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 THEME Africa Now: Political Patterns

 

 

아프리카 (9)

Yinka Shonibare, MBE (왼쪽) Victorian children’s dresses made of Dutch wax printed cotton 각 460×280cm 2010

글로벌라이제이션 이후 소수자, 제3국가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 아프리카의 미술을 소개하는 전시는 극히 드물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아프리카 나우: Political Patterns>(2014.12.6~2.15)는 그 동안 간과해온 아프리카의 예술을 대거 소개한다. 미국 영국에서 활동하는 아프리카 출신 작가를 포함한 20명의 작품 100여 점이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민속적인 면을 강조한 작업을 단순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탈식민주의 이론, 이민세대의 인종차별, 아프리카 대륙 내의 사회 정치적 문제를 다루는 작가들의 작업을 선별해 흑인 디아스포라의 탈식민주의적 예술적 성찰을 엿 볼 수 있다.

정체성이라는 환영(spectre)-정체성 정치학으로서의 아프리카 현대 미술

정현 미술비평

사회 전반에 팽배한 정체성에 대한 요구는 개인적으로는 견고한 자아 형성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공동체, 집단, 국가, 민족, 인종, 성 그리고 종교의 관점이 투사되면 정치적 차원의 의무가 등장한다. 중심과 주변, 주류와 비주류의 위계질서가 서구 중심주의에 대한 저항이라는 거대 명제로부터 출발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결국 민족과 인종의 동일시는 백인 남성 중심의 역사를 주류의 세계사로 만들었다. 주변의 반란이 촉발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유는 분명하다. 역사라는 기획물은 세계를 관측하는 절대적인 창이 되었고 수세기에 걸친 유럽 국가의 식민지 개발은 열등한 민족, 인종, 성이란 고정관념을 인류에 심어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의 관성에 균열을 만들고 이 틈새로부터 세계에 관한 인식의 틀을 이동시키고 확장시키기 위한 노력은 1960~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시작되었다. 혁명적 사유의 시작은 사상가, 문학가들이 주도했고 시각예술계에서는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정치적 관점을 바탕에 둔 시도가 일어난다. 주변의 혁명은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냈고 예술, 문화, 학술 등의 분야에서 이른바 소수적 사고가 핵심 사상이 된 것은 비교적 단기간에 이루어낸 큰 변화의 물결임에 분명하다. 우리는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는 역사적 전환기를 목격한 세대이다. 그러나 안심하기엔 아직 이른 것일까? 현재 미국에서는 부조리한 흑인 차별이 끊이지 않고, 백인과 흑인 사회 간의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미술계에 다문화, 다원주의가 반영된 첫 전시는 1980년대 말 파리의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대지의 마술사들>(1989)로 오세아니아, 아프리카의 동시대작가를 유럽 작가들과 동등하게 다루었다고 평가받은 바 있다. 특히 이 전시로부터 자연스레 탈중심주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네트워크를 중요시하는 새로운 전시 방법론이 제시되면서 이른바 세계화 현상을 재현하는 대신 작가들의 국적, 비서구권 국가의 전통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시도를 통해 다양성을 수용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시 패러다임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비서구권 작가들은 여전히 민족지적 성격이 강한 작업들을 소개하며 타자의 영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21세기 이후, 아프리카 대륙은 세계화 헤게모니 문제의 뜨거운 감자가 되었고 2005년 유럽에서는 가장 큰 규모로 <아프리카 리믹스>라는 전시가 영국의 헤이워드 갤러리 주최로 열린 바 있다. 아프리카는 물론 유럽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을 망라하며 25개국 60명이 넘는 작가가 참여한 이 전시는 아프리카의 정치·경제·환경적 조건을 다양한 매체와 방식으로 제시한 최초의 블록버스터 전시였다. 규모로 본다면 <아프리카 나우>는 <아프리카 리믹스>보다 작은 기획전이지만, 전시가 지향하는 바를 보면 10년의 시간차만큼 기획의도의 시각이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프리카 나우>라는 표제는 다소 전형적으로 보이지만, 그 의도는 분명하다. 아프리카를 타자로, 민족지적 표상으로 보여주기보다 탈국가, 탈전통, 신세대의 시점이 반영된 혼성적 성격에 무게를 두고 있다. 오늘날의 시각예술전시가 과거의 만국박람회나 인류학 박물관이 추구하던 지배자의 시선으로 희귀한 타자의 세계를 감상하던 방식을 거부하고 있음을 암묵적으로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아프리카는 변화 중이다. 세계화는 장소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세계화는 무조건 배척하거나 비판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어떻게 권력이 비윤리적으로 세계를 분할하고 타자를 이용하는지에 관한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

