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예선의 달콤한 작업실 4

생애전환기의 작업실

나는 저자 소개란을 공들여 쓰는 편이다. 첫 책 저자란은 꽤 열정적인 톤으로 썼고, 그 뒤로는 좀 덤덤하게 썼는데, 어쨌건 짧게 끝내지는 않았다. 책의 분위기를 표현할 수 있는 활동이나 관심사를 명쾌하게 쓰려고 한다. 그리고 메일 주소를 반드시 적어두는데, 독자의 요청이나 질타 등을 듣고 소통하기 위해서다.(독자의 다양한 의견이 실제로 온다!) 요즘은 “달콤한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다”는 문구를 넣는다. 작업실은 나라는 ‘작가’를 설명해주는 주요한 지점이다.
첫 책의 저자 소개 말미에는 “레나의 티룸이라는 작은 공간을 갖고 싶은 꿈이 있다”라고 적었는데, 그래서 작업실을 찻집이라고 오해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홍차에 관한 책을 쓴 후에는 티룸을 열어야 할 것 같았고, 근대문화유산 기행문을 썼을 때는 학위 과정을 밟아 근대건축 연구자가 되어야 할 것 같았다. 미술 에세이를 쓰고 나니 아쉽게 끝낼 수밖에 없었던 예술사 공부를 더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고, 문학기행서를 펴낸 후에는 문학가의 반열에 들기 위해 등단이라도 해야할 것 같았다. 그것도 잠시, 다음 책에 돌입하게 되면 ‘내가 끝까지 하고 싶은 건 글 쓰는 일이었지. 어려서부터 꿈꾸던 일이잖아. 나는 꿈을 실현한 거야”라며 써야 할 글에 온 신경을 집중하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글을 계속 쓰는 일이다. 글을 쓰며 사는 일에 온전히 몸과 마음을 맡기자고 결심한 건 더듬어보건대 마흔을 지나면서다. 생애전환기라며 건강보험공단에서 특별한 검진표가 날아오는 그 마흔. 난 여전히 외롭고 소심한데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찌고 조금만 움직여도 피로한 마흔.
서른과 비교해보면 이 나이는 참 묘하다. 20대엔 얼른 서른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감정의 혼란이 그때쯤엔 가라앉길 바라면서. 그러나, 서른은 언제 왔는지도 모른 채로 후다닥 스쳐지나갔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나날이 멀어져만 가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마흔은 얼마나 다행스러웠던가. 여전히 허둥거리고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던 30대가 끝나갈 즈음, 나는 속도를 늦추고 다가오는 마흔을 우아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나라는 인간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간 것 같았고, 앞으로 펼쳐질 삶도 괜찮아보였다.
무한정 남아있을 것만 같은 인생이 예상보다 짧을 수도 있다는 깨달음도 왔다. 그래서 복잡하게 벌여두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생활을 간결하게 만들었다. 밥벌이기도 했고 미련을 버리지 못해 해오던 일들도 잘라냈다. 쓰임이 있겠지,하고 쌓아두었던 것들도 과감히 버렸다. 버리고 나니 해야 할 일이 분명해졌다. 쓰려고 묵혀둔 이야기들을 꺼내서 완성하는 일이었다. 글을 쓰는 건 사유하기 위한 방식이다. 한 권의 책을 만드는 동안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하나의 결론에 이르게 되므로 탈고하고 나면 조금은 심오한 철학을 한 듯하다. 그때 나는 가장 충만해진다.
자주 가는 곳 중에 나를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공간들이 있다. 기분 좋은 날엔 원서동길을 걷고, 마음이 무너지는 날엔 혜화동성당에 간다. 홍대앞 만화서점에서 만화덕후들을 구경하면 열띤 에너지가 쑥쑥 차오르는 기분이고, 주인이 골라놓은 몇 권의 책만 판매하는 ‘서울오감도’라는 서점 겸 작은 공간은 그냥 앉아만 있어도 좋다. 동갑내기 지인이 하는 곳이라서일까? 말없이 교감하는 느낌이 든다.
최예선 (7)그리고 작업실. 내 손길이 닿지 않으면 빛이 바래는 이 작고 어두운 공간은 말없이 나를 지켜보는 희한한 존재다. 여기선 내가 어떤 일을 해야할 지 분명해진다. 그동안 프리랜서 에디터로 해온 일들을 여기서 벌여놓으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새로운 이슈에 재빠르게 대응해야 하고 세련되고 매끈한 언어를 구사해야 하는 일들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과 모여서 재미난 걸 하자며 작당을 하고, 조분조분 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홍차를 마시고, 상상의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덕질을 하는 일들, 손을 움직이고, 사람들과 시선을 맞추고, 고요히 나를 응시하고, 어떤 결심을 하고, 먼 곳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이런 일들을 할 때 작업실은 반짝반짝 빛난다.
이 작은 공간이 마음에 들어 꼬물꼬물 만들던 그때, 이미 내 미래가 결정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곳에서 생활의 모순을 조금씩 해결하고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을 연습한다. 그리고, 더 고민하고 고민하며 내 목소리를 내어보기로, 내가 가치를 두는 것들을 끌어 모아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보기로 한다.
그러고 보니, 마흔은 인생의 전환기가 틀림없다. 글 쓰는 사람으로 나를 단련하겠다, 앞으로 끝까지 이 세계를 탐구하고 조금씩 나아가겠다는 결심을 했으니까. 내 목소리를 내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내게는 내 손으로 만든 작은 세계, 작업실이 있다. 이 공간은 내게 무한한 용기를 준다. 무엇이건 해보라고, 벽을 부수고 좀 더 자유로워지라고 등을 두드리는 것 같다.
한번이라도 경계를 넘어간 사람은 다시는 그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한번 작업실을 만들어본 사람은 작업실이 없는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것은 진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