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데비한 To See What Eyes Cannot See

트렁크갤러리 1.8~2.3

2012년 성곡미술관의 개인전을 끝으로 8년 동안의 한국생활을 접고 LA의 집으로 돌아간 재미교포 작가 데비 한(Debbie Han)의 행보가 자못 궁금했다. 뉴욕에 전속화랑이 생겼다는 소식은 들었고, 트렁크갤러리의 새해 첫 전시에서 근작 <Color Graces>를 보았다. 작가의 ‘번개머리’는 여전한데, 작품은 많이 변했다. 2013년 LA에서 시작한 <Color Graces>는 흑백사진 연작 <Graces(여신들)>의 후속작으로, 서양의 고전적 여신상들의 두상과 현실을 살아가는 다양한 인종의 여성의 몸의 혼성적 결합이 주축을 이룬다. 여기에 인종 구분의 표지인 피부색으로서 “유색”과 이를 재현하는 장치로써 컬러 사진, 즉 문화와 기술이란 두 개 층위의 “Color”를 도입하면서 외형적으로나 개념적으로 큰 전환점을 맞았다.
데비 한에게 한국 생활은 내부자이자 외부자라는 이중적인 시선으로 문화적 충격과 문화 간의 차이를 성찰하며,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를 통합하는 혼성문화의 어법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글로벌한 도시 LA에서 다인종과 다문화적 삶을 일상적으로 마주하며 작가의 관심은 문화적 차이, 성별, 피부색을 넘어서는 인간으로서 공통점, 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진지한 철학적 문답으로 넘어갔다. 전시 작품 중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에서 이런 사유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서양에 잘 알려진 동양의 “세 마리 원숭이” 도상에서 각각 눈, 귀, 입을 가린 자세를 차용하고 그 금언의 의미를 확대한 이 작품은, 외형이 아닌 내면세계의 가치에 집중할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감정을 사계절에 비유한 <희로애락>의 일부인 <존재의 계절 IV(Season of Being IV)>와 <여기 지금(Here and Now)> 역시 다양한 차이를 뛰어넘어, 인간의 슬픔이나 고통의 공유와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공감의 순간을 포착했다. 지구화 이후 전쟁터가 되어버린 인간 생존의 척박한 삶의 현실 속에서 작가는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서로 다른 인간들이 어떻게 교감하며 소통할 수 있는지를 질문하며, 그 사유의 장으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그러나 이전의 작품들이 종종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는 오해와 불편을 일으킨 것처럼, 미국에서 제작된 신작들이 한국의 맥락에서 다르게 해석될 소지를 배제할 수 없는데, 이 같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작품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동안 사진, 조각, 오브제, 설치 및 청자와 백자, 옻칠과 자개를 이용한 상감기법까지 다양한 매체와 기법을 섭렵하며 꼼꼼하고 고된 수작업에 집중했던 그녀가 17년 만에 회화를 다시 시작했고 한다. 회화작품을 다시 잡게 된 것은 인간과 삶의 본질에 대한 근자의 사유와 무관하지 않다. 회화 신작들은 6월에 전속 화랑인 뉴욕의 리코 마리스카 화랑(Ricco Maresca Gallery)에서 첫선을 보일 예정이라니 궁금해도 기다려 볼 수밖에.
김현주 추계예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