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평면 탐구: 유닛, 레이어, 노스탤지어

일민미술관 2015.11.27~1.31

김인선 윌링앤딜링 대표

‘평면’은 회화라는 전통성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확장적인 의미를 생산할 수 있는 전략적 용어이다. 이에 ‘탐구’라는 단어를 결합하여 작품 자체를 전체 미술 흐름의 ‘과정’에 놓음으로써 이 전시의 실험성을 강조하려는 기획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참여 작가들은 각각 회화, 설치, 영상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데 특히 회화 작가의 경우 캔버스 위에서 재현보다는 평면성을 획득하는 방식을 꾸준히 다루고 있는 작가들을 선별함으로써 본 전시의 기본 취지를 선명하게 한다. 한편 어떤 장르를 다루든 ‘평면’이라는 기본적 형식을 출발지점으로 삼고 이를 확장하는 작가로의 테두리를 빠져 나가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만큼 ‘평면’이라는 용어는 포괄적이다.
참여 작가들은 어린 작가라 할 수 있는 세대부터 한국 모더니즘의 중심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기성 작가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이러한 포괄적 형식의 성격에 대해 좀 더 확신이 든다. 이들 작가의 성향과 다루는 매체 및 소재의 해석은 제각각이나 이 전시의 틀은 다시 한 번 이들은 회화적 태도, 이미지를 어떻게 평면적으로 다룰까 혹은 그들의 이미지가 어떤 지점에서 평면성을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 집중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 전시는 의도대로 흘러간다.
전시는 ‘유닛’, ‘레이어’, ‘노스탤지어’ 라는 세 개의 카테고리로 구성되고 이를 구성하는 작가별로 해당 키워드와의 분명한 연관성을 보여준다. 형식을 다소 우위에 둔 듯한 구성 때문인지 사실 ‘평면’이라는 형식을 기반으로 한 작업 속에서 이를 구성하는 세부 요소로서 키워드들을 두고 좀 더 미시적으로 들여다보기보다는 구획을 나누는 정도에 그치고 있는 점이 아쉽다. 즉, 이들 용어를 평면성에 대한 연구의 하위 개념으로 두기에는 이 역시 포괄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 한 명 한 명의 평면에 대한 탐구가 꽤나 흥미롭고 입체적인 데 비해 이러한 키워드를 제시하는 것이 이들을 맥락화하는 과정 속에서 다소 단순하게 해석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이들을 하나로 묶는 평면 탐구 그 자체로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흥미로운 지점들이 풍부하기 때문에 이 전시의 결은 두터워 보인다. 수집된 데이터를 색채라는 표면으로서 시각화하는 박미나와 박아람의 작업과 관객이 직접 평면이 입체로, 입체가 평면으로 환원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곽이브와 강서경, 삭제된 요소가 이미지와 그에 따른 텍스트 자체를 재배치시키는 현상을 목격하게 하는 윤향로의 영상작업, 본질적 요소로의 회귀와 동시에 행위적 요소가 가미됨으로써 평면의 근원적 단위를 직조하게 된 차승언, 색채 자체에서 폭발적으로 확장되는 시각적 감각의 화면을 만들어낸 성낙희, 잘게 분할되어 세계의 파편이 어긋나고 맞닿게 되는 그리드 구성 속에 새로운 풍경을 제시하는 박정혜 등은 매체를 다루고 이해하는 방식에서 뛰어난 작가군임에 틀림없다.
특히 형식주의를 중요시 해오며 모더니즘의 중심에 서 있는 홍승혜의 평면 탐구는 그 자체로 흥미롭다. 1930년대 영화음악과 디지털이라는 미술 신소재를 마주치게 하는 동시에 기하학적 형상의 배치들의 형식적 요소들이 등장하며 구상적 이미지로 배치되면서 드러나는 유기적인 생명력은 작품의 입체적인 감상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백경호의 캔버스는 마치 인터넷 창을 동시에 열어둔 화면을 들여다보듯 두서없고 이미지 자체로는 상호 연결성 없는 이미지들의 축적이지만, 요즘 등장한 비슷한 또래의 회화 작가들 스타일이나 동세대 문화를 반영하는 행위나 태도로 읽을 수 있다. 또한 그 어떤 것도 중요할 수 있고 중요하지 않을 수 있는 다차원적 사고의 흐름을 좇을 수 있다. 이처럼 세대 사이의 간극을 가진 이들이 모여서 하나의 전시를 구성하는 모양새는 작가들의 이미지와 표현 형식을 대하는 데에 다각적으로 변하는 태도의 흐름을 가늠케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위 박아람 <나뉜 검은 사각형>(왼쪽) 월 페인팅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