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김효숙 꿈의 도시, 적당한 거리

관훈갤러리 2014.11.26~2014.12.16

허물어지고 해체되어 무중력 상태의 파편들처럼 뒤죽박죽 섞이는가 하면 회오리가 지나간 듯 부유하는 난장 속 건축 현장, 그 속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정체불명의 잿빛 사람들이 주춤거리며 배회하듯 서성인다. 김효숙의 회화에서 자주 목격되는 이러한 상황에는 일말의 따뜻한 기운이나 위로, 유머조차 담겨있지 않으며 그렇다고 노골적인 냉소도 드러나 있지 않다.
다만 산산이 흩어진 잔해더미를 통해 존재의 파괴와 상실을 증거하고 어딘가에 남아있을 그 흔적들과 의미들을 가차 없이 지우고 또 거두어가는 듯하다. 이러한 분열적인 상황은 어린 시절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수도권 신도시 주변으로 빈번히 이사를 다니면서 목도한 도시개발 현장의 냉혹하고도 폭력적인 풍경을 되뇌고, 어디에서도 쉬이 정착하거나 적응하기 어려웠던 자신의 심리적 괴리감과 소외감을 고백하는 행위로 이어졌다. 인간의 생존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일방적인 자연 파괴 행위를 버젓이 합리화해온 도시개발정책, 그리고 그러한 강압적인 정책 논리에 따라 자신들의 삶의 구조를 결정해야 하는 현대인의 비극적인 현실. 그는 자신이 겪은 삶의 형태가 도시를 중심으로 자행되어온 인간 중심의 이기적인 행보에 의한 것이었고, 다시 그 구조 속에 강제적으로 함몰되어 살아야했던 무기력한 상황 속에서 형성되었음을 자각하고 그것을 부단히 폭로해왔던 것이다.
이번 전시 <꿈의 도시-적당한 거리>는 그러한 사적인 차원의 ‘은폐의 고발’에서 나아가 오랜 시간 도시 위에 축적된 인간의 꿈과 욕망, 상실과 절망, 기만과 망각의 표정을 보다 넓게 추적하고 있다. <꿈의 도시 Ⅰ>은 지인의 죽음을 통해 산 자와 망자가 도시 위에 경계 없이 혼재하고 있음을 새삼스럽게 인식하고, 도시와 함께 꿈꾸며 삶을 영위했던 존재들과 그들의 꿈을 품고 있는 도시의 관계를 환기한다. 결국 인간은 도시와 불화하면서도 적당히 고슴도치의 거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연민의 감정이 서려있는 듯하다. <꿈의 도시 Ⅱ>는 6・25전쟁 당시 1만4000명의 피난민을 구조하기 위해 원칙을 무시하고 생사를 넘나드는 위험을 무릅쓴 미군함정 ‘메러더스 빅토리호’의 미담을 다루었다. 작가는 인간만의 논리로 이룬 도시의 삭막하고 무자비한 현실이 결국 인간 스스로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인간 존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투신했던 ‘메러더스 빅토리호’와 같은 흔적들을 찾아 도시와 인간의 관계망을 보다 유연하게 확장하고 있다.
작가는 그동안 서울, 인천, 베이징, 프랑크푸르트, 시드니, 오클랜드 등 많은 도시를 여행하고 경험했다. <서해 5도>, <숲-푸른산> 등을 비롯한 다양한 드로잉은 그 도시들이 간직해온 독특한 분위기와 표정을 살피고, 그 속에서 희로애락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삶의 구조와 실존의 의미를 찾고 있는 듯하다. 어린 시절 무기력한 상태로 이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던 도시 속의 불편한 경험은 이제 자신의 능동적인 의지에 의해 선택하는 도시 속의 온전한 생활로 전환되었고, 또한 오래전부터 누적되어온 자신의 상처에 대한 기억은 인간 자존의 의미를 추적하는 이번 전시의 행보를 통해 부지불식간에 회복되고 있는 듯하다.
최정주 OCI미술관 수석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