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TOPIC 이중섭의 사랑, 가족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의 위치는 공고하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구성된 전시가 열리고 있다. 1월 6일부터 2월 22일까지 현대화랑에서 진행되는 <이중섭의 사랑, 가족전>이 바로 그것. 이중섭의 유화, 드로잉, 은지화, 편지화 등 70여 점이 소개되는 이번 전시에는 특히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소장하고 있는 은지화 3점이 최초로 공개되어 화제를 낳았다.

현대화랑과 이중섭 그리고 가족의 귀환

최열 미술비평

현대화랑, 다시 말해 박명자 대표와 이중섭은 뗄 수 없는 인연이다. 이중섭이 세상을 떠나고 열여섯 해가 지난 1972년 박명자 대표는 이중섭의 친구 구상, 박고석, 유강렬과 함께 전국에 흩어져 있던 유작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것이 저 유명한 <15주기 기념 이중섭 작품전>이다. 이 전람회는 이중섭을 부활시킨 기점이었다. 이중섭이라는 신화와 전설의 기원인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20세기가 끝나는 1999년 또다시 현대화랑과 박명자는 <이중섭 특별전>을 열었다. 뿐만 아니라 박명자가 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미술관에 이중섭 작품을 기증하기까지 그 관계는 운명과도 같이 질긴 것이었다.
이번에 ‘이중섭의 사랑, 가족’ 주제의 전람회가 열리는 장소와 관련하여 조용하지만 매우 의미심장한 사건이 벌어졌다. 현대화랑이란 이름의 부활이다. 그러니까 27년 전인 1987년 ‘갤러리 현대’로 이름을 바꾸면서 사라졌던 이름 ‘현대화랑’이 이중섭과 함께 귀환한 것이다. 이제 갤러리 현대는 현대화랑과 함께 두 개의 건물로 나뉘었고 홈페이지도 두 개의 누리집(홈페이지)으로 구성됐다. 양날개를 펼친 형세를 갖춘 것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이 사건은 한국 화상畵商의 살아있는 역사 박명자의 귀환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성장한 2세가 경영 일선에 참가하던 금세기 초 성급하게도 2세체제 전환이 임박한 듯 호들갑을 떨었지만 이후 10여 년의 과정을 보면 사실은 1세대의 주도 아래 2세대가 실전 훈련을 치르는 수준임이 드러났다. 그러므로 이중섭을 앞세운 현대화랑의 부활은 이제 2세대의 진출이 완만하게나마 현실화되고 있으며 따라서 지금에야 겨우 신구세대가 공존하는 시대임을 상징하는 사건인 셈이다.
이번 전람회가 지닌 두 번째 의미는 가족의 기억과 가치다. 전시 주제인 ‘이중섭의 사랑, 가족’은 주최 측이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6·25전쟁으로 파괴당한 가족의 기억 그리고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 사회를 뒤흔든 가족의 가치를 환기시켜주고 있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은 모두 가족을 소재로 삼고 있다. 난민의 고통과 이별, 재회를 향한 간절한 소망 그리고 죽음으로 나아가는 절망에 이르기까지 그 하나하나에 가족 이야기가 숨쉰다. 전후 60여 년 동안 우리 사회는 개발과 성장이란 늪에 빠져 가족이란 이름의 사랑을 옆으로 밀어냈다. 개발과 성장의 다른 이름은 경쟁과 욕망이다. 오늘날 가족이란 탐욕의 그늘에 가려 어둡고 무거운 초상화일 뿐이다. ‘사랑, 가족’이란 제목 아래 우리 앞에 홀연히 나타난 ‘이중섭’과 지워졌던 ‘현대화랑’의 부활은 우리를 일깨우려는 빛처럼 느껴진다.
이번 전시에는 개인 소장가의 품 안에 꼭꼭 숨어있던 엽서화葉書畵, 편지화便紙畵 그리고 춘화春畫가 공개된다. 또 1956년 바다 건너 뉴욕현대미술관MoMA 수장고로 들어간 이래 근 60년 만에 조국으로 귀환해 처음으로 세상 빛을 보는 저 은지화銀紙畵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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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화된 이중섭에 대한 연구 필요
