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2015 랜덤 액서스

백남준아트센터 1.29~5.31

이번 <랜덤 액세스전>은 백남준아트센터의 큐레이터 5인이 각각 2인/팀씩 추천한 작가들로 구성됐다. 전시 제목이 암시하듯, 예술사 최초의 관객 참여적 사운드 설치작품이라 할 수 있는 백남준의 〈랜덤 액세스〉(1963)의 미적 의의와 실험성에 반응하는 동시대 예술작품을 선보인다. 그들 작품이 미래를 향해 내뿜는 에너지의 현실적 순환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전시 전체를 압도할 특정 개념의 부제를 내세우지 않으며, 전시장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위치를 허락하지 않는 물리적 환경에서 작품들은 각자의 전시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게다가 일부는 백남준의 작품들과 경계 없이 관객 동선을 공유한다. 이러한 큐레토리얼 특성들을 고려해, 이번 전시에 대한 필자의 짧은 비평적 시도를 다음 질문들로 시작하고자 한다. 전시 자체가 어쩔 수 없이 가지는 ‘백남준’이라는 기원과 그것에서 희구되는 예술성에 대한 긴 궁리가 전개되는가? 말 그대로 “임의적 접속”의 가치화를 구체적으로 성취하는 데 필요한 지적 자극이 성공적으로 운집되어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전시 작품 자체의 창의적 깊이를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특히 이 전시가 고양된 전위적 시각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논리성을 높이 평가해 선정한 동시대 예술작품에 기반을 둔 것이라면, 현실에서의 궁핍함과 부조리함의 대질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50여 년 전 백남준이 제시한 모종의 미래적 전망에 대한 예감을 전하는 작품들의 생명력을 파악해야 한다. 관객의 신체 운동을 권하고 그 몸짓들을 모니터를 통해 즉각적으로 이미지화하는 박승원의 〈멜랑콜리아 1악장과 2악장 합주곡〉, 호기심을 자아내는 낯선 덩어리들로 구획된 공간 연출에 식상하면서도 답하기 난해한 질문을 결합함으로써 관객들의 움직임에 무덤덤한 고민을 얹는 이세옥의 〈미래의 방〉, 세계 대상에 잠복된 모듈의 관계성을 끄집어내어 다시 세계의 모호한 집적을 들추는 오민의 영상작품 등은 백남준의 〈랜덤 액세스〉의 본질론, 아니 어쩌면 그 효용론에 가까워보인다. 과장과 무모함을 허용하고 동작과 사물과 소리의 세속적 경계를 리듬으로 혼란시키는 것은 백남준 예술이 후세에 권한, 모험해야 할 미궁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양정욱의 〈노인이 많은 병원, 302호> 연작은 요언(妖言)이 난무한 이 시절에 둔중한 조형물의 이합운동으로 관객의 미세한 세부를 찌르는 듯한 이야기를 펼친다. 김웅용의 영상작품 역시 영화 미디어에서의 말과 그림의 존재적 궁지를 해결할 표현을 찾아 나선다. 물론 이러한 단문들로 이 전시에 참여한 젊은 예술가들이 미디어사회를 곡진하게 살피기 위해 제시한 감각의 문법들이 쉬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의 예술 기획에서 시대적 허기와 예술가의 허약함을 극복하려는 백남준 정신에 대한 그리움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이 전시가 부제를 숨긴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임산 동덕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