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Topic] Busan Biennale 2014

 부산 비엔날레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생각한다

유진상  계원예술대 교수

부산비엔날레는 1981년에 지역 작가들이 주도적으로 기획한 ‘청년비엔날레’를 역사적 기점으로 삼는다. 이후 2000년의 부산국제미술제(PICAF: Pusan International Contemporary Art Festival)를 거쳐 2002년부터 ‘부산 비엔날레’로 정식 출범한 이 행사는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치러지며 부산시장이 조직위원장이라는 점에서 부산시의 위상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부산의 문화적 역량과 국제적 수준을 반영하는 대표적 이벤트인 셈이다. 부산비엔날레는 광주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과 더불어 한국의 3대 국제미술전 가운데 하나이며, 대부분 짝수 해에 열리는 아시아 비엔날레들 가운데서도 이미 상당히 알려진 대규모 미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지 부산비엔날레가 과연 어떤 성격을 지닌 프로그램인지에 대해 다소 의문이 생기고 있다. 비엔날레는 대체로 기획자나 운영조직의 변화에 따라 기복을 보인다. 타이베이, 이스탄불, 리용 그리고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등과 같이 상임 디렉터가 장기적으로 프로그램 운영에 간여하는 체제에서도 초빙 큐레이터나 아트디렉터에 따라 전시행사의에 질적인 변화를 보이기 마련이다. 하물며 매번 새롭게 구성되는 운영위원회와 잠시 기획을 맡았다가 떠나는 아트디렉터에 전적으로 운영을 맡기는 상당수의 한국 비엔날레 체제에서 안정적이고 장기적 전략을 지닌 비엔날레를 바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부산비엔날레는 현재 별도의 운영위원회를 두고 있고 비상근 운영위원장이 비엔날레 프로그램 전반에 대해 대처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초대 허황 운영위원장 이후 2006년에 황종찬 씨가 4대 운영위원장을 1년간 맡았으며 2007년부터 이두식 화백이 맡아 2013년에 타계할 때까지 총 3회의 비엔날레를 준비, 운영했다. 이두식 위원장이 살아 계셨다면 2008년 김원방 감독  (〈  낭비〉), 2010년 아주마야 다카시 감독(〈  진화 속의 삶〉), 2012년 로저 뷔르게 감독(〈  배움의 정원〉)에 이어 2014년 행사까지 연임하면서 전시감독을 뽑고 운영했을 테지만, 부득이 신임 운영위원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이번 비엔날레를 둘러싼 논란이 터져 나왔다. 전시감독 선정위원회와 운영위원회는 사실 별도의 임무를 띠고 있다. 운영위원장이 먼저 선임되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거나 하지 못한 상황에서, 선정위원회에서 이미 결정된 내용을 수정하면 절차상의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부산비엔날레 역시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후의 사정은 잘 알려져 있다.
올리비에 캐플랑(Olivier Kaeppelin) 감독이 어떤 경위로 본전시 전시감독선정위에 추천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외국인 후보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추천되어 있다는 점도 놀랍고, 추천된 후보들 가운데에서만 감독을 선정한다는 것도 비엔날레의 속성상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운영위원장 공석 상황에서 발생한 문제라고 해도, 운영위원회의 임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전시감독 선임이라고 할 수 있다. 전시감독(차회부터는 ‘총감독’으로 명칭을 변경한다는 이야기가 있다)은 사실상 비엔날레의 내용을 결정짓는 핵심적 인사이기 때문에 비엔날레의 성공과 발전을 위해 전략적으로 선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전시감독은 대체로 국내 및 지역 인사와 국제적 인사들을 두루 고려하면서 장기적으로 보아 비엔날레의 취지와 목적에 걸맞은 기획방향을 확보하는 데 주안점을 두어 선정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부산비엔날레의 경우 2010년 전시감독을 맡은 고(故) 아주마야 다카시나 이번의 올리비에 캐플랑 감독 선임은 한국의 전문가들에게도 의외의 인사였을 뿐 아니라 선정의 맥락을 알 수 없어 모두를 놀라게 한 비-전문적, 비-전략적 비엔날레 운영의 대표적 사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아주마야 다카시는 이후 일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모두를 안타깝게 했다. 올리비에 캐플랑은 선임과정에서도 모두를 걱정시켰지만, 전시가 열린 지금은(비판 일색인 언론보도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패착’이었음이 여러 측면에서 드러나고 있다.
캐플랭 감독은 작년 10월경 전시감독 선임을 둘러싼 논란이 있던 시기에 어부지리로 주어진 전시감독 자리를 아무 의견 표명 없이 수락했다. 프랑스에 있었다고 해도 한국에서 일어난 논란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는 유일하게 함께 일할 큐레이터로 가까운 한국인을 선임했다. (이 큐레이터는 함께 도록에 글을 쓴 김수현 씨다.) 그와 가까운 한국 인사도 여럿으로 알려져 있다. 비엔날레가 국제적인 행사이고 정치, 사회, 역사적 이슈들이 빈번히 다루어지는 첨예한 예술행사란 점을 감안하면 해당 지역에서 벌어지는 논란에 대한 전시감독의 이 정도의 무관심은 의외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그가 선임 후 5개월여가 지난 올 3월 말에야 처음으로 부산을 방문해서 공개한 비엔날레의 주제는 ‘세상 속에 거주하기’였다. 이러한 주제를 접하는 전문가들이나 일반 시민들은 ‘세상 속에 거주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으로서 공동체와 시민들과의 교감이나 공감대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프랑스로 돌아간 뒤 전시 준비기간이 되어서야 작가 리스트를 들고 한국에 다시 나타났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번 부산 비엔날레의 개막 심포지엄에 참여했기 때문에 작가 리스트를 조금 일찍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8월말이었다.) 캐플랭 감독은 ‘세상 속에 거주하기’라는 주제를 던진 채 부산과는 거의 상관없이 프랑스에서 ‘세상 속에 거주하는 데 대한’ 전시기획을 작성했다.

