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REVIEW 전소정

삶과 예술 사이가 궁금하다. 작가 전소정은 삶 속에 스며든 예술을 다양한 레퍼런스의 융합으로 표현한다. 문학과 미술, 음악 그리고 사람이 함께하는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울림을 전달한다. 혼재된 레퍼런스가 거미줄처럼 촘촘히 연결되어 만들어낸 내러티브를 마주한 관객은 자신을 바라본다. 그렇다면 작가는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볼까. 작가의 작업을 통해 그가 취하는 예술적 태도를 살펴본다.

보물섬〉Inkjet print 262×350cm 2014(왼쪽) 〈나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Embroidered on fabric 90×70cm 2014(오른쪽) 송은아트스페이스 전시광경

〈보물섬〉Inkjet print 262×350cm 2014(왼쪽) 〈나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Embroidered on fabric 90×70cm 2014(오른쪽) 송은아트스페이스 전시광경

예술가와 예술적 태도

류한승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초창기 전소정의 관심사 중 하나는 ‘내러티브’이다. 일반적으로 내러티브는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건은 어떤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하는 것인데, 소위 내러티브가 되려면 그런 사건들이 시간적 선후관계나 인과관계에 따라 연쇄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미술에서도 내러티브는 낯선 것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역사적 사건, 신화, 전설, 일상적 이야기가 회화, 두루마리 그림, 부조, 스테인드글라스 등으로 시각화한 바 있다. 물론 모더니즘 시기에 잠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그렇다면 사람들이 내러티브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삶을 사는 일이 바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며, 사람 사는 곳에 이야기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종종 자신에게 적용해 그가 보고 느끼는 것이 곧 자신이 보고 느끼는 것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미술의 내러티브(주로 영상)는 소설이나 영화의 내러티브와는 다소 다르다. 이미 많은 영상 작업이 논리적 인과관계를 뒤엎거나 시간적 전후관계를 엉클어 놓으며 비선형적이고 파편적인 내러티브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영상을 중간부터 봐도 괜찮은 것 같다. 그런데 전소정은 하나의 비선형적 내러티브가 아니라 복수의 내러티브를 중첩시키고 있다. 즉 다층적인 내러티브를 구성하는데, 독특한 것은 그중 하나는 작가로 살아가는 자신의 내러티브라는 점이다.
우선 전소정이 눈여겨봤던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일찍이 그는 <일인극장>을 통해 보통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극화한 후 자신이 만든 무대에 그들을 올렸다. 비록 작은 무대였지만 그 무대의 주인공은 그들임에 틀림이 없었다. 무대에 올린 이야기는 허구인 듯해도 실제 이야기였으며, 극이 진행되면서 실제 이야기는 허구처럼 보였다. 연극이 주는 극도의 몰입감이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들지만, 때론 실제의 삶도 그에 못지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전소정에게 많은 영감을 준 것은 ‘엘리스’라는 무용수였다. 2006년 핀란드로 여행을 간 작가는 우연히 숲속에 들어갔고, 친구로부터 그곳에 사는 무용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가 살던 공간을 보면서 그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던 무용수는 자신의 이상을 좇아 자신의 삶을 살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설령 남의 눈엔 거지처럼 보여도. 무용수의 삶에 담긴 예술적 측면이 작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귀국한 그는 숲에서 체험한 것과 무용수에 대한 상상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썼고, 수공예적인 방식으로 무대, 소품, 의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금발의 가발을 쓴 무용수를 무대에 올려 숲속에서 헤매다가 헝겊인형과 춤추게 했다.
무용수를 실제로 만나고 싶었던 전소정은 2009년 그를 찾아 핀란드에 다시 가지만, 이미 그는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하지만 작가는 어떻게든 그를 알고 싶어 그를 기억하는 3명의 친구를 만난다. 흥미롭게도 무용수에 대한 이들의 경험과 기억은 상당히 엇갈렸다. 첫 번째 인물은 숲에서 무용수의 흔적을 보며 그를 기억했고, 두 번째 인물은 무용수의 출생, 이동, 경력 등 정확한 데이터로 그를 기억했고, 세 번째 인물은 엘리스를 기록한 영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 세 가지 내러티브와 자신의 내러티브를 더해 나온 것이 〈Three Ways to Elis〉이다.
엘리스와의 만남을 계기로 전소정은 삶과 예술이 결합된 사람들 혹은 예술가는 아니지만 어떤 경지에 이르려는 사람들을 모티프로 삼아, 역으로 예술과 예술가에 대해 자문하는 작업들을 본격적으로 기획한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일상의 전문가’ 연작이다. 이 시리즈는 지금껏 4번에 걸쳐 총 10편이 발표되었다. 이 작업은 인물의 실제 모습을 담은 영상,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극화된 텍스트, 비전문 성우가 읽는 내레이션, 그와 평행하게 볼 수 있는 문학으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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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개의 방〉 single channel video, stereo sound, color, HD 7분35초 2014

