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한운성 디지로그 풍경

이화익갤러리 5.4~24

박영택 경기대 교수
한운성의 그림은 항상 특정한 형상이 화면 중심부를 차지하고 주변은 단호한 색면으로 마감되어 있는 형국이다. 구상(재현)과 추상이 공존하고 은유적인 이미지와 평면의 화면이 맞물려 있으며 익숙한 일상의 편린들이 느닷없이 발췌되어 나앉는다. 구체적인 삶의 공간에서 분리되어 적막한 화면에 내던져진 듯한 그 이미지는 작가가 현실에서 발견한 이미지이자 생각거리를 안겨준 이미지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마치 실존하는 것처럼 단단한 존재감을 구현하며 직립해 있다. 오로지 그 이미지만을 독점적으로 강조하는 연출은 사실적인 묘사와 경쾌하고 활력적인 붓질과 짙은 그림자를 거느리며 등장한다. 그리고 배경은 그 이미지를 강조해주는 모종의 막 기능을 하면서 펼쳐진다. 일종의 도상에 해당하는 그 이미지는 작가에게 있어 자신의 시대를 드러내 의미심장한 상징일 것이다. 찌그러진 콜라 캔을 비롯해 1980년대 초에 등장한 받침목과 이후 문, 벽, 매듭, 신호등, 박제, DMZ 풍경, 과일. 그리고 이번 전시에 출품된 건물의 외관을 그린 그림 등이 모두 그러하다. 특정 오브제를 채집하고 이 오브제를 평면의 화면에 배치, 배열한 후 그것의 존재성을 강렬하게 부각시키는 일련의 조형적 장치를 세심하고 감각적으로 부려놓은 그림들이다.
근작인 <디지로그 풍경> 시리즈는 디지털로 채집한 건물의 파사드 사진을 아날로그 방식인 그리기로 옮겼다는 의미인 듯한데 이를 통해 건물의 외관 뒤에 자리한 본질이 뭔지 질문하거나 괴이한 껍데기로 치장한, 천박한 한국의 풍경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이 작업은 이미 2011년 초반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한운성이 채집하고 배열한 상징적 이미지들, 오브제들은 산업사회와 인간 소외, 분단, 유전자 조작, 급변하는 한국 사회의 단면 등을 암시하는 징표들이다. 생각해보면 그가 오랫동안 그려온 이미지는 현대 문명과 동시대 한국사회가 대면한 여러 문제를 골고루 건드리고 있는 모종의 징후적인 이미지들이고 그 이미지를 빌려 현실을 응시하는 자신의 내면을 은연중에 투영해왔다고 본다. 작가는 감각적인 재현술을 지닌 그의 손의 기능을 발화시키면서도 일반적인 구상화의 관행에서 벗어나면서 동시에 현대미술로서 편입될 수 있는 구상, 다시 말해 평면성과 추상적 요소가 공존하는 구상화를 고려하는 한편 내용주의와 형식주의의 긴장감 있는 균형을 고려한다. 보편적인 구상화로 보이지만 실은 그 이미지는 매우 얇은 물감의 물성의 흔적, 납작한 화면의 평면성이 두드러지게 검출되는 화면이자 그러면서도 매우 환영적인 이미지를 다소 기이하게 드러낸다.
그 같은 그림은 결국 지난 1960~1970년대의 추상 일변도의 화단과 1980년대의 민중미술, 그 양극단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도 그 모두를 아우르는 나름의 전략적 측면이 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캔버스의 2차원성과 이미지의 3차원성을 혼재시키는 한편 미니멀리즘과 색면 추상을 껴안고 있고 다시 그 위에 사회성 짙은 메시지를 올려놓으면서도 여전히 손으로 그려지는 그림의 맛과 환영성을 올려놓고 있는 것이 한운성의 그림인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써놓고 보면 한운성의 그림은 너무 많은 고려 속에서 풀려나온다는 느낌이다. 그것들은 기실 작가 작업의 알리바이를 만들어온 것들이자 그만의 그림 특성을 구현해온 것들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한운성의 그림을 일련의 틀/경계 안에서 제한해왔던 것은 아닐까?

위 한운성 <생텍쥐페리 기념관>(맨 왼쪽) 종이에 아크릴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