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THEME

DF2B3647

위 최진욱 <서서히>(오른쪽) 캔버스에 아크릴 194×518cm 2013 <북아현동4>(왼쪽) 캔버스에 아크릴 97×130cm 2012 아래 오치균 < First Ave > (오른쪽) 캔버스에 아크릴 100×200cm 2014

최진욱 개인전 <서서히> 인디프레스 4.1~21
& 오치균 개인전 <New York 1987~2016> 금호미술관 3.4~4.10

 

화가 오치균과 최진욱. 사실 이 두 중견 작가의 작업은 닮은 구석이 없어 보인다. 회화를 재현하는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지점이 두 작가의 작업을 함께 살펴볼 때 새로운 흥미를 일으키지 않을까? 오치균은 표면의 강렬한 질감을 통해 강한 인상을 전달하고, 최진욱은 일상적인 풍경 속에서 정치적인 이슈를 이끌어낸다. 필자는 이들의 작품을 토대로 비평에 대한 딜레마를 털어놓으며, 비평의 역할을 성찰한다.

말수가 적은 회화와 많은 회화 앞에서, 비평의 딜레마

반이정 미술비평
한 면 위에 담긴 공간적 의사소통을 텍스트라는 시간적 의사소통으로 번역하기. 회화에 대한 평론을 이처럼 단순히 정의해도 무방할 거다. 감상을 돕자고 출현한 게 평론일진대 평론이 감상에 걸림돌과 부담 요인이 될 때가 실로 많다. 이는 주어진 지면을 채워야 비로소 완성되는 평론의 생리와도 연관이 깊다. 이걸 평론의 딜레마라 불러보련다. 동일한 작품에 전혀 상이한 여러 해석이 나오긴 어렵다. 해서 새 필자는 앞선 필자들의 인용문, 그림의 주제와 연관된 참고 문헌의 장황한 나열, 종래 해석을 살짝 비튼 동어반복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지면을 구성하기도 한다. 그러니 쥐어짜낸 문장으로 분량을 채운 평문이 쉽게 출현한다. 이런 일은 실로 흔한데 이런 현상을 평론가의 인습이라 해도 괜찮겠다. 그래서 주제에 큰 편차가 없는 어떤 작가에 대해 동일한 필자가 여러 차례 평문을 쓰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나는 평소 믿는다. 이런 사정이야 어떠하건 작품이란 평론과 한 묶음으로 유통되는 형편이다.
이 같은 작품-평론의 유통 구조, 견제 받지 않는 평론가의 인습 등으로 인해 동어반복적인 평론과 비문에 가까운 ‘읽히지 않는’ 평론은 제재를 받지 않고 계속 생산되는 거다. 오치균과 최진욱은 미디어 친화적인 화단에서 생존한 중견 회화 작가이지만, 이 둘은 상이한 지평에서 다뤄지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자료에 따르면 둘은 같은 기획전에 함께 묶인 바 있다. “주목할 만한 새로운 동향과 전망을 끌어내는 데에 역점”을 두고 기획되었다는 25년 전 <바람받이-1991년의 동향과 전망展>(서울미술관 1991년)에서 30대 중반이던 둘은 그들의 현재를 예고하는 원형을 보여준 바 있다. 세잔 풍의 붓질로 연희동 습작을 남긴 최진욱과 안료의 재질감을 살려 용산과 무악재를 재현한 오치균은 그들의 원형을 확인시킨다. 인습적인 회화의 관행에서 벗어난 실험성 때문에 둘은 당시 주목받은 걸 것이다.
