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FACE 2015 박아람

“전시장에 놓인, 평면 혹은 입체의 작품들은 일곱 개의 형상이 거듭나는 절차, 그 일련의 기제에 의한 것들이다. 일단 이러한 기제를 이해하게 된다면 전시장에 전시된 작품들은 짐짓 태연해 보이지만, 사실은 작가에 의해 계산된 절차들을 품고 있음을 알게 된다.”
– 윤민화 전시기획

명확하지 않은 것에 대한 측량

박아람 작가를 만나 명함을 받았을 때 고개가 갸우뚱거렸다. 스스로를 ‘측량사surveyor’로 정의하고, 영문이름을 ‘Parc Rahm’으로 적시하고 있어서다. 작가의 설명은 이렇다. “도처에 산재한 이미지에 대해서, 이미지의 내적인 논리(내용과 의미의 차원으로 인도하는 인식/판별 가능한 사물이나 인물의 형태)를 따르지 않고, 사소한 색이나 명암 차이에 불과한 것을 따라가면서 이미지를 회膾 뜨는 행위를 반복하는데요. 저는 이것을 개인적으로 ‘이미지-측량’이라고 명명합니다.” 그러면서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벌인 퍼포먼스에 대해 설명했다. “<착륙 기념사진>은 ‘자석 올가미magnetic lasso 측량-뉴욕’ 기획하에 구상한 작업입니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참고로 한 이 퍼포먼스는, 구글 뉴욕 지도를 포토숍의 자석 올가미로 측량하고, 그것을 깃발에 프린팅한 후, 누구나 알고 있는 뉴욕을 마치 처음 발견한 양 센트럴파크의 쥐바위Rat Rock 위에서 천연덕스럽게 착륙 기념 촬영을 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프랑스어로 ‘parc’가 ‘공원’을 뜻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작업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3D프린트 가변크기 2014 케이크갤러리 전시광경

<운석들> 3D프린트 가변크기 2014 케이크갤러리 전시광경

학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박 작가는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인 포토숍의 ‘마그네틱 라소툴’을 이용한 작업을 선보였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시각예술분야에서 어떤 장르건 간에 작가는 매체를 활용해 표현한다. 그런데 박 작가가 사용하는 매체는 좀 생소하기도 하고, 프로그래밍된 진부한 것이기도 하다. “이 시대에는 미술가 대부분이 작업 과정에 디지털 이미지와 그래픽 프로그램, 출력기를 이용하죠. 그래서 그것들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에는 별달리 특기할 점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저는 그래픽 프로그램의 툴과 그런 작업 내역들을 개념화하고 가시화한다는 점에서 변별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툴의 예정된 기능에서 무엇인가 다른 것을 도출하는 것은 오히려 더 지난한 과정일 것도 같다. 이는 작품에 스며든 ‘노동의 흔적’이 곧 작가의 미학적 특성이라는 등가관계에 어떻게 역행하느냐의 문제와 맞물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포토숍의 ‘자석 올가미’ 툴은 이미지를 명확하게 지정하거나 항상 같은 결과를 보여주지 않는다. 따라서 이 툴을 반복적으로 같은 이미지에 적용하는 행위는 일견 대상을 정확히 드러내는 것이거나, 아니면 그러한 행위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한 것임을 드러내는 것 같다. 이에 대해 작가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입력장치를 매개로 하는 제 손에 의한 무작위적인 개입에 의해 왜곡되어 결국 무의미한 궤적을 산출합니다. 실제로 측량한 형상들은 원본 이미지와 대조했을 때 별다른 연관성을 갖지 않아요. 저는 대상을 명확히 지정하거나 정의하는 일에 관심이 없으며, 오히려 참조 대상으로부터 막다른 것을 도출해내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해석의 과잉이나 오독을 경계하는 태도가 분명했다.
지금 작가는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우주생활전>(2.6~5.17) 3층에 <운석들>이라는 작품을 설치했다. 최근 첨단 테크놀로지의 총아로 떠오른 3D프린터로 출력한 가공의 ‘운석’을 오렌지색 바탕에 깔았다. 45억 전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구에 불시착한 이방의 물체인 운석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기계 장치에 의해 ‘구현’되는 가공의 운석과 여러모로 닮아 있다.
당장은 근작인 운석 등을 크게 제작하고 싶다는 작가 박아람. 몇 번의 개인전이 열린 곳은 다분히 실험적인 작품이 선보였던 공간이다. 의도성은 없었지만 자연스러운 결과였을 것이다. 그래도 현실은 현실이다. 박 작가 말대로 “접시 물에 코 박고 죽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도 현재 큰 고민거리다. 그래서 최근 통영을 다녀왔고 “모니터 스크린만 보다가, 저 멀리 뻗어나가는 실제적인 거리감, 시야를 확보하는 경험을 오랜만에 했다”고 했다. 그곳에서 해수의 표면에 반사되어 산란하는 빛을 어떻게 봤을지, 그것이 어떻게 작업으로 ‘쌓일지’ 지켜볼 요량이다.
황석권 수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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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이 커팅 및 드로잉 21×29.5cm 2014

<유령-지도> 종이 커팅 및 드로잉 21×29.5cm 2014

박아람은 1986년 태어났다. 가천대 시각디자인과, 홍익대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2014년 케이크갤러리에서 <자석 올가미 측량전>으로 명명된 첫 개인전을 열었다. 또한 2012년부터 각종 기획전과 그룹전에 출품했다. 2012년 일현트래블그랜트에 선정됐다. 현재 서울에서 작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