한 개인적 인상도 소중히 거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상-수평, 수직 속의 집>(2007)은 두 개의 색을 기초로 쌍을 이룬 색면이 표현적인 붓자국으로 처리되었으나 여전히 수평, 수직의 격자무늬 구조를 유지하면서 거대한 집, 혹은 아파트와 같은 건축물을 연상시키고 다시 그 격자무늬 위에 붓질을 하면서 3차원적 집이라는 환영을 파기하고 2차원적 회화로 환원시킨다. 격자무늬의 색면구조들은 그가 빈번하게 사용하는 것이지만 가정을 지키는 ‘집’에 대한 생각을 풀어가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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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되어진 흰색> 캔버스에 유채 2000 설치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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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실내–빛의 들판>(오른쪽) 368×456cm 2011~2013

예술가의 싸움
사색은 예술과 철학이 만나는 지점이다. 이미지와 존재에 대한 그의 사색은 “Formation of thinking,” 또는 “Names of my family make beautiful bridge”와 같은 문장으로 나타난다. 그는 이런 문장을 스탬프로 만들어 그림의 한쪽에 찍는다거나 직접 연필로 써넣어 시적인 화면을 구성한다. 그의 드로잉과 메모에는 “Some where a painting starts”, “malevich bedroom”, “회화= Language”와 같은 문구가 적혀있는데 회화와 언어에 대한 그의 생각의 흔적들이다. 실제로 그는 ‘생각의 형태화’(2000년 9월)라는 메모에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사고의 파편들에 주목하면서 “나는 아주 예민하고 섬세한 손끝으로 사고의 파편들을 화면으로 낚아 올린다”고 썼다. 그는 그렇게 포착된 개인적 사고의 파편들이 그의 회화를 통해 누군가에게 읽힐 “가변적 텍스트”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그는 자신에 사고의 힘에만 의지하는 무모한 현대인이 아니라 속도와 변화의 세계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절대자를 숭배하는 겸허한 존재라는 것도 보여준다. 전시장의 가장 큰 벽에는 성경에서 따온 문구를 넣은 수많은 캔버스가 모여 마치 대형 제단화처럼 걸려있다. 거대한 벽면을 채운 각각의 캔버스에는 “I LOVE YOU O LORD MY STRENGTH”,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와 같은 문구가 삽입되어 있고, 중간 중간에 검은 사각형 추상회화와 거실, 침실의 모습을 보여주는 구상회화가 나란히 배열되어 전시장은 마치 그가 ‘날것’이라고 부르는 세속의 것과 ‘미술관’이라고 부르는 예술적인 것, 그리고 ‘LORD’의 신성함이 공존하는 혼성의 공간을 이루고 있다. 이 혼성의 공간에서 그가 소개하는 절대자의 세계는 쌍을 이룬 직사각형의 색면이 격자무늬로 배열된 위에 고딕체와 같이 강직한 문체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성경의 구절들은 그의 신앙의 얼굴이자 세속의 것, 그의 삶을 지키는 로고스로서 그가 흔들리는 세상을 극복하고 회화를 통해 순수한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구현하려는 열망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그의 전시에서 검은 사각형, “malevich bedroom” 그리고 위의 제단화를 보고 필자는 질문했다. “선생님에게 말레비치는 어떤 존재입니까?” 그는 답했다. “아, ‘말레비치의 방’ 말이군요. 알아두셔야 할 것이 저의 작업에 보이는 단색은 이전의 단색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저의 개인적인 고민… 환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말레비치를 본 것이 아니라 그의 방을 본 것 같은 것이죠.”
말레비치의 비유는 우연한 것이 아니며, 최인선을 이해하는 창문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최인선은 말레비치처럼 추상과 구상을 오고가며, 말레비치처럼 개인적인 삶과 초월적 존재를 회화에 반영한다. 말레비치가 100년 전 검은 사각형으로 재현을 탈피했다는 미술사적 의의를 본 것이 아니라 그가 비대상성의 표현으로서 결국 자신의 종교관, 즉 신의 존재를 표현했다는 겸허함을 본 것 같다. 사실 기호로서의 회화에 도달했던 말레비치는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후에 구상으로 돌아갔지만 검은 사각형은 그의 정신의 핵심이었다. 말레비치는 생전에 검은 사각형의 의미에 대해 질문이 반복되자 결국 그는 “검은 사각형은 나의 죽음의 기호”라고 인정한 바 있다. 1935년경 병석에 눕게 되자 그의 침실은 찾아오는 예술가와 학생들을 맞는 살롱으로 변했다. 자신의 추상과 구상 그림이 잔뜩 걸린 이곳에서 그는 동료 예술가의 시를 듣기도 하고, 자신의 사망 이후에 벌어질 일을 정리하곤 했지만 결국 같은 해 사망했다. 이때 침대 머리맡에 걸려 있던 그림이 바로 검은 사각형이었다. 추상을 개인적인 영역으로 환원시킨 말레비치는 예술가에게 ‘예술과의 싸움’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최인선은 1963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뉴욕 주립대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1989년 관훈미술관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44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중앙미술대전 대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하종현 미술상, 세오 중진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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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것의 빛>(사진 왼쪽) 캔버스에 유채 200×800cm 2008~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