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Topic] Changwon Sculpture Biennale 2014

지역주의 비엔날레의 씨앗

‘달 그림자(月影, The Shade of the Moon)’를 주제로 한 <2014 창원조각비엔날레>가 돝섬, 마산항중앙부두, 창원시립문신미술관, 창동 일대에서 9월 25일부터 11월 9일까지의 대장정을 마쳤다. 조각 장르에 한정하는 특이한 성격의 비엔날레인 <창원조각 비엔날레>는 그러나 지역에 대한 생태 연구를 바탕으로 시민들에게 현대미술을 체험하게끔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오늘날 예술이 주창하는 ‘예술의 공공성’을 어떻게 현현해야 하는지를 풀어냈다는 의미다. 도시 곳곳에 펼쳐진 비엔날레 현장을 지상(誌上) 공개한다.

김준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격년제 국제미술행사 의 전시 주제 ‘달그림자(月影)’는 최치원의 월영대와 마산공단 여성노동자들의 달그림자, 그리고 오늘날 통합창원시의 앞바다를 비추는 야경을 두루 꿰는 화두다. 그것은 도시의 역사성을 동시대 삶의 공간에 투영하는 일이다. 나아가 이 프로젝트는 조각의 의미를 넓혀 퍼포먼스와 공동체예술로 확장했다. 창원시립문신미술관과 돝섬, 마산항 중앙부두 등에 자리한 조각작품 이외에도 부림시장과 창동일원 등 마산 원도심 곳곳에서 지역사회와 동행하는 공동체예술을 내세웠다. 통합창원시의 에너지를 공공미술과 공동체예술의 흐름에 접목하여 동시대 첨단의 의제를 모아 밀물처럼 밀고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쓸려나가는 이른바 비엔날레급 전시의 허영을 걷어치우고 삶 속으로 파고드는 예술을 지향했다. 이러한 의도의 성패 여부를 떠나 두 번째 비엔날레를 치른 창원의 도전과 실험은 오늘날 난무하는 비엔날레에 대해 무용론을 펼치는 따가운 시선들 앞에 지역주의 비엔날레의 씨앗을 제시했다는 차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창원조각비엔날레>의 차별화 전략은 광주와 부산, 서울, 대구를 거쳐 마산 앞바다에까지 떠오른 ‘비엔날레물신’의 강림하심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달렸다. 비엔날레물신은 전지구적 미술의 첨단 의제를 제시하고 그것을 증빙하는 예술작품들을 폼나게 선보임으로써 동시대 미술문화권력의 지형을 파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곤 한다. 창원의 전략은 이와 반대로 가는 일이었다. 출발점은 장소였다. 창원은 거대한 전시장을 꾸미지 않고 도시공간 곳곳을 선택했다. 한국의 주요 도시들에서 열리는 격년제 국제미술행사들 가운데 이렇듯 전시장 바깥 삶의 공간을 주요 장소로 선택한 행사는 여지껏 없었다. 조각프로젝트라는 규정에 갇혀 조각작품들을 모아서 일회성 전시에 출품하거나 단선적인 장소특정성에 머무는 조각들의 나열을 피하기 위해 <창원조각비엔날레>는 도시의 서사를 끌어들였다. 도시의 장소성으로부터 출발한 창원의 프로젝트는 지역주의 비엔날레의 실마리를 마련했다. 창원을 위한, 창원에 의한, 창원의 예술축제로 나아가기 위한 밑그림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전시 주제 ‘달그림자’는 시각예술을 전시장이라는 고유의 장이 아닌 삶의 공간으로 확장하겠다는 발상에서 나왔다. 최태만 예술감독은 이은상, 이원수, 김종영, 문신 등 창원 출신 예술가들을 언급하며 창원시민에게 이번 프로젝트가 달그림자처럼 오래 남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달그림자라는 문학적 수사를 구사했다. 