 사운드,식물,각철 200×300×300cm 2014

<큐빅하우스> 사운드,식물,각철 200×300×300cm 2014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
또 다른 문제는 전시작가 구성에서 불거졌다. 참여 작가 77명 중 프랑스 작가가 23명인데다가 대부분이 50, 60대 작가들로 구성되었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특정 세대에 한정되었다는 점이 문제라고 본다. (물론 비엔날레는 새로운 작가군이 등장하는 장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한국작가들 역시 10명 중 2명은 프랑스에서 유학했고, 1명은 프랑스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 나머지 3명은 재불 화가로 활동 중이다. 여타 외국 작가 역시 상당수가 프랑스에서 유학했거나 활동 중이며 프랑스 시민권 보유자로 알려져 있다. 개막 심포지엄에서 이 부분에 대한 청중의 질문에 대해 전시감독은 ‘정직함(honesty)’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큐레이터로서 가장 잘 아는 작가들을 전시하는 것이 정직한 일이라는 대답이다. 물론 이는 국제 비엔날레를 기획하는 큐레이터로서 ‘잘 아는’ 작가들이 프랑스 관련 작가들로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고백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감독이 자신의 잘 아는 주변 인물들과 함께 ‘비엔날레’를 만드는 데 부산시민의 세금과 국고 42억 원을 썼다는 얘기가 된다. 2000년대 초에 한국에서 4년간 프랑스대사관 문정관을 지낸 바 있고 2008년 부산비엔날레 큐레이터로 활동했으며, 지금은 후쿠오카 주재 프랑스문화원장을 맡고 있는 프랑신 메울(Francine Méoule)조차 이 전시 개막식에 참여한 뒤 이런 비엔날레 전시구성은 ‘전문적이지 않다’며 놀라워했다.
개막 심포지엄 발제자들에게 이번 부산비엔날레에 대한 토론 대신 가급적 ‘세상 속에 거주하기’라는 주제에 대해서 토론해 달라는 전시감독의 요청을 받은 것은 개막식 며칠 전이었다. 개막식에서 처음으로 이 주제에 대한 그의 글을 읽고 느낀 것은, 당연히, 당대 세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적 관점은 대체로 기술적 변화에 대한 반감 혹은 불편함에 기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제기하는 문제는 전시장 입구에 게시된 다음과 같은 주제 설명문에 요약되어 있다.
“최근 들어 개인들의 비물질화, 대상들의 비물질화로서의 인간적인 활동의 비물질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비물질화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고 있다. 처음에는 이러한 관점이 사회의 기능에 이로운 것으로 간주되었었다. 왜냐하면 이 관점은 더욱더 신속한 교환과 더 나은 시간의 경제학,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공통 세계의 모델에의 참여를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장점들의 리스트는 매일 매일 늘어갔지만, 하지만 비물질화 경향의 귀결 혹은 부작용은 인간에게 새로운 상황을 야기했다. 가장 두려운 공포를 야기하고,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을 점점 더 인식불가능하고 포착할 수 없게 만드는 새로운 재현들을 만들어내었다. (중략) 개별적인 것들에 대한 새로운 실존적 혹은 형이상학적 정의들을 제시하면서, 우리는 이러한 태도들의 목록을 더 늘릴 수도 있다. 이러한 모든 반응들이나 투영들 중에서 예술과 예술가들의 반응은 종종 지나치게 간과되곤 한다. 우리의 현존의 위기와 ‘거기 있다’라는 말 그대로 물리적, 정신적으로 이 세계에 계속해서 살거나 혹은 살지 않으려 하는 우리의 의지의 위기에 대해 예술은 본질적인 반응을 제시한다. 예술은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우리는 이미 유령인가 아니면 우리는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기 위한 살아있는 배우가 되길 욕망하는가?”
캐플랑이 ‘비물질화’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개막 심포지엄 사회를 본 임근준은 ‘포스트모던’이라고 요약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디지털이나 인터넷 등의 기술적이고 진보적인 변화들을 가리키는 좀 더 협소한 개념처럼 보인다. 그가 말하려는 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당면한 세계는 그보다는 좀 더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사유를 요구하는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비물질화’라는 개념만으로 우리에게 그 세계 안에서 살아있는 인간이 될지 혹은 유령이 될지의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어 보인다. 그 반대편에 ‘예술’이 자리 잡고 있다는 대칭적 구도도 그리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그러한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자칫 ‘국가적 근본주의’나    ‘종교적 근본주의’처럼 일종의 ‘예술적 혹은 형식주의적 근본주의(artistic or formalist fundamentalism)’로 읽힐 수 있다. 그가 자신의 전시를 구분해 놓은 구성을 보면 어떤 생각으로 ‘세계 속에 거주하기’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지가 더욱 분명해진다. 거기에는 ‘운동’ ‘우주와 하늘’ ‘건축과 오브제들의 운동성’ ‘정체성’ ‘역사, 전쟁’ ‘동물들과의 대화’ ‘증인으로서의 자연’ 등이 열거되어 있는데, 이 소주제들은 비엔날레보다는 파리 시립현대미술관이나 퐁피두센터의 상설전시 섹션들을 떠올린다. 각각의 소주제들에 대해 모두 언급할 지면은 없지만, 우리가 비엔날레를 통해서 프랑스 모더니즘을 다루지 않는다고 모두 유령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두 번째로, 더욱 심각한 것은 그가 심포지엄 토론에서 현재의 동시대미술을 ‘혼돈’으로 표현하면서 어떤 ‘해결책(solution)’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지점이다. 이런 표현이 무엇을 떠올리고 왜 문제가 되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우리가 예술을 중시하고 비엔날레를 기획하는 핵심적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서로 다른 배경과 태도를 지닌 이들이 예술을 통해 ‘공존’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캐플랑 감독은 프랑스에서 다수의 중요한 전시를 기획한 인물로 소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한국에서 보여준 모습은 상당히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제도개선위원회는 이번 부산비엔날레를 중요한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다음 번에는 모든 이가 수긍할 뿐 아니라 깊은 공감을 누릴 수 있는 부산비엔날레가 되길 기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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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잔치가 열리기도 전에 이미…