필자는 《이중섭 평전》에서 저 엽서화를 ‘주소 없는 편지’로써 ‘사랑의 기호학’이며 미술사상 아주 희귀한 사례로 기록될 ‘우리 미술사의 축복’이라고 묘사했다. 출품된 10점 가운데 최고의 걸작은 <마사マサ>다. 벌거벗은 몸의 애인 야마모토 마사코가 나무와 한 몸으로 이어져 있고 탐스러운 열매 한아름을 받쳐들고 있다. 사랑의 연서戀書는 많은 시인, 문인들이 남겼지만 이처럼 80여 장에 달하는 사랑의 엽서화는 전에도 후에도 없는 오직 하나뿐인 연화戀畵다.
편지화 또한 예를 찾기 어려운 사랑의 그림이다. 지금껏 부인에게 보내는 38편과 두 아들에게 보내는 20편의 번역본만 알려져 있었을 뿐이다. 편지화 원본은 겨우 몇 점만 공개돼 있었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에야 비로소 그 원화를 마주할 수 있음은 어쩌면 그 사랑이 그만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번에 공개되는 20편의 편지 연화가 아름다운 까닭은 첫째, 두 아들에게 사랑을 호소하는 문자 하나 하나에도 감정이 어려있어 간절하다는 것. 둘째, 그림과 글씨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 셋째, 이중섭만의 능수능란한 필력이 거침없이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그러니까 한결같이 서화일치의 경지에 다가선 예술 그 자체라는 것이다. 누군가 냉소하는 말투로 “편지 한 장이 웬 1억 원이나 가는거야”라고 했다. 그건 이 예술을 편지일 뿐이라고 여기는 선입관 때문이다. 공개되지 않은 나머지 편지들도 모두 공개되기를 기다리는 까닭은 바로 이중섭의 편지화, 그 서예술書藝術을 진심으로 마주하고 싶은 욕망에 있다.
은지화는 잘 알려진바 대로 이중섭이 탄생시킨 아주 특별한 미술품이다. 아니, 그것은 이중섭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전쟁과 난민이라는 시대가 탄생시킨 것이다. 탄생의 기원도 자못 비장하거니와 거기 담긴 이야기도 비극에서 환희에 이르기까지 20세기 방황하는 정신을 모두 담고 있으므로 몇 백 점의 은지화가 공개될 적마다 탄성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되는 ‘춘화’는 매우 극적이다. 남녀가 서로 성기를 마주한 모습 그대로 노출된 은지화는 지금껏 극소수만이 본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놀라운데 한걸음 더 나아가는 충격은 다름아닌 MoMA 소장 은지화 3점의 귀환이라 하겠다.
뉴욕현대미술관에 소장됐다는 사실은 한국이 20세기 100년 동안 서구문명권으로 편입된 이래 일어난 가장 거대한 사건이다. 그런데 누구도 그 소장작품을 볼 기회를 얻지 못했다. 무려 59년만에 귀향한 석 점은 상상보다도 훨씬 놀라운 충격이었다. 수백 점의 은지화 가운데 가장 빼어난 조형성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사냥꾼과 비둘기와 꽃>은 유사한 소재를 그린 은지화들 가운데 가장 아기자기하고 충실한 구성을 갖춘 작품이며 <신문 읽기>는 몽환이 아닌 현실을 소재로 삼았으되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나눈 위에 여러 인물을 배치함으로써 현실을 뛰어넘는 분위기를 연출한 작품이다. 전시장에 걸린 3점과 마주하는 순간, 기증자인 맥타가트 박사가 말한바 그대로 ‘특별한 매력’이 넘친다는 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후 60년 그리고 탄생 99주년인 2015년 이중섭의 귀환을 맞이해 우리는 ‘가족, 사랑’을 반추한다. 아마도 그것은 숱한 상처로 얼룩진 가족이란 이름의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일 게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그 오랜 세월 이중섭은 신화와 전설 속으로 빠져들었고 그 사이 작품은 시장에서 진위眞僞시비를 일으키는 진원지였으며 그의 예술에 대한 가치평가 또한 찬사와 비난의 극단을 오갔다. 탄신 백주년 행사를 준비해야 할 이때 미술인들이 해야 할 단 하나의 일은 신화가 된 이중섭의 예술에 대한 아주 차분하고 진지하기 그지 없는 탐구일 것이다. 현대화랑과 함께 귀환한 이중섭이 우리에게 희망하는 것도 그게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