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FACE 2015 김진희

“카메라를 든 김진희가 그녀의 이 시간여행을 동반한다. 미세한 물방울들처럼 솟아나는 속삭임에 따스하고 연한 빛을 비춰준다. 사랑의 행위 후 그녀들에게 남아 있던 말 없는 어떤 시선, 그 잔여에 빛이 가 닿는다. 그렇게 우리는 그녀들의 몸에 채 새겨지지 않은, 혹은 거칠게 새겨진 이야기들과 조우하게 되었다.”

– 김영옥 여성학자, 이미지비평가

 그녀들의 상처, 그리고 남은 이야기

김진희는 이번 송은아트센터 전시 <이름 없는 여성, She>(2014.12.12~1.21)에 <She>와 <April> 연작을 출품했다. <She> 연작이 20대 여성 초상사진을 통해 그들의 불안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면 <April> 연작은 풍경사진에 자수를 넣어 불안을 봉합하고 상처를 치유하려는 의지를 담았다.
작가의 <She> 연작은 텍스트로 감지되는 직접적인 표현 이면에 숨은 어떤 이야기와 분위기 등을 프레임에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관객은 작가의 사진 앞에서 대상이 숨겨놓은 이야기를 궁금해 한다. “제 생각에 인물 사진은 그 어떤 사진보다 강한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물 내면의 다양한 감정과 이야기는 한 장의 사진으로 담아내기엔 그 크기가 너무 큽니다. 그럼에도 제가 계속 인물 사진을 찍는 이유는 무질서의 공식이 인물 안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물 사진을 찍는 작가의 고단함과 그래서 더 하고 싶은 심정이 담긴 답변이다. 실제 그의 프레임에 등장하는 인물이 큰 용기(?)를 내준 지척 간의 인물이지만 그들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며, 그래서 작업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이번 전시와 더불어 이전 작업인 <Wisper(ing)> 연작을 보면 김진희의 작업은 매우 솔직한 작업이다. 특히 젊은 여성을 등장시킨 <Wisper(ing)>과 <She> 연작은 공허하고 불안함 가득한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하거나 아니면 그것을 외면하는 20대 여성의 모습이 자수로 이뤄진 레터링과 함께 프레임에 담겨있다. 그 불안함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것은 프레임이 담지 않은 대상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인물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솔직한 작업이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타인인 제가 그들의 상처를 다 이해할 수 없었다는 고백이 담겨 있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치유의 행위는 반드시 상처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인물들의 불안함을 프레임에 담고자 했습니다.”
초기작과 이번 전시의 차이점은 텍스트가 전면에 등장한다는 데 있다. 초기작의 은밀함이 이번 전시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제시된 것으로 보였다. 철저한 타인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을 포함한 많은 여성이 사회나, 남성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성을 느끼고 경험하고 있음을 말하고자 했다고.
그 과정에서 자수는 작가가 선택한 일종의 치유 방식이라고 고백했다. 자수를 위해 사진에 구멍을 내는 행위가 상처를 내는 것인 셈. 그래서 작업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상처의 흉터를 남기는 과정이다. 같은 여성이지만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한 개인이 삶에서 받은 상처는 아물긴 해도 그 흉터는 남기 마련이다. 이 작업은 최근 작가를 둘러싼 어떤 사건이나 상황이 계기가 된 듯한 인상을 풍겼다. “아무래도, 세월호 사건입니다. <April> 연작이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진도에 가서 보고 느낀 것들을 모티프로 하게 된 작업이고, 인물의 상처를 더 용기있게 바라보고자 생각했던 시점도 세월호 사고 이후입니다.”
작가의 초기 연작 <Wisper(ing)>은 20대 여성의 성(性)에 대한 이야기다. 분명 어떤 내러티브를 갖고 있음을 짐작게 하지만 그것을 속단하기가 조심스럽다. “제 삶의 이야기예요. 보시다시피 설명할 수 없는 무게감이 작업으로부터 느껴지지요. 불특정다수의 20대 여성을 만나 그녀들의 성에 관련된 경험이나 생각, 느낌들을 듣고 그것들을 나의 시선으로 재구성했어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단다. 무엇보다 대상으로서 그들의 마음을 여는 작업이 가장 어려웠을 터이다. 그래서 그들과의 대화는 눈물과 웃음 범벅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녀들이 저를 만나기 꺼려 할수록, 제게 자신의 이야기하는 걸 꺼려 할수록, 카메라 앞에 설 자신이 없을수록 나는 이 작업을 놓을 수가 없어요.”
마지막 질문을 좀 엉뚱하게 해봤다. 스스로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아직 잘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나야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드릴 수 있는 답변은, “김진희는 사진을 주 매체로 작업하는 여성 작가이다” 정도?”

황석권 수석기자

IMG_0055김진희는 1985년에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동 대학원을 중퇴했다. 서울과 도쿄에서 4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또한 한국을 비롯 일본, 중국 등지에서 열린 그룹전에 출품했다. 아이포스 사진비평상(2011)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에서 작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