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김윤철 백시(白視)

대안공간 루프 2014.12.8~23

전시장에서 나는 ‘백시’를 경험한다. 백시(白視). 화이트아웃. 하얗게 드러남과 하얗게 지워짐의 현기증 나는 중첩. “늘 보던 말을 새삼 바라보는 눈 내린 아침”의 바쇼. 백시는 매터링을 통해 가능해진다. 매터링은 물질과 그것의 (언어적 시각적) 재현 사이에서 물질 자체로 방향을 돌려 ‘물질의 물질 되기’라는 생장의 흐름에 온몸을 맡기는 실험이자 수행이다. 김윤철에게 물질은 명사 matter가 아니라 현재진행형 동사 mattering이다. 기실 물질은 몇 개의 성분과 특성들로 나뉠 수 없는, 이질적 원소들이 하나로 뒤섞인 덩어리 자체, 흐름 자체, 출렁이며 스스로 생육해가는 관계 자체가 아닌가. 기실 물질은 한 번도 순수하고 본질적인 적 없는, 끊임없이 변하는 잡(雜) 자체여서 무한한 생성에의 잠재성을 품고 있지 않은가. 김윤철은 현재진행 중인 물질의 물질 되기라는, 물질이 주체인 변화 과정에 휘젓기, 가열하기, 관찰하기 등등의 실험적 수행을 통해 ‘참여’한다. 그리고 그의 참여를 통해 전시장에 ‘현시’되는 물질되기의 과정에 나도 참여하게 된다. 하여 나도 바쇼처럼, 늘 보던 물질을 새삼 바라보게 된다. 서구인들은 물질과 인간을 분리하고, 물질을 호명함으로써 물질의 ‘그림자’들의 체계, 재현의 체계를 구축해왔다. 호명과 분류를 통해, 물질에 ‘대한’ 풍경으로서의 세계가 인간 앞에 세워졌다. 모든 것이 재현인 세계, 모든 것이 그림자이자 우상인 동굴의 시공간인 세계, 거기서는 인간의 삶조차 통째로 재현이며 그림자다. 이 도저한 재현의 경계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불교적이면서 도교적인 이 질문은 현대예술의 가장 중요한 화두이며, 현대과학이 양자역학을 통해 봉착한 의미심장한 위기의 어떤 생성적 가능성에 대한 요청이다. 김윤철은 매터링에 몸을 던짐으로써 현대예술과 과학이 벌이는 재현과의 고군분투를 놀랍도록 가볍게, 놀랍도록 무겁게 뛰어넘는다. 재현된 세계 풍경, 호명된 이름과 특성들의 연쇄를 하얗게 지우며 동시에 드러나는 (전시장을 흐르는) 이 끊임없는 물질 되기의 과정들…. 그것은 생장하는 현존 그 자체다. 날마다 획을 긋고 또 그었던 선비들의 무한정한 수행을 통해 현시되는 일필휘지의 무거운 가벼움. 부단한 실험을 통해 연금술사들이 불러내던 물질의 정령들의 빛나는 어둠. 동서가 공유하는 물질 되기의 실천, 예술과 과학이 공유하는 탈재현에의 화두, 김윤철의 <백시전>은 이 모두에 정진하는 한 수행자가 나에게 건네주는 놀라운 선물이다.
박영선 사진가, 고등과학원 초학제연구원

위 김윤철 <백시> 하이드로젤, 산・염기 혼합액 유리, 폴리비닐 아세탈 가변설치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