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남화연 시간의 기술

아르코미술관 4.10~6.28

임산 동덕여대 교수

이 전시는 예술가의 시간 다루기의 범주와 가능성을 사유하게 한다. 예술가는 단순히 시간을 이해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시간적 구성과 그것의 여러 경계면 안팎의 작용들을 검증한다. 종국에는 자아 혹은 세계의 존재 양상을 의식적으로 성찰한다. 따라서 전시 제목에서 ‘기술’을 가리키는 영어단어 ‘mechanics’는 통일적인 구체태로서의 시간의 위상을 지시하면서도 시간이라는 지평의 유동성을 함의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주지하듯이 순수한 존재의 차원이라 할 수 있는 ‘시간’은 물질세계에서 감각으로 파악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그것을 형식화하는 방법이 대체로 소리라는 질료에 의존하다보니 오랜 세월 동안 시각예술가들에게는 도전의 대상이 되었다. 이 전시에서 남화연의 작품들에 사용된 다양한 매체들은 삶의 시간적 체험을 전한다. 허나 그것은 개인의 영역에 있지 않고 사회적 의미와 공간으로 확장한다. 이미 지나가버린, 잊어버린, 되짚고 싶은 그 덧없음의 체험에 사물과 사건의 사실들을 관여시켜 객관적 실체성을 부여한다. 물질세계에서의 시간 체험은 그렇게 사회적 형식으로 재맥락화되어 수행적 미학으로 변모한다. 이 과정은 무관계한 사물과 사건에서 의미의 구성을 추론해내게 한다. 특히 이번 전시의 수행적 행위는 목소리로, 몸으로, 시선으로, 혹은 사물 자체로서 실재를 포착함과 동시에, 행위가 구현되는 시간적 매체의 내용에서 동원된 상징화 과정과 의미론적 장치들을 관객의 움직임 공간과도 연결함으로써 예술가 주체의 경험적 수행과 객체의 상상적 수행을 하나의 총체적 상황으로 고양시키려 했다. 그런 점에서 큐레토리얼 의도가 돋보이는 전시다.
이러한 통일적인 시간 조직의 전략은 예술가의 수행적 행위를 통해 관객의 의식적・역사적 현존을 일깨운다. <코레앙109>에서는 ‘직지심체요절’이라는 과거 사물에 대한 직접 경험의 시간을 저지하는, 즉 그 사물 대신 통용되는 가상의 물적 기호들이 등장한다. 역사적 세계의 미시적 사실들이 제시됨에도 불구하고, 현재 시제에 가까울수록 우리의 의식은 특정 공간에 수집되어 존재하고 있을 직지의 시각적 형상에 집약된다. 이렇게 물질성과의 시간에 집착하는 문화적 기억은 정치적 형식으로 재활용될 여지가 크다. 이는 그것의 최종 안착지인 도서관이나 아카이브 같은 근대적 지식권력 양태가 증명한다. 남화연의 영상은 수집물의 존재 과정에서 생산된 기억 시간의 파편들이 수집물을 더욱 신화화할 수 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그럴수록 시간은 권력의 구애를 받아들이며 의식과 역사의 진보를 주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유령 난초>와 <동방박사의 경배>에서도 확인된다. 지식권력의 한 작동방식으로서의 수집 관습과 권위는 파편적 기억 시간의 신뢰성을 극대화하고 시각화한다. 그러다보니 총체적 서사를 알지 못한 채 수집된 일부 형상에 기반하는 이른바 ‘환상의 공동체’는 과거 타자의 시간 체험을 조형적이고 비유적 형태로 변환하여 수용하는 데 익숙하다. 남화연이 예시했듯이 조토의 종교적 명망을 담은 이미지가 상징적으로 과학세계에서 전유되고, 19세기 난초사냥꾼이 작성한 유럽인의 식민주의적 목록 또한 마치 현대 사회에서 어떤 합의된 ‘제의’처럼 지속되고 있지 않는가. 지속되고 있다 함은 (전시장의 영상과 소리가 서로에게 연루되듯이) ‘시간의 기술’의 심층에 깔린 난제를 꿰뚫어볼 통찰이 더욱, 계속 필요함을 뜻한다. 그럼으로써 예술가의 구체적 수행의 자유는 작품으로 귀환할 수 있을 것이다.

위 남화연 <코레앙 109>(맨 왼쪽) 비디오 11분10초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