달그림자는 자연스럽게 삶 속으로 스며드는 예술을 은유한다. ‘달은 온 세상을 비추고, 예술이 그 달그림자처럼 세상으로 스며든다’는 슬로건은 말잔치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힘을 발휘했다. 마산합포구 월영동의 월영대는 9세기경 마산 합포에 머물렀던 최치원이 세운 정자다. 그가 머물며 시문을 읊던 월영대의 정신이 천년의 세월을 건너 동시대예술축제의 화두로 떠올랐다. 마산합포구는 물류집산지이자 해운의 거점으로서 한국의 산업화 시대를 이끈 장소이다. 또한 민주화운동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은유하는 장소이다. 도시의 역사를 동시대 삶의 현장에서 재확인하고 그 에너지를 성찰하는 일이다.
배를 타고 들어가서 작은 섬을 둘러보고, 부둣가를 걸으며 대형조각을 만나고, 미술관 전시장에서 눈밝은 큐레이터가 모은 좋은 작품들을 만나는 사이 관객은 도시 공간 자체의 매력과 예술 사이의 밀착관계에 빠져들 만했다. 이러한 관객 동선의 구조를 내밀하게 뒷받침해주는 것이 시장통과 골목길이다. 시민들의 삶의 공간 속에서 그들의 내밀한 서사와 호흡하면서 예술을 만나는 일. 그것은 공간을 떠돌며 시간의 층위를 만나고 그 속에서 도시의 장소성을 재발견하게 하려는 기획 의도를 담고 있다. 예술작품 자체에 짓눌려 정작 도시의 시공간을 만나지 못하기 십상인 비엔날레 동선에 비해 훨씬 적극적으로 도시 속으로 스며들고자 하는 일이다. 시장 속 예술가들의 작품들에는 깨알 같은 만남의 과정들이 선연히 배어있다.
박경주는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생방송 좌담과 이주여성 요리대회를 펼치고, 샤르밀라 사만트는 전성기 마산수출자유지역에서 활동했던 옛 여공 공동체와 협업했다. 허태원은 봉제업의 현장성을 추적하며 공동체에 다가섰으며, 옥정호는 부모님의 고향인 마산의 개천에서 퍼포먼스를 펼쳤다. 다문화 상황에 적응하여 혼성문화를 창출하는 타이완의 첸칭야오는 시장 사람들과 체조를 했고, 김월식은 시장 상인들의 염원을 적은 소원종이와 폐지로 시장불(佛)을 만들었다. 공원과 미술관에 놓인 조각들도 거대 조각의 무게를 덜어내고, 장소에서 서사를 끌어내려는 작업이 많아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조전환은 돝섬 한켠에 자리잡은 소박한 불상에 전통건축의 모티프를 따서 유리집을 지어주었고, 정만영은 돝섬의 팔각정에서 마산의 소리를 들려준다. 천경우는 시민들의 지리적 인지를 추상화하여 조각작품을 만들었다. 리짠양을 비롯한 조각가들의 인체 형상 조각은 오늘날 빈곤한 서사로 인해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한국 미술계의 현실과 대비되는 깨우침을 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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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테나 < A void > 혼합매체 1200×400×800cm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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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식+무늬만 커뮤니티 <시장불(市場佛)> 혼합매체 400×400×400cm 2014