오치균과 최진욱을 말수가 적은 회화와 많은 회화로 도식적으로 구분할 수도 있겠다. 작가의 사연이 화면 위에 깊이 스며있다손 쳐도 오치균의 완성도는 요철감이 지배하는 그림의 평면에서 9할이 결정된다. 반면 최진욱을 설명하는 용어는 무척 많다. ‘감성적 리얼리즘’ ‘신비하고도 과학적인 리얼리즘’ ‘개념적 회화’ ‘생태적 회화’에 이번 개인전에선 박찬경이 ‘사건 실재주의’라는 신조어까지 추가했다. 이처럼 다채로운 개념이야 어떻건 최진욱의 작업관은 사실주의와 형식주의, 구상과 추상, 정치성과 순수예술 사이를 반복하는 작가적 태도로 요약될 게다.
1987년부터 현재까지의 뉴욕 체험기를 다룬 오치균의 개인전을 보면서 나는 수첩에 ‘인상주의’라 적은 후 “이건 좀 구식 비유인가?” 하며 주저하기도 했다. 그의 호소력은 언어적 해석보다 체험을 통한 공감이 크다. 아트페어는 흔히 3강 구도의 풍경을 보여준다. 극사실주의, 팝아트, 안료의 재질감이 강조된 회화가 그 3강이다. 안료의 재질감이 주는 직감적인 호소력은 대중적 미술행사를 통해 반복해서 확인된다. 오치균은 아크릴물감과 모델링 페이스트를 혼합한 안료를 손가락에 묻혀 그린다고 알려졌다.
뉴욕 체류기 ‘회고전’을 다룬 이번 전시에서 나는 1995년 전후의 그림을 편애했는데, 오치균 화면의 촉각성이 내게 남긴 첫인상이 1995년 무렵 어느 전시장에서 형성됐기 때문이다. 차량 매연과 눈이 뒤섞인 우중충한 도로의 질감을 회화로 묘사하지 않고 안료로 대체하고 있었다. 재현 대상을 묘사가 아닌, 안료의 대체로 완성한 그림의 호소력은 복잡한 설명 없이도 간명하게 간파될 수 있다. 나는 여태 오치균을 다룬 평론을 한 번도 읽어본 바 없었다. 이번 기회에 찾아보니 예상대로 그 많은 평론이 유사한 논평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내가 주저하면서 메모했던 인상주의에 대한 언급마저 이미 다른 필자가 남겼다. 설명 없이 화면의 재질감으로 평가해도 될 오치균에 대해,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필진이 장식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 알았다. 《아트인 아메리카》 편집장(리처드 바인), 서울미대 교수(정영목), 문학평론가(김우창), 소설가(김훈), 이번 개인전에선 뇌과학자(정재승)까지 가세했다.
각계 인사의 평가를 듣고 싶은 당사자의 심정은 알겠으나, 언어의 풀이보다 화면의 물성으로 승부수를 두는 회화도 있는 법인데 굳이 이럴 필요까지 있나 싶다. 정재승은 작품론을 부탁받은 모양인데 ‘작가와의 대화’로 글의 형식을 변경했다. 그는 작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지만, 아마 종래의 해설들과 상이한 해석을 보고 자기 전공을 살려낼 도리를 순진한 그로선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짧은 논평만 남기련다. 임페스토는 그의 브랜드가 됐지만 1995년 뉴욕이 2015년 뉴욕보다 훨씬 깊다. 지인의 조언을 빌리면, 작품이란 게 삶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법이라 근작에선 오치균 브랜드만 강조된 느낌이다. 그가 1995년의 미학으로 되돌아가긴 어려울 게다.

