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이슬기 분화석!

미메시스아트뮤지엄 3.7~4.19

파주 미메시스 미술관에서 진행중인 작가 이슬기의 전시 <분화석!>은 전시장의 실내 구조에 따라 <안>과 <밖>으로 설정된 두 공간에서, 두 가지로 구분되는 형태의 작업들로 이뤄진다. <안>의 공간에는 10장의 커다란 누비이불이 바닥면에 놓인 하얀 좌대 위에 가지런히 펼쳐져 있고, <밖>의 공간에는 진흙으로 쌓아 올린 ‘분화석’ 조각 다섯 덩어리가 섬처럼 놓여 있다. 선명한 색감의 명주로 만든 <안>의 작업들과, 두껍고 어두운 진흙으로 투박하게 자리한 <밖>의 작업들은 그 색과 형태에서 크게 대조를 이룬다.
장인의 손바느질로 섬세하게 만들어진 <안>의 이불들은 각각이 하나의 속담과 연결된다. 붉은 바탕에 초록색 원이 들어간 작업은 ‘수박 겉핥기’, 세 개의 선으로 나뉜 ‘새발의’의 한쪽에는 동그란 ‘피’ 자국이 형상화돼 있다, ‘빛 좋은 개살구’는 정말 탐스러운 진분홍의 타원형이다. 전통적 공예작업의 형식에다 단순한 선과 형태의 디자인을 담은 이 작업은, 고급스러운 외형과는 달리 속담 제목을 통해 그 구성 요소와 의미를 쉽게 연결하도록 한다.
분화석은 동물의 배설물이 굳어져 화석이 된 것을 뜻한다. 배설물 그 자체는 거부감을 일으키는 물질이지만 분화석은 동물의 식생과 생태를 가늠해볼 수 있는 분석의 재료이기도 하다. 긴 시간은 이렇게 물체의 본질을 바꿔버리기도 한다. 하얀 전시장의 검은 덩어리들은 뾰족한 탑처럼 솟아 있거나, 둘둘 말려 올려진 형태로 운반용 팔레트 위에 앉아 있다. 물론 이것은 파주의 강가에서 퍼올린 진흙 덩어리이지 진짜 배설물은 아니다. 설명서에 쓰여진 것처럼 프랑스어 “메르드(Merde)!”는 똥이라는 뜻이자 욕설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걷다가 개똥을 밟았을 때 무심코 입에서 튀어나오는 의성어 같은 단어이다. 여기서 형상화된 분화석은 ‘똥의 화석’이자 ‘욕의 화석’이다. 욕설, 분노의 순간들이 퇴적되고 굳어져 무덤덤해진 상황들을 환기시키면서, 똥에서 유물로, 작품에서 똥으로 오가는 형상과 의미 사이의 메타모포즈를 보여준다.
이 <안>과 <밖>을 관통하는 것은 작업의 유희적 측면이다. 전통 이불이 가진 형태의 단아함을 속담의 가벼운 단어들로 용해하고, 다소 심각한 수사로 해석할 수도 있을 법한 진흙 조형물들은 분화석이라는 의미로 속내를 드러낸다. 이슬기 작가의 유희는 그것이 놓인 공간에 따라 사물들에 발생하는 의미에 의외의 연결점들을 집어 넣고, 그로 인해 생기는 위상 변화를 뜻한다. 안과 밖, 겉과 속이 다른 사물들에게서 “내가 이럴줄 몰랐지”라는 키득거림이 들린다. 공간의 바닥에 놓인 <안>과 <밖>의 작업들과는 그 결과 형태를 달리하는 두 개의 작업에 시선이 간다. 하나는 작은 탈 모양의 조형물이고, 다른 하나는 벽에 걸린 흑백의 이불 <가위에 눌리다>이다. 동그란 눈을 뜨고 있는 작은 탈은 못본 척 입을 닫았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이불 속의 형상은 갸우뚱하며 이 모든 상황을 내려다보는 까마귀의 표정을 닮았다.
김해주 독립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