부산 (1)

기자간담회 장 앞에서 벌어진 항의 퍼포먼스

부산비엔날레 2014의 기자간담회가 열리는 9월 19일. 부산시립미술관 지하 강당에 취재진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이미 전시감독 선정 문제로 홍역을 치렀고 작가선정에 있어 특정 국가에 몰렸다는 비판이 일어 캐플랑 감독의 답변에 관심이 집중됐다. 그럼에도 올리비에 캐플랑은 전시 개막이 임박하도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날 기자간담회는 캐플랑 감독이 전시 기획의도를 밝히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어 특별전 <비엔날레 아카이브전>과 <아시아 큐레토리얼전>을 맡은 큐레이터의 설명이 있은 후 기자 질의응답이 진행됐다. 단 하나의 질문만이 나왔다. 감독 선임과정에 불거진 잡음과 프랑스 작가 편중에 대해 비판 여론이 일고 있음을 아느냐는 것이었다. 캐플랑은 이에 대해 “내가 이곳에 오기 전 벌어진 행정적인 일에 대해서는 유감이다”고 즉답을 회피하면서 “그러나 최선을 다해 토론하고, 아이디어 공유와 대화를 통해 부산예술과 함께 하려 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프랑스에서 “한국작품이나 작가를 소개하는 것이 하나의 관심사였다”고 말했다. 이 같은 캐플랑의 발언에 대해선 아무런 질문도 나오지 않았다. 예상했던 뻔한 대답과 수개월에 걸친 비판 여론에 대한 피로감이 중첩되는 장면이었다.
한편 이날 기자간담회장 입구에서 부산대 미술학과 학생이라고 밝힌 여성이 프랑스 전통의상을 입고 바게트를 나눠주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부산비엔날레 파행 운영을 비판하고 항의하는 퍼포먼스였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전시가 본격적으로 열리기도 전에 벌어진 이 두 상황은 이번 부산비엔날레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감독 선정과 작가 선정에 따른 비판 여론도 들끓었지만 이는 곧 지나친 지역주의나 배타주의가 아니냐는 반격을 받았다. 또한 오광수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로 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면서 안티비엔날레를 주창하던 부산지역 문화예술단체가 명분을 잃어 사분오열된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온전한 운영 매뉴얼의 부재에 있다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2002년부터 10여 년에 걸쳐 부산비엔날레라는 이름을 걸고 행사를 열어왔다는 점에서 이마저도 주장도 왠지 옹색해 보인다. 전시를 둘러싸고 빚은 갈등이 남긴 상처도 깊지만 무엇보다 미학적, 비평적 언어로 평가받아야 할 전시가 그럴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번 부산비엔날레는 더욱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부산=황석권 수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