오치균   캔버스에 아크릴 169×111cm 1995

오치균 < Houston Street > 캔버스에 아크릴 169×111cm 1995

주관적인 확신을 넘어
오치균의 필진 구성과 대조적으로 최진욱 미학은 심광현 개인이 독점하다시피 공급했다. 형용모순처럼 들리겠지만 최진욱의 그림은 화면보다 그와 그를 지지하는 평론이 압도하는 형국이다. 이번 전시에선 박찬경이 글을 썼는데, “최진욱의 작품을 비교적 쉽게 이해”할 목적으로 써선지 심광현의 ‘잘 읽히지 않는’ 난문보다 훨씬 낫고 신작보다 포괄적인 작가론에 집중한 글이다. A4용지 11매 분량의 서문은 뒤로 갈수록 잘 읽히지 않았다.
예를 들어 “그에게 그림은, 오늘의 생활 속에서 매순간 살아있는 실제 사건들의 연쇄 속에 움직이고 있는, 정체성을 지니기 이전에 있는 어떤 복합적인 상태이며 주객관이 만나는 충만한 장소이다.” 같은 문장을 보자. 언어 사용을 생업 삼는 비평가의 직감으로 말하자면, 저 입증 불가능한 문장은 어떤 의미가 담겼을 테고, 어떤 미적 공동체에선 의사소통 때 사용될 게다. 그렇지만 저런 평가 방식 혹은 의사소통은 확장성을 지니지 못한다(대중에 대한 확장성이 아니라, 미술 전공자 집단에 대한 확장성을 말하는 거다). 나는 최진욱의 작품 혹은 평론이 독보적인 혹은 폐쇄적인 소수의 미적 공동체가 나누는 반증불가능한 주관적 미감이자 개인적 확신이라고 판단한다. 때문에 리얼리즘에 뿌리를 둠에도 확장성이 낮다. 이건 숙제다. 이를 어쩔 건가? 전시에서 구체적인 예를 들자.
박찬경은 “북아현동을 걷는 교복 입은 소녀들의 모습에서 세월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라고 묻기도 한다. 이쯤 되면 난감해진다. 이렇게 되묻자. <북아현동4>(2012)로부터 세월호를 떠올리는 남다른 미적 감성의 공동체가 있을 것이며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같은 이치로 절대 다수의 ‘미술 전공자 그룹’은 그런 연상을 떠올리지 못할 테고 이는 최진욱에 대한 몰이해가 아닌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교감의 총체적인 엇나감은 작가가 풀어야 할 몫이지 수용자의 과제가 아니다. 문제는 최진욱의 작업과 평론의 대부분이 이처럼 흔들리지 않는 주관적인 확신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확장성의 문제가 <북아현동4> 한 점에만 걸리는 게 아니라는 거다.
개인전 제목으로 쓰인 400호 캔버스의 <서서히>도 보자. 이 그림은 친구 부친상을 기초로 완성한 2008년 개인전 <88만원 세대>에 출품된 <메멘토 모리 2>라는 그림을 2013년에 재구성한 거다. 작가의 진술에 따르면 2012년 대선 때 정권이 교체되리라 확신한 작가는 이명박 시대를 땅에 묻는 의미를 담으며 그리고 있었단다. 정권교체에 실패한 현실은 차치하더라도, 일상적 장례 풍경에 정권교체라는 정치적 풍경을 이입시킨 셈인데, 박찬경은 이 작업을 “일상과 정치의 감각적 지적 일치라는 최진욱의 오랜 시도가, 이 그림을 통해 이제 결실을 맺은 것 같다”고 격찬한다. 다시 북아현동 여고생 그림과 세월호 연상 작용을 환기해보자. 일상적 장례식 그림이 정권교체의 은유임을 작가의 진술이나 전시 서문을 통해 가까스로 확인한들 “음. 그런 거였군”하고 만다. ‘사실 확인’ 이상의 감정이입이 어렵단 말이다. 이때도 감정이입의 실패는 둔한 미감의 결과이기 보다 작가의 리얼리즘이 반증불가능한 주관적인 확신에 기초해서라고 나는 본다. 나는 차라리 최진욱의 완성도가 그의 치열한 정치성과는 별개로, 디테일이 결여된 붓질과 자의적 채색에 있다고 본다. 요컨대 <북아현동3>(2011)에서 여고생 다리의 빨간 채색이나 <서서히>에서 분홍색 봉분 같은….
비평을 위해 작가의 진술과 남이 써둔 비평을 두루 검토하는 사전 작업이 자연스러운 과정처럼 굳었건만, 지리멸렬하고 불필요한 인습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이 두 작가를 해석하기에 앞서 통 읽히지 않는 평문들(최진욱)을 살피거나, 거의 유사한 해석을 살짝 바꿔 반복하는 이름만 다른 필자들의 평문들(오치균)도 봐야 했다. 이럴 때면 위기론에 에워싸인 평론의 역할이 차라리 침묵인 것도 같다. ●

최진욱  캔버스에 유채 160×117cm 2008

최진욱 <알바천국2> 캔버스에 유채 160×117cm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