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이동기 무중력

갤러리 현대 2014.11.20~2014.12.28

이동기 하면 생각나는 것은 ‘비주관적 작품’이다. 그리고 대중문화와 팝아트. 지금까지 그가 경계하고 저항했던 것을 필자가 억지로 말을 만든다면 ‘개념미술적 작가중심주의’가 아닐까 한다. 먼저 이동기는 서구 개념미술에 반기를 든 제프 월(Jeff Wall)을 이야기한다. 개념미술에서 출발한 월은 그 한계를 절감하고 대중문화(광고판)와 작품의 물리적 크기에 주목했다. 즉 공허한 개념을 떠나 실제 작품을 보고 느끼라는 것. 사실 개념과 논리가 득세하는 최근 한국 미술계를 보면 월의 태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음은 작가중심주의. 이동기는 일전에 “작가는 작품의 창조자이고 마치 신과 같이 작품의 의미를 100% 규정해왔다. 작품의 관람자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해야만 했다”라고 지적하며 이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작품읽기가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일찍이 사이 톰블리(Cy Twombly)는 위계질서가 없는 낙서 같은 그림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감소시키고 익명성을 부각시켰다.
이번 전시에서 톰블리와 관련해 눈에 띄는 작업은 이다. ‘Doodling’은 지루한 수업이나 회의에서 딴 생각하며 낙서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이 작품에는 이동기가 무심코 그린 낙서가 포함되어 있다. 더불어 화면 전체엔 다양한 색의 작은 사각형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이 사각형의 정체는 색종이라고 한다. 크리스마스 때 색종이가 흩날리는 장면을 찍어 보도한 사진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색종이가 날리는 모양은 사람의 통제를 벗어나 우연적으로 만들어진다. 이동기는 이 작품을 ‘절충주의’라고 부르는데, 절충주의의 대표작은 규모가 상당히 큰 과 이다. 에는 전단지의 글귀, 명랑만화, 광고 이미지, 작가의 낙서, 북한 포스터, 보도사진, 추상적인 그림, 패턴과 문양 등 실로 다채로운 이미지들이 무작위로 혼재되어 있다. 그는 완성된 형태를 정해놓고 그림을 시작하지 않기 때문에 중간에 형태가 변형되는 것은 다반사이다. 그리고 소위 ‘추상’ 작업이 2층에 3점, 1층에 4점, 지하 1층에 2점 등 전시장 곳곳에 걸려있다. 이는 어떤 논리와 개념에 기반을 두지 않은 채 무의식, 우연, 즉흥으로 빗어낸 물감 덩어리이다.
이처럼 이동기의 작품에 나타나는 무의식적인 낙서, 화려한 색채, 자유로운 형상 배치, 강렬한 북한 포스터, 상상력이 기발한 만화, 광고 이미지, 거대한 화면, 장식적인 패턴 등은 모두 개념주의적 작가중심주의에 의문을 제기하고 회화가 가진 본연의 힘을 복권시키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물론 그의 작품에 개념적인 요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개념만 보여주고 끝나는 작품이 아니라 개념 이외에도 다양한 요소가 있다는 것을 제안하는 그림이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때론 복잡하고 혼란스럽지만, 그의 그림은 요즘 그가 관심을 갖는 ‘무중력’과 통하는 듯하다.
류한승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위 이동기 <파워 세일> 캔버스에 아크릴 360×840cm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