대회의 진정성과 실효성은 지속적인 실천이 관건
<창원조각비엔날레>는 마산 출신 조각가 문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10년에 시작한 문신국제조각심포지엄에서 출발했다. 당시 창원시립문신미술관이 있는 추산공원에 국제조각공원을 조성했고, 이를 확장하여 2012년에 <창원조각비엔날레>를 만든 것. 돝섬에서 열린 첫 번째 행사와의 차이점을 들자면 전시장소를 도시 곳곳으로 확장했다는 점이다. 조각의 범주를 퍼포먼스 아카이브 시민참여형 작업 등으로 확장한 것도 변화다. 또한 작가군을 형성하는 시각 또한 남다르다. 창원은 몽골 베트남 이란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중국 타이 타이완 파키스탄 등 아시아 11개국의 작가 41인(팀)을 초청했다. 아시아 작가에 주목한 것은 서구 중심의 비엔날레 지형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다. 유럽이나 미국 중심의 국제미술계 흐름을 추종하는 여타의 비엔날레들이 1세계 중심의 전지구화 문화권력을 확대 재생산하며 아시아와 한국의 예술을 스스로 주변부의 것으로 만든다는 비판적 성찰로부터 나온 것으로 보인다.
전지구화와 동행하는 비엔날레들이 국제주의의 미망에 갇혀 국제적으로 유명한 비엔날레급 작가들 중심으로 게임을 벌이며 유명 큐레이터들을 모셔와 1세계 중심의 미술잔치를 벌이는 것에 비해 지역성의 화두를 가지고 아시아지역 예술가들과 창원을 접목하려는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 행사는 분명한 차별화지점을 가진다. 특히 근대 도시들이 안고 있는 도심공동화 문제에 대해 창동시장의 창동예술촌, 부림시장의 공예촌 등의 인프라에 주목하고 전지구 미술계의 주변부 국가나 도시의 예술가들을 한국 작가들과 연계하는 데 공을 들였다. 창원의 시간과 공간을 집약하는 장소성에 동시대 전지구적 문맥 속에서의 관계망 만들기 차원이다. 이러한 노력이 모여 마산의 장소특정성을 내세운 비엔날레로 특성화됐다.
예술의 공공성과 공동체성에 대한 고민은 이번 프로젝트의 최대 관건이다. 그것은 일종의 실험이자 모험이었다. 시민들의 삶의 공간을 따라 걸으며 도시를 체험하는 것과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일을 한 꾸러미로 엮어낸 발상은 분명 전시장미술과는 다른 현장미술의 장점이다. 광주비엔날레가 대인시장프로젝트를 특별전 형태로 끌어들인 바 있고, 부산비엔날레도 도시공간 속에 다가서려는 노력을 간간이 기울였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배치해 시장바닥에서 비엔날레의 주력 콘텐츠들을 만나게 하려는 시도는 보기 어려웠다. 지역성이라는 거창한 화두를 내건 데 비해 현장에 둥지를 튼 실행프로젝트의 결과물들은 매우 버거워 보였다. 다양한 욕망들이 공존하는 삶의 공간에서 예술로서 소통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보여준 일련의 전시물들은 이번 프로젝트의 좋은 성과이면서 동시에 단기간에 걸친 공동체예술의 과제를 보여주었다.
‘확장된 조각 개념으로 지역사회와 동행하는 비엔날레’를 표방한 이 행사는 시민들을 관객으로 조직하기 이전에 예술창작을 통한 문화생산의 동반자로 만나기를 원했던 것 같다. 문제는 최태만 감독의 이러한 구상을 1년 남짓한 준비기간과 두어 달의 전시 기간에 제대로 실현하기란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지역사회와 동행하는 예술의 공공성과 공동체성은 한두 해 꼼지락거려서 될 일이 아니다.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그의 구상은 일회성 말잔치에 그칠지 아니면 명실공히 도시의 지역성을 담보하는 예술프로젝트로 자리 잡을지가 달려있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준 도시공간의 해석과 참여와 개입의 예술은 지속적인 실천에 의해 그 진정성과 실효성이 판가름날 사안이다.
창원을 비롯한 대다수 비엔날레가 아직은 난민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조직위원회의 이름으로 해마다 예술감독을 바꿔가며 그때그때 다른 지향과 방법론을 적용하는 비효율성을 넘어서야 한다.
물론 새로운 시각을 가진 예술감독을 통해 서로 다른 관점의 예술흐름을 따라잡는 것이 비엔날레의 특성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지만, 그 근저에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조사연구와 업무추진 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 언제까지 야전에 텐트 치고 게릴라처럼 수십억 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국제미술행사를 일회용 담당자들에게 맡겨둘 것인가. 조직을 비대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가 있더라도 지금처럼 기획인력들을 일회용으로 소모하는 구조에서는 좋은 행사를 만들기 어렵다. 국제주의의 미망에 사로잡힌 비엔날레 사냥꾼들에게 한국의 몇몇 도시만한 먹잇감도 드물다는 뒷담화를 걷어내려면 일회성 인력과 조직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신생 비엔날레인 <창원조각비엔날레>가 지역성과 공공성을 담보한 창원시민의 예술축제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타도시 비엔날레들에서 발생하는 운영상 불협화음을 불식할 수 있는 중장기계획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유난히 불미스러운 일이 도드라졌던 광주와 부산의 비엔날레가 여전히 광주와 부산이라는 도시 자체보다는 현대미술 담론의 최전선에 치중하거나 저급한 문화권력놀이에 골몰한 것에 비해 창원은 차분하게 도시의 정체성과 시민의 삶에 다가서고자 했으며 동시대미술의 의미를 되묻고 있다. 창원은 이 행사의 지속성과 차별화를 담보하기 위해서 ‘지역사회와 동행하는 공동체예술’이라는 문제의식이 말 그대로 도시 속으로 스며들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도 그들처럼 비엔날레 할 수 있다’는 단선적인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시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를 지향하는 지역주의 비엔날레의 씨앗을 키우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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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움직이지 마세요> 광목천 10×50×65cm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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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옥상+승효상 <앨리스의 방> 혼합매체 980×480×300cm 2014 예전 카페로 쓰이던 공간에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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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지역성의 문제는 동시대미술의 주요담론”


