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박수영_오름-그리다

contents 2014.2. review | 박수영_오름-그리다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가나아트스페이스갤러리에서 박수영 작가의 7번째 개인전인 <오름-그리다>가 지난 12월 말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오름’은 제주도 방언이다. 큰 화산 옆에 붙어 생겨난 작은 화산, 일명 기생화산(寄生火山)을 지칭하는 용어가 오름이다. 370여 개의 오름이 존재하는 화산섬인 제주도를 ‘오름의 왕국’으로 비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박수영의 <오름-그리다전>은 아름다운 오름의 모습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대신 제주를 상징하는 오름을 통해 67년 전의 제주의 아픈 역사 한 부분을 담아낸다.
본 전시에는 25점의 평면작품이 출품되었다. 한지로 마련된 화폭에혼합재료(수채, 유화, 크레용, 목탄 등)를 이용해 완성해낸 작품들은 서정적이고 명상적이다. 전체 작품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작은 집의 형상은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이 집들은 창문이나 대문 혹은 지붕이 없다. 집을 상징하는 형상만으로 홀연히 큰 나무 아래 쓸쓸히 등장하거나, 때로는 황량해 보이는 대지 위에 줄지어 등장하기도 한다. 혹은 사발의 음식그릇 모양 안에 담겨져 등장하기도 한다.
중도와 겸손을 읽게 하는 모노톤의 바탕 위에 그려진 집의 형상들은 크기가 제각각 이다. 반(半)추상의 풍경을 배경으로 하는 집의 형상들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 지닌 ‘물질의 실재성’을 빌려, 실은 ‘정신의 실재성’을 시각화해낸다. 집을 삶으로 은유하면, 그 삶의 주체는 인간이다. 그래서 개개의 집 형상은 실재성이라는 규정하에 정신적 존재가 될 수 있다. 떠난 자와 남겨진 자, 과거와 현재, 망각과 기억 그리고 진실과 진실의 그림자 등을 공간적인 물질을 통해 정신적인 실체로 옮겨놓는 것이다. 이를 박수영은 자신만의 반복적인 집 형상 속에 시간성을 그리고 존재를 시각화해낸다.
이 시각화가 보다 극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집의 형상들이 모두 하얀색으로 처리된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하늘과 땅을 뜻하는 구극(究極)의 색으로 또한 불멸의 색으로도 해석되는 백색은 또 존 로크(John Lock)에 의하면 인간의 의식과 정신세계를 상징하는 “화이트 페이퍼(white paper)”로도 규정된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빈 공간”이기에 자유로운 사색이 가능하며, 또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삶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인 로크 식의 “화이트 페이퍼”는 “광활한 대우주”로도 표현된다. 박수영의 하얀 집은 역사와 기억을 등에 업고 로크 식의 자유로운 미래에 대한 또 다른 제시일 것이다.
인사 가나아트스페이스갤러리 전시공간에서 수많은 관람객을 맞이했던 작가의 작품들이 의미 있었던 것은, 기억에 의거한 현재와 미래의 의미에 대해 쉽게 답할 수 없는 부분 그래서 가시화될 수 없는 부분을 드러내며 예술창작의 의미를 더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은지・홍익대 교수

박수영 개인전 <오름-그리다> 전시 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