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ATOR’S VOICE

폐기된 사진의 귀환 – FSA 펀치 사진전
갤러리 룩스 5.3~6.4

박상우 중부대 교수
3년 전인 2013년, 사진 한가운데에 구멍이 뻥 뚫린 ‘괴상한’ 사진들을 처음 보았다. 그것은 1930년대 미국 농업안정국(FSA)이 자신의 이념에 걸맞지 않다고 판단되는 10만여 장의 필름에 펀치로 구멍을 뚫어놓은 것들이었다. 이 사진들은 ‘폐기된(Killed)’이라는 딱지가 붙어 수십 년 동안 미국 의회도서관 한쪽 구석에 버려져 있었다. 이 사진들을 처음 보았을 때 사진 중앙에 뚫려 있는 커다란 구멍의 압도적인 스펙터클에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진을 수없이 보아온 필자도 이 구멍 앞에서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시각적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펀치 사진에는 단지 이 같은 시각적 충격만이 아닌, 사진에 관한 좀 더 ‘근원적 요소’가 있을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곧바로 10만여 장의 펀치 사진을 온라인을 통해 보기 시작했다. 동시에 이와 관련된 광범위한 문서 자료들을 수집, 검토했다. 그리고 이 펀치 사진을 전시를 통해 국내에 소개하고 이에 대한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 ‘기괴한’ 사진에는 사진의 기존 담론을 뒤흔들 수 있는 결정적인 것이 숨어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펀치 사진을 파고들면 이전과는 현격히 다른 새로운 사진사를 건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FSA 사진에 숨겨진 이면의 역사를 드러내고, 다큐멘터리 사진, 나아가 기존의 사진사에 가려져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지시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펀치 사진은 기존의 다큐멘터리 사진과 사진사 전체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사진에는 숨은 역사 외에 사진에 관한 좀 더 심층적인 요소가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모든 사진에서 핵심적 행위인 ‘선택(selection)’이라는 실천이었다. 기존 사진철학은 ‘촬영하기’ ‘촬영되기’ ‘바라보기’라는 세 가지 실천에 주로 관심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펀치 사진은 이 세 가지 외에 ‘선택하기’라는 또 다른 실천이 존재 한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일깨워줬다. 따라서 펀치 사진은 이전의 사진철학이 망각한 사진의 핵심 요소를 새롭게 정립함으로써 현대 사진철학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 같은 ‘이론적이고 개념적인’ 기획 의도하에 전시장에 배치될 사진을 선정했다. 아래층에는 FSA가 이 사진들에 구멍을 뚫은 기준에 따라 사진을 배치했다. 그 기준은 중복된 사진, 기술적으로 실패한 사진, 사진가가 실수한 사진, 다큐멘터리 사진에 맞지 않게 너무 예술적이거나 혹은 인물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고 있는 사진 등이었다. 위층에는 10만여 장의 펀치 사진 중에 가장 기괴하고 초현실적이면서 동시에 예술적인 사진 단 8장만을 골라 크게 프린트하여 전시했다. 이를 통해 차가운 도큐먼트 사진이 동시에 얼마나 예술적인 사진이 될 수 있는지를 제시하고자 했다. 한쪽 벽에는 네 개의 펀치 구멍을 크게 확대한 필자의 사진 (2016)을 걸어놓았다. 말레비치의 (1915)을 차용한 이 사진은 펀칭의 여파로 생긴 구멍 테두리의 선(線)들을 통해 FSA 권력, 나아가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 손’의 귀환을 암시하고자 했다. 전시장 혹은 웹상에서 누군가가, ‘폐기되고 버려진 사진을 어떻게 전시장에 걸 수 있느냐’고 거칠게 항의하기를 바랐는데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관객의 높아진 눈높이를 필자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위 갤러리 룩스에서 열린 <폐기된 사진의 귀환> 전시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