변화하는 아프리카의 정체성
전시에서는 아프리카의 클리셰를 발견하기 어렵다. 잉카 쇼니바레, 크리스 오필리는 아프리카의 전형적 기표와 대상의 관계를 전치하여 그 틈에 각인된 식민과 개발의 역사, 고정된 관점을 뒤흔든다. 존 아캄프라는 정체성과 세계 정치지형도 간 힘의 논리를 지성적이면서도 시적인 영상언어로 풀어낸다. 대중문화와 미디어의 영향을 보여주는 베레코, 카네미이어, 윌리 등은 전 지구적 문화의 맥락 안에서 아프리카의 현재를 시각화한다. 이외에도 전통공예에 뿌리를 둔 현대공예를 소개하는 전시 안의 또 다른 전시인 <정치적 패턴>은 탈전형적 질료를 사용해 현대 디자인과 정치 간의 맥락화를 시도하는 작가들을 통해 가장 전통적 방식의 공예품을 가장 정치적인 조형언어로 변용한다. 대중 미디어가 소개하는 이국적 아프리카, 광활한 대지와 정글은 사실 환영으로서의 아프리카에 가깝다. 과장된 휴머니티가 넘실대는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퍼드 주연의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 노예의 지난한 삶을 다룬 <뿌리>나 후피 골드버그의 <컬러퍼플>과 같은 드라마처럼 말이다. 민족지적 시선이 두려운 까닭은 삶과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 중이라는 점에서다.
정체성 연구 또한 변화 중이다. 정체성은 고정된 성질이 아닌 개인과 사회, 내면과 외부세계 간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정체성 또한 결과가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 중으로 보아야 한다. 대한민국 역시 다문화, 다원주의를 국가의 문화정책으로 표방하고 있지만, 제도에 의한 문화행정은 오랜 시간 뿌리내린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허물어뜨리지는 못한다. <아프리카 나우>는 전시 자체가 주는 만족감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에 대한 사고를 바꿔줄 신선한 기회가 될 것이다. 일회적 전시로 머물지 않고 초대 작가들과의 대화 및 동시대 아프리카 문화를 함께 다룰 또 다른 기회를 기대한다. ●

아프리카 (13)

Kevin Beasley 〈Untitled(Sack)〉(가운데 조각) foam, resin, t-shirt, mattress, cover, cotton, thermal shirt 58.4×129.5×40.6c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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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새로 찾은 아프리카의 아이덴티티”
신은진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이번 전시는 아프리카 현대미술 작가를 소개한다. 그러나 한편 아프리카 출신이지만 서구권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많은 편이다. 아프리카 미술의 범주를 어떻게 설정했는지 궁금하다.
참여작가에 남아공 출신 작가 6명(팀), 모잠비크, 알제리, 마다가스카르,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대륙 출신 작가 9명이 포함돼 있다. 거의 절반의 작가가 아프리카 대륙 출신이다. 존 아캄프라와 잉카 쇼니바레 역시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각각 가나와 나이지리아 출신이며 자신의 뿌리는 아프리카에 있다고 생각하는 작가들이다. 반면, 안톤 카네마이어와 히스 내쉬는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난 백인 아프리카너이다. 아프리카라는 아이덴티티를 피부색이나 지역으로만 국한하지 않았다.
전시의 구성과 디스플레이가 돋보인다.고대 그리스 풍의 기둥을 세운 방의 경우, 마치 유럽지역의 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전시 디스플레이에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알려달라.
아프리카 미술에 대한 우리의 인상이 막연히 전통조각에 국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역으로 이용했다. 제국주의의 상징인 박물관은 일찍이 식민지에서 값나가는 보물이나 유물을 가져다 전리품처럼 진열하는 장소였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정치적으로는 식민제국주의가 종결된 시대라고 하지만 경제적으로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신식민지배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3층 전시장의 한 섹션을 잉카 쇼니바레의 방으로 채웠다. 특별히 이 작가를 주목한 이유가 있는가.
특별히 잉카 쇼니바레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다른 작가에 비해 설치와 조각적인 요소가 두드러지는 작품이 많아 그렇게 했다. 작품 내러티브도 강렬하고 조각의 동세와 영상의 사운드까지 모든 특징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었기 때문에 다른 작품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윌리 로만 시리즈 사진은 우리 측에서 처음으로 삼면화 기법을 써서 평균 높이보다 높게 걸었는데 잉카의 스튜디오와 갤러리 측에서 아주 만족해하며 이제부터 이 작품 디스플레이를 이렇게 하겠다고 했다.
이번 전시를 담당한 큐레이터로서, 관람객들이 특히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나.
2층 규모의 작지 않은 공간에 공예, 사진, 회화, 영상, 조각 등 다채로운 미디엄의 작업과 작가군을 선보였다. 존 아캄프라는 우리나라 영화제에서도 작품이 소개된적 있지만 갤러리 피스로는 처음으로 듀얼 스크린 형식을 선보였다. 영상미와 사운드 그리고 내러티브가 모두 훌륭한 작품이다. 1월 23일에 문강형준, 임동근, 김소영, 김현미, 서동진, 심보선, 권명아, 박자영과 함께 글로벌 이주와 문화정체성에 관련된 학술 세미나를 진행할 예정이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임승현 기자
사진 조영하

곤살로 마분다 Gonçalo Mabunda (뒷쪽)가 설치된 전시 광경

곤살로 마분다 Gonçalo Mabunda <무제 (mask)>(뒷쪽)가 설치된 전시 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