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윤종숙

독일 쿤스트 페어라인 1.18~3.8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거주하며 작업해온 작가 윤종숙의 개인전이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도시 립슈타트(Lippstadt)에 위치한 쿤스트 페어라인에서 열렸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최근 2012~2014년에 완성한 회화작품과 드로잉을 함께 선보였다.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녀의 그림을 찬찬히 보면 집, 탑, 식물 같은 형상을 연상시키는 이미지가 드문드문 눈에 들어온다. 이 이미지는 한국의 산등성이와 굽이진 길, 어느 골목의 정자를 연상시킨다. 이처럼 어디선가 본 듯하지만, 여느 특정 지역이나 도시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지 않은 풍경은, 그녀의 정신적 뿌리, 돌아가고 싶은 고향, 어떠한 노스탤지어, 감성적인 것들에 대한 반영인 듯하다. 한편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선과 색면은 유럽 추상표현주의 작가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엔가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듯, 잠시 쉬어가는 듯한 공백과 선 하나하나의 표현은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이루는 바탕이다.
작가 윤종숙은 ‘화가의 손’을 ‘피아니스트의 손’에 비유하면서 ‘색채’를 피아노의 ‘건반’과 같다고 말한다. 그녀의 이 비유는 색을 사용함으로써 관객의 마음에 “진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한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는 캔버스를 짜고, 새로운 작업을 시작할 때 바탕색을 칠하는 과정을 특히 중요하게 여긴다. 이를 위해 매번 다른 색의 물감을 섞어 새로운 색을 만들고 여러 차례 붓질을 덧칠하는 고단한 노동을 반복하면서 화면의 바탕을 구축한다. 이러한 고단한 과정은 매번 칠한 유화물감이 마를 때까지의 기다림을 담고 있다. 캔버스 안에 수많은 시간과 일상의 흔적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윤종숙이 최근 몰두하고 있는 유화 시리즈는 예전에 실(絲)을 사용한 작업들과 사뭇 다르다. 예전 작업은 아크릴 물감을 이용해 자연에서 따온 모티프와 함께 색 면 위에 색실로 알파벳을 수놓기도 했다. 이처럼 단어나 언어와 이미지의 조합은 그녀의 작업세계에서 공통된 흐름이지만,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회화 시리즈에서는 작가가 예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민화를 염두에 두고 작가 고향의 풍경과 접목한 점이 특징적이다. 또한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드로잉은 마치 그림일기 같기도 하고, 무덤덤한 듯한 붓질은 한국의 전통 수묵화의 선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동양의 서예나 수묵화에서 느껴지는 붓 터치와 추상표현주의의 접목, 캔버스 위에 실의 사용, 기하학적 문양과 문자의 조합 같은 조형적 모색은 항상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는 작가 윤종숙의 끊임없는 노력의 산물이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Kehrer 출판사에서 발행한 도록에는 베를린의 함부르거 반호프 미술관 관장, 본 미술관 관장, 뒤셀도르프 쿤스트 할레 관장 등의 글이 실려 있다. 덧붙이자면, 윤종숙은 앞으로도 의미 있는 여러 전시에 참여할 예정이다. 이번 립슈타트 전시는 2015년 6월과 9월에 차례로 뒤셀도르프의 말카스텐(Malkasten, 6.26~7.12), 하겐의 오스트하우스 미술관(Osthaus Museum Hagen, 9.1~11.8), 2017년에 쿠어하우스 미술관(Museum Kurhaus Kleve, 2017.10~2018.1)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변지수 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