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하룬 미르자 회로와 시퀀스

백남준아트센터 2015.10.29~2.7

오경은 미술사

하얀 전시장 벽면, 닫힌 하얀 문 옆에는 ‘아담, 이브, 다른 것들 그리고 UFO’라는 전시 제목뿐 내가 무엇을 ‘보게’ 될 지에 대한 아무런 단서도 없다. 기이한 제목에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감을 느끼며 문 안쪽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쿵쿵대는 소리, 삐우삐우거리는 소리, 지지직거리는 소리, 소음, 그리곤 침묵. 이 문을 열어도 되는지 의구심이 들 때쯤 전시장 도우미가 다가와 문을 열고 들어가 체험하는 작품이라고 알려준다. 문을 열면 음향기기가 설치된 작은 방이 나타난다. 소리설치라면 한가운데서 음향을 감상해야 할 것 같은데 바닥 한복판에는 회로판을 얹은 기둥과 그에 연결된 케이블이 설치되어 있다. 회로판에서부터 LED전구들이 여덟 갈래로 나뉘어 줄지어있고 케이블들은 가운데의 기둥을 둘러싸듯 포진한 스피커들에 연결되어 있다. LED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의 전류를 소리로 바꾸어 각각의 스피커에서 고유의 소리를 들려준다. 전자회로에서 발생하는 빛과 소리를 이용하여 시각의 장인 전시(展示)공간은 소리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2014년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현재 동 기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파키스탄계 영국인 작가 하룬 미르자의 첫 국내전에 대한 내 첫인상이다. 그는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을 수상했으며 2012년 독일 카를스루에 ZKM에서의 <Sound Art, Sound as a Medium of Art전>, 2013년 뉴욕 MoMA의 <SOUNDINGS전> 등 동시대 주요 음향관련 전시에 초대되는 등 과학기술 중재를 활용하여 시각과 음향 재료를 매치하는 사운드 설치 작가로 국제적 명성을 갖고 있다. 백남준의 작업관을 이어받은 이들에게 수상되는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이 미르자에게 주어진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나 이 전시는 백남준 작업과의 연계성에 중점을 두어 작품을 선정하였다는 인상을 주었다. 예를 들어 백남준의 작업실을 그대로 재현한 메모라빌리아와 나란히 설치한 미르자의 작품은 <테스코 열차(기 셔윈에 대한 오마주)>인 다른 크기의 모니터 3대가 탑처럼 쌓여있고 모니터에서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으며 이는 연결된 LED전구의 점등?점멸과 동시에 다양한 소음을 만들어 유쾌한 음악 연주처럼 느껴지니, 그야말로 테크놀로지를 예술에 도입하고 소음과 음악 간의 위계질서를 전복한 백남준의 정신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작가로 인지된다. 마치 바로 옆의 메모라빌리아에 있는 백남준의 작업물을 가져다 만들었대도 이상할 게 없을 듯 느껴진다. 이 3대의 모니터는 ‘기 셔윈에 대한 오마주’라는 부제에도 불구하고 백남준이 샬롯 무어맨을 위해 텔레비전 수상기 3대를 쌓아 만든 <TV 첼로>에 대한 오마주로 보이도록 주최 측이 세심하게 고려하여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세 가지색의 LED전구가 설치된 작은 협탁 위에 구형 라디오를 얹고, 여기서 나오는 소리가 연결된 두 스피커 간에 방해를 일으켜 독특한 소음이 일어나 다양한 음향체험과 이와 연계된 빛의 효과를 감상할 수 있게 한 <폴링레이브>에 다다르면 백남준 작업과의 강력한 연관성으로 인해 2015년의 미르자는 1960년대 백남준의 실험 그 이상의 무엇을 성취하였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사실 하룬 미르자의 작업 전반을 살펴보면 설치공간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조사를 바탕으로 전자기기 조작 및 설치조각물을 활용하여 주어진 공간을 어떠한 빛과 소리 체험의 장으로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강하게 드러나, 사운드스케이프 작가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이 전시에서는 이러한 면보다 백남준의 자취를 느낄 작품 위주로 선정된 듯한 인상을 받아 아쉬움이 남았다. 이런 아쉬움을 <태양 교향곡>에서 씻어낼 수가 있었는데 이는 태양광 패널을 이용한 구성물로 여기에 LED전구와 스피커를 연결해 패널에 잡히는 빛의 양에 따라 다른 양의 전기가 채집되고 이것이 다양한 소리로 변하여 스피커를 타고 나오는,
즉 테크놀로지를 통해 자연에너지 그 자체를 음향화한 작품이다. 존 케이지 등의 신음악가들이 일상의 소음과 같은 구체물을 음악의 영역에 안착시켰던 것에서 나아가 소리가 아닌 구체물에서 음가를 발견하고, 이를 공간 형태를 바탕으로 스피커를 이용해 감상자가 하나의 오케스트라처럼 체험할 수 있도록 제시한 이 작품에서 미르자의 강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자연광의 따스함과 인공조명의 날카로움을 시각적, 촉각적 으로 동시에 대비시킨 감상자의 오감을 두드린다. 그가 작업시 어떤 점을 고민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미르자의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수상은 단순히 백남준 작업과 일대일 대응을 이루는 작업을 한다는 점을 넘어 시각예술분야의 지평을 확장하려는 실험정신에 대한 인정이라는 점에서 주목하게 된다.

위 하룬 미르자 <태양 교향곡_코르브 B> 태양 전지판, 스피커, LED, 전자장치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