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권혁 Controlled and Uncontrolled

4.7~29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오세원 | 씨알콜렉티브 디렉터

권혁은 사유의 운동 “에너지(기??/???氣)”를 흔적으로 남기는 과정에서 물질과 정신. 그리고 우연과 필연에 응하는 통제와 비통제(controlled and uncontrolled)간 긴장감을 드러낸다. 작가는 거대하여 유의미하거나 또는 미세하여 미비하거나 할 것 없이 생명에너지의 움직임 또는 흐름을 비정형의 물로 형상화하고, 자유로운 증식과 무질서의 질서를 재봉노동을 통해 실의 흔적으로 남기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평면 위의 유동적이며 수용 가능한 물 형상은 퍼짐과 머금음이라는 긴장을, 재봉노동이 생산하는 반복과 차이는 드로잉 작업으로 물화한다. 이는 꽃이 흐드러지게 핀 개념산수화나, 바위를 타고 내려오는 폭포 같기도 하며, 바람과 함께 일렁이는 파도의 한복판 같기도 하다. 이렇듯 화면 안의 동적인 붓질과 스티치는 보는 이에게 형상에 대한 몰입감과 다양한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실의 겹침·재질감 넘치는 페인팅과 함께 휴먼사이즈를 넘는 화면의 규모 속에, 오랫동안 훈련된 작가는 기술적 완숙이라는 외연에 더해 자유의지를 가진 생명이 만드는 환경, 환경에 영향 받는 생명의 상호작용 원리를 탐색하는 내연적 깊이를 담아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작가가 사용하는 실은 일반적이지 않은, 얇지만 견고한 특수자수 실인데, 이는 엄청난 반복노동에 의해서 미묘한 차이들을 생산해낸다. 외유내강의 바늘과 실이라는 매체가 가진 존재감과 함께 봉합 과정에서 남겨지는 자수와 실오라기 같은 잔여물의 의미들은 이분법적 긴장으로 통합할 수 없는 주변의 모습과 다시 통합하려는 지속적인 운동 에너지를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사물을 분리하는 칼과는 달리 꿰매고 봉합하여 세상에 해를 입히지 않고 이득이 되는 바늘과 실은 강한 존재감을 드러냄과 동시에 작품에 젠더적 의미를 더해, 소수자를 대변하는 페미니즘적 의미화를 가능하게 한다. 작가의 이전 작업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위생대 시리즈나, 한때 성형이라는 폭발적 유행 현상에 대한 부자유함을 고발한 영상에서 작업의 맥락적 기원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상상력이 사라진 사회 현실에서 반복의 견고함과 화면의 미세한 흩날림을 통해 영겁의 시간과 봉제노동이 전하는 진정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마르크스가 말하는 탈소외적 노동이라는 창조적 예술작업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간소외를 해체하는 노동이라 할 수 있겠다. 결국 권혁의 노동집약적 작업은 차이를 통해 생존하는 동시대 미술환경에서“다시 노동”이라는, 《다시, 그림이다》(마틴 게이퍼드, 디자인하우스, 2012)라는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책을 떠올리게 한다.
무질서의 질서, 자유로운 구속의 카오스이면서 코스모스로 사고를 확장하여 살펴본 생명의 본질과 근본에로의 환원은 작가의 오랜 인상주의적 시각실험과 함께 국가·인종·젠더에 대한 존재론적 개념 실험에 의해서이다. 다양한 사회문화와 개별자 간의 인식실험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에 대한 작가의 회의는 불변하는 본질 탐구에 나서는 도화선이 된다. 작가는 밀레니엄 초부터 다양한 현상을 드러내는 프로젝트들을 추진했다. 작가는 매우 강렬하여 눈이 부신 반짝임에 매료되어 특수 필름지로 유사 햇빛(사람 크기의 둥근 원판)을 만들었다. 휴먼사이즈 원판을 들고 세계 각국의 거리로 나가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며 관객들의 반응을 기록하는 〈움직이다 프로젝트〉(2005?~2006)를 진행했다. 또한 우리나라 화려한 전통 문양을 작은 조각보 형식의 작품으로 만들어 온·오프라인을 통해 세계 각국의 사람들에게 문양에 대한 의견을 묻는 〈나누다 프로젝트〉(2008년 갤러리 팩토리에서 결과물 전시)를 기획했다. 문화, 언어, 사고가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과 교류를 통하여 수많은 차이를 드러냈다. 이러한 다양한 현상들에 집착한 행위들은 최근 본질에 대한 물음과 함께 드로잉과 자수페인팅으로 귀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작가의 본질, 삶, 생명에 대한 ‘구도자’(사루비아다방의 이관훈 “2014년 권혁개인전 서문에서”)적 물음은 미술사적 문맥과 함께 역사성을 가진다.
이번 전시에서는 생명을 상징하는 유동적인 물 페인팅과 함께 다양한 숨의 양태를 통해 인간에 대한 관심, 삶에 대한 사유를 보여준다. 삼라만상 우주의 원리들을 카오스모스(Chaosmos: 카오스(혼돈)와 코스모스(질서)로, 구 천년 역사의 책)와 보이지 않지만 절대성을 가진 진리를 우주 수학의 원전인 천부경에서 속에서 찾아나가고 있다. 작품의 물질화·자본화에 비판적 잣대를 들어대었던 아르테 포베라 작가들의 맥락과 같이 작가는 풍선과 실이라는 매체를 통해 숨을 물리적으로 잡아두어 다양한 생명의 양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물-생명-숨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는, 얇지만 견고하고 단단한 꿰맴 노동의 미학 속에서 작업을 대하는 중견작가의 진지하고 원숙한 태도와 함께 끊임없는 존재론적 철학적 탐구로 이어지고 있다.

위 권혁 〈카오스모스 R255〉(왼쪽) 천에 아크릴, 실스티치 145×235cm 2016~2017〈숨〉(오른쪽) 실, 혼합재료 (각)20×15×30cm 2016~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