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그만의 방: 한국과 중동의 남성성

아트선재센터 2014.12.19~1.25

한국의 현대작가가 남성의 존재에 주목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조선시대 회화에서는 미인화나 풍속화에 더러 여성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려지는 대상은 대체로 남성이다. 단적인 예가 초상화로, 관복이나 학창의(鶴氅衣) 차림의 남성 초상화들은 그들의 우월한 사회적 지위를 드러낸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상황이 역전되어, 여성 이미지가 회화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국민화가’로 불리는 박수근의 그림을 보면, 여성들은 좌판을 벌이거나 머리에 무엇인가를 인 채 바삐 움직이고 있으며, 때로는 절구질이나 빨래를 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반면 남성들은 우두커니 앉아있거나 아예 ‘그림틀 밖’에 존재한다. 현대작가가 남성이나 남성성에 주목한 것은 최근의 일인데, 그 시선은 전통사회와 사뭇 다르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그만의 방: 한국과 중동의 남성성(A Room of His Own: Masculinities in Korea and the Middle East)전>은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로 구성됐다. 한국작가 외에 터키, 이라크, 오만, 레바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등 중동지역 작가들이 참여한 이 전시는 남성의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그간 한국의 현대미술 담론에서 여성이나 여성성, 혹은 여성의 인권에 대한 문제는 자주 거론된 반면, 남성이나 남성성, 혹은 남성의 인권문제는 거의 주목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전시가 내건 ‘남성성’은 이색적이다. 게다가 한국과 중동이라는, 피부색과 지역, 종교, 문화가 전혀 다른 두 지역의 미술을 묶어냈다는 사실 또한 흥미롭다.
한국과 중동은 지역과 인종, 문화가 전혀 다르지만, 비서구권이면서 장남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라는 점 등에서 얼마간의 공통점이 있는데, 전시 기획자는 이 두 사회에서 나타나는 남성의 이미지와 남성성의 문제에 주목했다. 그러나 남성중심사회의 전형이라 할 두 지역에 살고 있는 남성들의 모습은 우리의 선입관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가부장적 전통사회에서 권위를 부여받은 동시에 가족을 부양해야 할 책임을 진 남성의 모습은 이동용의 <아버지>(2014)에서 드러난다. ‘아버지’는 작품 제목이지만 실제로는 ‘사진 바깥’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박수근의 작품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아버지>에서 강조하는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희생이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진짜 힘들었거든예”라고 하던 장남 덕수의 자괴적 읊조림이 공감을 얻는 것도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문화는 다르지만, 태미 고 로빈슨의 <크라잉 미-임>(2014)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또한 <언덕의 왕들>(2003)에서처럼 아무런 소득 없이 무모한 노동이나 놀이를 즐기는 중동 남성들이나, <우리가 깨어났을 때 본 것>(2006)에서 보이는, 무너질 기미가 전혀 없는 벽을 넘어뜨리기 위해 애쓰는 남성들은 강하고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게 아니라 무모하고 앞을 예측하지 못하는 존재로 표현된다. 이는 여성과는 다른 차원에서, 규율, 전통, 타인의 시선에 갇혀 있는 피해자로서의 남성 이미지이다. 또한 외모와 패션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남성들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아카이브 작업들은 ‘남성성’에 대한 허구를 폭로함과 동시에 남성들의 자기인식이 변화된 현실을 드러낸다. 이처럼 <그만의 방전>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은 여성 못지않게 사회적 규율에 의한 희생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남성과 여성을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인 틀로 바라보는 시선을 해체할 뿐만 아니라, 남성성 역시 여성성만큼이나 허구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전시 기획자인 이혜원 교수는 ‘남성 문제’를 오랫동안 생각해왔고, 중동지역에 머물면서 리서치를 하는 한편 중동 미술에 대한 연구논문을 발표한 적도 있다. 물론, 한국에 살고 있는 여성 기획자이다보니 중동의 남성을 다룬 작품 해석에 일정 정도 2차 자료에 기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겠지만, 기획의 참신한 시선이 우리의 인식을 확장시키는 기회가 된 것은 분명하다. 이를 계기로 한국 미술계에서도 ‘남성문제’와 ‘남성 이미지’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김이순 홍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