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FACE 2015 이병찬

“신경질적이던 행태는 차분해졌고, 위태롭던 움직임은 무게감을 찾아간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현재 괴물의 성장이 거칠 것 없이 힘차고 작가 또한 열등감이 아닌 건강한 감정을 괴물에 투사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 김소영 큐레이터

 비정상 생태계에 숨을 불어넣다

거대한 괴기 생명체가 전시장에 나타났다. 형형색색의 몸체가 스스로 빛을 발하다가 이내 암흑 속으로 사라진다. 들숨날숨에 따라 몸체를 팽창했다 수축하기를 반복하며 제자리에서 사부작사부작 움직인다. 영화 ‘아바타’의 ‘나비족’이 뛰어나니던 곳에서나 봄직한 형상의 이 생명체는 그야말로 기기묘묘하다.
작가 이병찬은 현대사회 시스템을 비꼬는 논리로 작가만의 생태계를 표현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그리고 생태계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그곳에서 살아가는 괴기 도시생명체를 창조했다. 작가가 바라본 현대 사회 구조는 모순적이고 비정상적이었다. 송도신도시 개발이 한창이던 시기에 그곳을 자주 오가던 작가는 오로지 개발논리에 따라 건설되는 기형적인 도시의 모습을 목도했다. 인간에 의해 철저히 구획되고 계획된 도시는 인위적인 자연과 거주공간을 ‘(부)자연스레’ 병치한 모습이었다. 길가에는 곳곳에 부동산 투자 유치 현수막이 걸렸다. 오롯이 소비에만 초점이 맞춰진 세상으로 비춰졌다. 현대인의 끊임없는 소비 패턴은 늘 채워지지 않는 물질적 탐욕을 반영한다. 소비하고 소진하는 행위는 무한히 순환한다. 작가는 대학시절 주변에 버려진 오브제를 주워 작업을 진행하곤 했다. 누군가 버린 물건은 작품으로 변주되어 소비되었다. 때로는 그가 버린 오브제를 다른이가 작업 재료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병찬에게 물건의 소비는 순환구조로 비쳤다.
작가의 판타지로 만들어진 생명체는 독특한 소재로 눈길을 끈다. 물건을 담는 비닐봉지는 소비된 물건을 운반하는 데 긴요하게 사용된다. 그러나 비닐봉지에 담긴 상품이 빠져나오는 순간 봉지는 거침없이 구겨지며 그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다. 반면 비닐봉지는 불필요한 것을 담아 버리는 용도로도 쓰인다. 그러다보니 비닐봉지는 버려지는 것들의 총체적 메타포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쉽게 용도폐기되는 비닐을 마치 실크천에 바느질을 하듯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이어 붙인다. 도시 생명체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것은 비닐과 작가의 손, 그리고 라이터다. 작가는 라이터 불로 비닐을 부분적으로 녹여 용접한다. 그 후 에어모터로 비닐의 끝부분까지 바람을 불어넣고 움직임을 부여한다. 재료의 특성상 작업을 수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에 작업에 들어가는 시간과 공력이 만만치 않다.
초반에 비닐 작업은 다채로운 색보다는 단색을 사용했다. 또한 새로운 생명체의 모습보다는 개, 늑대나 사슴 등 실존하는 동물의 형상을 본따 작업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작가는 소비사회의 구조가 점차 악화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작가가 구현하는 생태계도 극단적으로 변했고 생명체의 형상도 점차 괴기스럽게 표현되었다.
그러나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보는 이에게 위압감을, 혹은 불편한 감정을 줄 수도 있는 이 비닐 생명체는 전시 종료와 함께 돌아가던 모터가 정지되는 순간, 한줌의 비닐봉지로 압축된다. 마치 물건을 뺀 봉지가 처참히 뭉개지듯 바람을 빼는 순간 생명체는 힘을 잃는다.
작가는 “판타지 속 생태계를 표현한다”면서 동시에“창조자적 입장으로 서있기를 거부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괴기스러운 생명체가 자신의 눈에는 전혀 무서워 보이지 않다”고 덧붙였다. ‘특이한 짓’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20대 후반의 평범한 남자가 생각하는 세상을 미술로서 표현했을 뿐이라고 전했다. 작업을 하는 작가도,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우리도 소비사회의 일원이다. 작가가 제3의 생명체를 탄생시키기 보다 그 자신과 우리 시대의 인물을 형상화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작가의 작품을 마주한 관객은 괴기스러운 세상에서 무지막지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자화상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임승현 기자

이병찬 인물 (3)이병찬은 1987년 태어났다. 인천가톨릭대 환경조각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도시환경조각과를 수료했다. 2010년 AG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포함해 5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했다. 경남도립미술관에서 1월 29일부터 5월 13일까지 열리는 〈사물이색전〉에 참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