〈열두 개의 방〉 single channel video, stereo sound, color, HD 7분35초 2014

일상의 전문가
가장 먼저 제작된 것은 〈The Old Man and the Sea〉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낚시하는 노인이다. 핀란드에 체류했던 전소정은 가끔 바닷가에서 낚시를 했지만 물고기를 거의 잡지 못했다고 한다. 그때 이 노인이 그에게 여러 조언을 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기다림’이었다. 짧은 순간 그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사실 기다림은 고기를 잡는 사람뿐만 아니라 예술가도 가져야 할 덕목이며, 나아가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덕목이다. 이때 그가 연결지은 문학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이다.
계속해서 전소정은 김치공장의 아주머니, 변검술사, 줄광대, 기계자수사, 간판장이 등을 만나면서 전통과 현대(개별성과 보편성), 내면과의 싸움, 이상과 현실, 자신만의 호흡, 상업과 순수(작품의 유한성과 초시간성) 등의 문제를 고민했고, 동시에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괴테의 〈파우스트〉, 카프카의 〈최초의 고통〉,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프로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같이 보는 문학으로 각각 제시했다.
한편 당시 전소정은 예술가의 덕목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예술하는 습관〉이라는 7채널 비디오를 제작한다. 그는 열정, 성실, 무모함, 우직함, 균형감 등을 염두에 두고 조각 불태우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손에 공을 놓고 움직이기, 성냥개비 쌓기, 물에 비친 달 떠내기, 불 링 통과하기, 평균대 위 걷기 등의 미션을 마련했다. 이것들을 몸소 실현하면서 그는 예술의 생명력과 한계, 주술성과 신기루, 죽음과 불멸, 인정과 부정, 어리석음 등을 느끼게 된다.(이중 2개는 대역)
지난해 말 전소정은 ‘일상의 전문가’ 연작의 일환으로 〈Treasure Island〉와 〈The Twelve Rooms〉를 선보였다. 하지만 과거와는 다른 측면이 나타난다. 명시적인 주인공(해녀, 조율사)과 암시적인 주인공(제주도, 12개의 음)이 함께 등장하며, 하나의 레퍼런스(문학)가 아닌 다수의 레퍼런스(문학, 설화, 인물 등)가 혼재되면서 보다 중층적인 구조를 갖는다. 게다가 이전엔 보통 사람이 가진 예술적 태도로 작가 자신을 되돌아봤다면, 이제는 그 예술적 태도를 재구성하여 예술가가 추구하는 이상을 조심스럽게 표현한다.
〈Treasure Island〉에서 작가는 해녀를 통해 여성, 노동, 기술의 전수 등을 언급했고, 설화에 얽힌 제주도를 신비의 섬으로 상상했으며,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이상의 섬(이어도)을 노래하는 해녀를 예술가에 비유했다. 관련 문학은 차학경의 〈딕테〉와 〈보물섬〉이다. 또 〈The Twelve Rooms〉에서 작가는 무대 뒤 조율사를 무대 중앙으로 옮겼고, 바하, 쇤베르크, 칸딘스키를 통해 12개의 음에 색깔을 입혔으며, 이상적인 음을 찾는 조율사를 궁극의 미를 찾는 예술가에 비유했다. 관련 문학은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이다.
완성된 작품을 가장 먼저 보는 사람은 대부분 작가 자신이다. 그 작품을 보고 작가가 감응을 받지 못하면, 관객이 그 작품을 보고 어떻게 감응을 받을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작품을 보고 작가가 감동하지 못하면, 관객이 그 작업을 보고 어떻게 감동할 수 있겠는가. 전소정은 예술적 태도를 가진 사람을 통해 자신을 바라봤다. 필자는 예술적 태도를 가진 사람을 통해 자신을 바라본 작가를 통해 나를 돌아본다. 만약 관객이 전소정의 작업을 보고 자신을 반성한다면, 그의 작업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이 예술이 존재하는 궁극의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

전 소 정 Jun Sojung
1982년 출생했다. 서울대 조소과와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미디어아트학과를 졸업했다. 2008년 갤러리 킹에서 첫 개인전 이후 6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한국, 프랑스, 독일, 영국 등에서 열린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14년 12월 12일부터 1월 31일까지 열린 〈송은미술대상전〉에 참여하며 제 14회 송은미술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3월 4일부터 4월 4일까지 두산갤러리 서울에서 개인전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