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나를 바라보는 너를 바라본다

아마도예술공간 3.1~25

조선령 부산대 예술문화영상학과 교수

독일의 매체이론가 빌렘 플루서는 1974년에 쓴 <텔레비전의 현상학을 위하여>라는 글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세 가지 모델을 구분한다. 첫째는 메시지를 주관적으로 전달하는 태도모델, 즉 광고와 같은 방식이고, 둘째는 메시지를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인식모델, 즉 뉴스와 같은 방식, 셋째는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체험모델, 즉 영화와 같은 방식이다. 플루서에 따르면 태도모델은 명령법, 인식모델은 직설법, 그리고 체험모델은 함축적이다. 그런데 곧이어 플루서는 이렇게 말한다. “텔레비전 분석에서 나온 결과는 송신된 메시지의 모든 인식모델과 체험모델의 뒤에는 항상 태도모델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프로그램은 본질적으로 광고이다. 광고가 흔히 수용자에게 숨어 있다는 사실은 그 효과를 강화시킨다. 광고는 ‘잠재의식’ 에 작용한다. 세계는 수용자에게 텔레비전을 통해 그에게는 부분적으로 숨겨진 명령법으로서 나타난다.”(빌렘 플루서, 김성재 옮김, 《피상성 예찬》, 커뮤니케이션북스, p.195)
플루서의 이 글은 텔레비전의 인식적/체험적 외양에 숨어있는 명령적 속성을 인지할 것을 촉구하면서 텔레비전의 새로운 가능성을 진단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플루서가 구분한 세 가지 모델의 경계선이 오늘날에는 그다지 명확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영상은 합성의 가능성으로 인해 항상 그 진위를 의심받으며, 감시 카메라는 현상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포획할 타깃을 찾는 도구이다. 웹캠은 자기를 표현하는 수단인 동시에 세계를 바라보는 창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플루서가 말한 태도모델의 ‘잠재성 혹은 무의식성’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의 태도모델 개념은 결국 모든 장치가 단지 기록이나 조작의 매체가 아니라 어떤 프레임, 틀, 세계 자체를 만들어내는 명령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세계를 만들어내는’ 명령의 기능은 숨겨져 있다. ‘미디어아트’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영역이 끊임없이 문제 제기해야 할 지점 중 하나는 그것의 가시화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작가 5명과 프랑스 작가(팀) 11명이 참여한 아마도예술공간의 전시 <나를 바라보는 너를 바라본다>(유진상, 에릭 마이어 기획)는 우리 일상 매체에 숨은 명령어들을 가시화하는 작품을 다수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웹캠, 스트리트 비디오, 감시 카메라, 스카이프, 내시경, 구글링, 음향감지장치, 비디오 게임 등 미술이 잘 수용하지 못했던 것들까지 망라한 동시대적 매체/장치들이 골고루 등장한다.
몇몇 작품은 온라인과 전시장에 동시에 존재한다. (어쩌면 그러한 작품들이 전시의 주제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1999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발전해온 제롬 조이의 웹 프로젝트인 <nocinema.org>는 전 세계 곳곳에 설치된 웹캠이 보여주는 실시간 영상들과 영상에 랜덤으로 덧입혀지는 음향/음악으로 구성된 일종의 ‘영화’이다. 순전히 무작위적이고 서로 연관성도 없는 이 영상/음향의 복합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의 내러티브를 구성하게끔 유도하면서 ‘다른 세계’가 새롭게 생성되는 순간들을 보여준다. 또한 세계 각국의 도시를 촬영하고 그 장면을 ‘스캐닝’하여 화면에 ‘데이터화’해서 보여주는 얀 부가레와 아르노 미르망의 <somethingismissing.tv>(2016)는 컴퓨터 게임과 감시 카메라를 합친 듯한 인터페이스를 보여주며 이미지를 객관적으로 정보화하는 듯하지만, 화면에서 볼 수 있는 정보는 사실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지표가 기묘하게 혼합되어 있다(danger, memory의 비율과 CPU, GPU의 비율 등이 동시에 등장한다). ‘동시대’를 구성하는 명령어는 여기서도 또 다른 방식으로 가시화된다.

위 플뢰리퐁텐느(FleuryFontaine) <Lose or draw>(오른쪽) 영상 설치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