예술감독 최태만 국민대 교수

_MG_1356<창원조각비엔날레>의 특징과 이번 대회에 중점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바에 대해 설명을 부탁한다. <창원조각비엔날레>의 특징이라면 신생 비엔날레이고(2회), 조각비엔날레라는 점이다. 또한 전용 전시관이 없다.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지역을 답사하면서 조각의 장르적 특성이 드러나는 작품을 파종하듯이 도시에 설치하는 것은 이 대회의 성격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민들이 현대미술을 경험하는 대회로 만들자고 결심했다. 그래서 국제비엔날레를 지향하지만 지역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한 방향성이 작가 선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작가도 소수의 유럽 작가를 제외하면 대부분 아시아 작가로 국한했다. 창원이라는 도시의 특성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작가진은 이에 부합하는 이들로 구성했는데 각 국가의 비수도권 작가를 주로 선정했다.
전시를 기획하면서 발견한 창원(마산)을 정의한다면?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이미 사라진 마산’에 주목했다. 몽고정으로 상징되는 일본 정벌을 위한 여몽연합군 출병의 전초기지이자 개항도시, 식민지 수탈의 현장, 6·25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의 병참도시였으며 3·15부정선거에 대한 항거와 부마항쟁, 경제개발시기 수출자유지역으로서 도시의 성장과 뒤이은 도심 공동화현상 등 우리가 마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많다. 신마산지역으로부터 창동 등의 원도심에 이르기까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즉 골목들로 연결된 마산은 현대미술이 침투할 공간이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산은 나에게 ‘곰삭은 도시’로 기억된다.
비엔날레라는 미술 이벤트와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 풀어내기 사이에서 야기되는 호불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2014년은 거의 ‘비엔날레 풍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여러 도시에서 비엔날레가 동시다발적으로 개최됐다. 따라서 <창원조각비엔날레>의 정체성과 독자성을 부각하기 위해서라도 국제성과 동시대미술의 담론 생산기지를 지향하기보다 오히려 지역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지역성의 문제가 동시대미술의 주요담론임을 확인하고자 했다. 전시공간을 마산 원도심으로 확장하고 커뮤니티아트를 집중적으로 배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는 조각을 기반으로 하되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도시 읽기(urban literacy)’에 집중한 결과 시민 참여형 프로젝트가 많았으며, 이것이야말로 이번 비엔날레의 독자성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대회가 차기 대회에 어떤 의미가 될 것으로 생각하는가? 무엇보다 올해 <창원조각비엔날레>에 대한 반성과 냉정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추진위원회도 임의 기구인데다 상설 사무국조차 없기 때문에 대회의 미래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지역의 인적 자원이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이고. 창원조각비엔날레추진위원회를 법인으로 만들고 사무국을 설치해야 한다. <창원조각비엔날레>는 결국 창원 시민의 문화예술축제가 되어야 한다. 이제 <창원조각비엔날레>의 존재가 창원시민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이들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시민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지 못하는 비엔날레는 소모성 행사가 될 확률이 높다.

황석권 수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