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박경률_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 가능성의 릴레이

contents 2014.2. review | 박경률_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 가능성의 릴레이
박경률의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는 프로젝트 성격을 띤 전시로 먼저 용산구 치매센터에서 치매 노인 3명과 함께 실행(인터뷰/4주간 24회, 드로잉)한 <가능성의 릴레이>(2013.11.2~29)와 연결된 구성을 보인다. 전체적으로는 치매환자인 친할머니의 인터뷰 영상과 치매 노인 3명의 인터뷰를 각색하여 노인 배우의 연기를 통해 제작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영상, 그리고 그 노인들과 함께 얘기하며 풀어낸 드로잉들과 그 얘기들을 토대로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단편 소설(<고요한 소녀>, 세 개의 거울액자 속에 새김), 또한 이러한 경험과 자신의 기억을 의식과 무의식 관계 속에서 배설한 낱개의 드로잉 및 서술된 드로잉들로 구성되었다.
여기서 작가는 의식과 무의식에 관한, 즉 ‘무의식적으로 그린다?’라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그 화두를 프로젝트로 증명해보이려고 했다. 작가가 자율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어떤 대상을 ‘채우고-지우기’를 반복하며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상, 현상, 사건, 기억, 번안, 편견 등을 자신의 언어로 전환하여 콜라주하거나 스토리화하는 과정을 겪는다고 가정한다면, 그 화두도 이러한 되새김질 현상을 시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동안 그는 자신의 주변에서 부딪히는 일상의 사건들과 잠재된 기억들을 자신만의 여과장치를 통해 걸러서 해체시키는 일련의 드로잉들을 페인팅으로 구조화하는 작업을 했었다. 반면, 이번 전시에서는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과정에 불과했던 드로잉들을 전면에 부각시키면서 자신의 언어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를 실험하며 유연한 태도로 접근하고 있다.
작가는 어떤 측면에서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거나 너무도 일반적 의
미인 ‘무의식’을 화두로 삼아 치매 환자분들을 만나고 대화한다. 그 과정이 다시 자신을 들여다보며(거울 현상) 이미 형성되었거나 무의식을
경험하는 태도로 자신의 언어를 해체하는 자각현상과 같은 의미로 다
가왔다.
무의식의 태도로 접근한다는 자체가 자신의 정체성을 내어놓고 다시 시험받는, 그래서 역으로 영역화된 페인팅을 유연하게 해체시켜’연약한 드로잉’이라고 명명한 것이 아닐까.(큰 작품의 드로잉은 여느작가들의 드로잉에 비해 구조적이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는 언어의 환영체가 구축되어 관객들로 하여금 일방적으로 감상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닌, 언어와 이미지 사이를 열어놓고 탐색하는 드로잉적인 사유의 태도로 접근하게 하여 보는 이들과 묵언의 대화를 나누며 호흡을 유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고요한 소녀> 작품이다.
자기언어를 구축해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박경률 작가의 프로젝트를 통한 시각적 행위는 끊임없는 화두로 시작되었고, 이어서 나와 사회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예견치 못한 내러티브적인 얘기들을 들춰내어 이미지효과를 떠나 메시지 전달로서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이로써 그가 앞으로 유형과 무형, 사람과 사람, 글과 이미지, 책 속의 앞뒤 간지 등의 수많은 ‘사이 공간’에까지 사유를 넓혀갈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객체와 주체 사이의 이분법적 구별을 거부하는 정서적 흐름이 그의 인문학적 태도에 기인하며, 동시에 주체의 인식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그의 이면과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가능한 시도들이었고, 하나의 매체에만 국한되지 않는 다차원적 성향을 지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관훈·Project Space 사루비아다방 큐레이터

왼쪽·<고요한 소녀>(가운데 액자 작업) 혼합재료 70×53(각, 총3점) 2013
오른쪽·<연약한 드로잉 No.650-미래와 할머니와 복잡함에 대한 1차원적 반응들>(부분) 240×650cm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