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송창: 잊혀진 풍경

2.10∼4.9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

이영란 | 미술칼럼니스트, 뉴스핌 편집위원

민중미술 진영의 대표적 화가 송창(65)은 30년 넘게 ‘분단’을 테마로 작업해왔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아픈 현대사와 대치상황을 특유의 질박하고 묵직한 회화를 통해 일깨우고 있다. 하지만 증강현실게임의 포켓몬이 뮤지엄과 문화유적지에 출몰하고, 4차 산업혁명이 논의되는 이 시점에서 ‘분단’은 일견 진부한 테마로 여겨진다. “아직도 분단을 붙들고 있느냐”는 시선도 있다. 혹자에게는 시대착오적인, 케케묵은 주제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해묵은 주제를 끈질기게 붙들고 작업해온 송창의 생각은 다르다. 분단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요, 천착해야 할 이슈라는 것이다. 남북 대치 상황이 더욱 첨예해진 현 시점에선 모두가 질문하고, 숙고해볼 과제라고 본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본격적인 미술관 개인전을 꾸미고 대작들을 발표했다. 1997년, 지금은 없어진 동아갤러리에서 개인전 〈기억의 숲-소나무〉를 개최한 뒤로 20년 만의 미술관 초대전이다.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내 큐브미술관에서 〈송창-잊혀진 풍경〉이라는 타이틀로 4월9일까지 열리는 작품전에는 근작 및 신작 회화, 입체설치 등 40여 점이 출품됐다.
전시작들은 송창의 뚝심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민간인은 더 이상 진입할 수 없는 민통선지역의 쓸쓸한 벌판을 꾹꾹 눌러 담듯 그린 〈민통선 들녁〉(1990)이라든지, 임진강변을 절규하듯 그려낸 〈임진갯벌〉(1993) 같은 1990년대 작품도 포함됐지만 이번 개인전에는 2011~2015년 제작한 작품이 주류를 이룬다. 근작들은 형식상으론 신표현주의, 내용상으론 리얼리즘 미술의 성격을 띠지만 그 카테고리에 집어넣기엔 송창의 조형실험은 다분히 초현실적이다. 현대사가 초래한 민족의 절망과 한(恨), 초자연적 세계관 등이 작품 속에 강렬하게 응집돼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인 〈섬광〉(2015)을 보자.
흰 눈이 내린 비포장도로 위로 장갑차의 깊은 바큇자국이 검붉은 흙길을 드러낸 가운데 저 멀리 군부대가 쏘아올린 포탄의 불꽃이 석양의 하늘로 솟구친다. 움푹 패어 질척거리는 흙구덩이에 고인 물은 60년 전 전투에서 누군가 흘린 선혈처럼 핏빛이다. 그 피는 질척거리는 구덩이 아래로 흘러내리며 화가의 발치에서 멈춘다. 이제 비무장지대를 떠나야 할 시간이다. 해가 지면 민간인은 머물 수 없다. 두 동강 난 조국을, 절망적인 대치상황을 절절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꿈〉이라는 그림 또한 섬뜩하다. 비무장지대에 건설되고 있는 교각이 어느 날 끊어진 다리처럼 꿈에 등장한 듯하다. 남북 분단이라는 이 길고도 어두운 터털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작가는 질문한다.
이번에 송창은 2개 또는 3개의 화폭을 이어붙인 회화도 내걸었다. 〈그곳의 봄〉(2015)이라는 3면화는 중앙에 영국군 유해를 화장했던 검은 화장탑을, 왼쪽엔 화장장 앞에 흐드러지게 핀 노란 망개초를, 오른쪽엔 영국을 상징하는 개가 그려졌다. 이미지의 중첩을 통해 분단을 서사의 영역에서 서정의 세계로 이끈 것.
송창의 근작들은 사회학자 김홍중이 최근 설파한 〈파상(波像)〉이란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김홍중은 〈사회학적 파상력〉(2016)이란 책에서 ‘상상력’의 반대가 되는 ‘파상력’이라는 말을 창안했는데, 기존의 것들이 산산이 부서질 때가 바로 파상이라 했다. 결국 파상은 위기이자 카오스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한 자각과 각성은 다른 가능성을 열어준다. ‘분단’을 주제로 한 송창의 음울하면서도 토해낼 듯 절박한 그림들 또한 비극과 혼동을 그리되 그 속에서 움트는 또 다른 가능성, 곧 ‘파상의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번에 작가는 삼베 끈을 화면 전체에 부착한 후 물감을 입혀 두터운 마티에르를 추구한 작업 등 다양한 실험을 했다. 대형 미사일을 입체로 빚어 “민중미술 하면 좌우 이념부터 따지는 통에 작가들이 많이 떠났다. 후배들도 무거운 주제는 잘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예술이야말로 다양성이 생명 아닌가. 한쪽으로 쏠린다면 그것은 고여 있는 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민중미술은 죽었다’고들 하지만 역사와 삶을 성찰하는 미술로 변모하고 있다고 강조한 작가는 자신의 〈잊혀진 풍경〉이 〈잊어선 안 될 풍경〉이 되길 소망하고 있다.

위 송창 〈망각의 통로〉(왼쪽) 캔버스에 유채 227×182cm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