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아이작 줄리언 〈플레이타임〉

2.22~4.30 플랫폼  -  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박제철 | 영화 ·  미디어 이론 연구자

2004년 부산비엔날레, 2008년 광주비엔날레, 그리고 2011년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가진 개인전까지 이미 몇 번의 전시를 통해 국내 관객에게 이름을 알린 영국의 흑인 게이 영화감독이자 영상설치 작가 아이작 줄리언의 7채널 스크린 설치작업 〈플레이타임(Playtime)〉(2014), 2채널 스크린 설치작품 〈자본 KAPITAL)〉(2013), 싱글 채널 비디오 〈표범(The Leopard〉(2007)이 플랫폼-엘에서 전시 중이다. 이 작품들은 주제와 매체 미학 양면에서 최근 그의 작업 경향에 어떤 의미심장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암시한다. 서구에 거주하는 흑인들의 복잡한 인종적, 성적, 성별적 정체성과 할렘 르네상스의 연관성을 탐구한 시적 다큐멘터리 〈랭스턴을 찾아서(Looking for Langston〉 (1989)나 블랙스플로이테이션(blaxploitation) 영화의 역사를 탐구한 다큐멘터리 〈배다스 시네마(BaadAsssss Cinema〉(2002)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 줄리언의 관심은 주로 흑인 디아스포라의 불안정한 정체성과 그것의 문화적 의의에 집중돼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래 그는 이미 어느 정도 서구에 동화된 2세대나 3세대 흑인 디아스포라보다 최근 전지구화의 흐름과 더불어 새로운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는, ‘남반구(global South) 주민들의 북반구(global North)로의 이주’로 관심의 초점을 옮기고 있다. 또한 극장 상영을 겨냥한 단일 스크린 기반의 필름이나 비디오 매체를 사용함으로써 인종 간 동성애에 연루된 남성의 신체를 육감적으로 묘사하는 데 치중하던 과거와 달리 그의 최근작은 대형 갤러리나 뮤지엄에서의 전시를 염두에 둔 다수의 스크린을 기반으로 한 설치 형식을 주로 취하며, 디지털 합성을 통해 가상적 신체와 현실적 신체 간의 경계를 부단히 넘나드는 양상을 보여준다.
〈표범〉은 이러한 변화의 이행기적 성격을 보여주는 작업으로 주목할 만하다. 최근 중동 지역 난민들이 지중해를 통해 서구로 대규모 이주하는 현상을 시적으로 묘사한 이 작품은 줄리언의 새로운 관심사를 보여주는 동시에 인종 간 동성애에 연루된 남성 신체의 육감적 묘사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원래 3채널 스크린 형식으로 전시했었으나 이곳 플랫폼-엘에서는 싱글 채널 비디오로 재편집되어 상영됐는데, 이 점 역시 매체 미학적 측면에서 봤을 때 이행기적 성격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플레이타임〉과 그 자매작 〈자본〉은 그가 더 이상 흑인 디아스포라 남성의 퀴어 정체성이라는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자본, 인간, 이미지의 전지구적 흐름이 가져오는 파국적 효과라는 새로운 관심사로 작업 방향을 완전히 선회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또한 건축학적으로 배치된 7개의 스크린을 통해 마치 한 편의 음악을 연주하듯 이미지를 전개하는, 〈플레이타임〉에 드러나는 매체 미학적 특성은 그가 어떻게 다채널 영상설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는지를 실감하게 한다. 물론 〈플레이타임〉은 내러티브 영화의 관습을 상당 부분 차용하고 있다. 장만옥, 제임스 프랭코 등 유명한 전문배우의 캐스팅이나 매끄럽고 유려한 미장센과 촬영을 보자면 가히 이 작품을 다채널 스크린 설치의 블록버스터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또한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상이한 방식으로 겪고 있는 지리적, 계급적, 인종적으로 다른 세 인물-파산한 아이슬란드인, 승승장구하는 런던의 미술품 경매사, 자식 부양을 위해 가사 노동자로 두바이에 온 필리핀 여성-의 상황을 대조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신자유주의적 전지구화의 파국적 효과를 비판하는 이 작품의 내러티브도 이제 그다지 충격적이지도 신선하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오직 관객이 7개의 스크린 중 중앙에 위치한 가장 큰 스크린 위주로, 즉 단일 스크린 기반의 영화 관람 양식으로 〈플레이타임〉을 감상할 때만 가능하다.
조나단 벨러의 ‘주목가치이론(attention theory of value)’에 따르면 미디어가 산출하는 이미지의 경제적 가치는 그 이미지에 대한 관객의 주목이 축적됨에 따라 증대된다. 따라서 자연히 가장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되는, 중앙의 가장 큰 스크린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이 가장 큰 경제적 가치를 잠재적으로 획득할 것이다. 하지만 스크린 7개의 불균등한 배치를 통해 줄리언은 이미지 경제가 공평한 자유로운 경쟁에 열려있다는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폭로할 뿐만 아니라, 중앙의 스크린으로부터 배제된 여타의 가능한 이미지들을 주변에 위치한 6개의 스크린을 통해 회복시킴으로써 독점적인 전지구적 미디어 산업에 대항하는 대안적인 주목 경제적 실천을 매체 미학적으로 실현하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플레이타임〉은 줄리언이 이 작품의 자매작이라고 말한 〈자본〉을 매체 미학적으로 보충하려는 시도로 읽힐 수 있다. ‘자본을 안무하기(Choreographing Capital)’라는 제목으로 줄리언이 기획한, 데이비드 하비의 강연을 기초로 제작된 2채널 스크린 다큐멘터리인 이 작품에서 하비는 자본은 본래 비물질적으로 객관적이며 신자유주의적 세계 질서 속에서 불균등하게 분배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자본에 관한 마르크스의 고전적 통찰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말한다. 이 때 청중으로 참여한 유명한 문화연구학자 스튜어트 홀(이후 2014년 2월 타계)이 생산 과정과 계급에만 초점을 맞추는 마르크스의 고전적 이론은 소비와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한다는 반론을 펼친다. 〈플레이타임〉은 줄리언이 스튜어트 홀의 이러한 반론을 고려하여 〈자본〉을-줄리언의 영상 작품 〈자본〉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의 저작 〈자본〉까지   -   매체 미학적으로 “다시 쓰는,” 즉 데리다적 의미에서 “대리-보충”하는 시도의 산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위 아이작 줄리언 〈플레이타임 Playtime〉 7채널 영상설치 67분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