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이은우 – 물건방식

이은우  __  물건방식

갤러리 팩토리 7.2~25

이은우의 근래 작업은 미술과 디자인의 경계, 사물의 기능과 형태, 표준화, 재료의 물성 등의 측면에서 논의된다. 갤러리 팩토리에서 열린 이번 개인전에서도 작가는 ‘사물이 담고 있는 관념적인 의미보다는, 그 사물이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유통되는지에 초점을 맞추며, 사물이 다른 사물과 맺고 있는 관계나 그 관습적인 쓰임새를 원료로 작업한다’고 밝히고 있다. 볕이 유난히 강렬했던 7월의 어느 오후, 팩토리 유리문을 젖히고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맞딱드린 일련의 사물들에 대한 첫인상은, 그곳에 맘먹고 기거하려는 듯 적당하고 자연스러웠다. 언뜻 라디에이터처럼 보이는 그 무엇, 의자인지 다른 가구인지 확신할 수 없는 규칙적인 선반과 주황색 원추가 인상적인 구조물, 두 개의 바퀴가 달린 채 벽에 붙어버린 그 무엇, 그외에도 프레임, 면, 선으로만 드러나보이는 도형들과 빨강, 주황, 노랑, 초록 등 기본 색채들의 유영. 이들은 한눈에 정체가 파악되지 않는 사물들이었으나 공간을 적당히 점유하고 있었으며 그 사이를 오가는 관람자에게도 충분한 여유를 내주었다.
이 사물들, 혹은 그 무엇들은 일상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수치, 예컨대 가구가 지닌 인간공학적 수치, 1: 1.618의 황금률, 반복, 대칭, 비례 등의 속성을 지녀서 일상 사물에 대한 기하학적 감각을 자극한다. 또한 빨강, 파랑, 노랑 등 원색의 잉크를 종이에 마블링한 일련의 <제목 없음>은 회화 이전의, 아니 색채 이전의 질료의 물성에 대한 감각을 환기시킨다. 재료 역시 거의가 목재, 스테인리스 스틸, 철재 평철, PVC, 페인트 등 산업재료인데, 일부는 작가가 직접 다룰 수 있었겠지만 기술자와 기계에 의해서 다뤄질 수밖에 없는 전문적인 산업재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의 쓰임은 무엇인가. 용도를 지닌 것들인가? 아니면 장식적인 오브제인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 이 말은 20세기 초, 루이스 설리번을 위시한 서구 기능주의 건축가 및 디자이너들의 신념이었다. 형태를 만들어야 하는 자, 사물을 만들어야 하는 디자이너에게 그 근거와 당위성은 곧 사물의 기능이라는 것이다. 이 문장은 루이스 설리번이 설계한 시카고 마천루에 당위성을 제공했고, 아돌프 로스는 한술 더 떠 장식은 죄악이라고 외치며 엄격한 기하학 형태의 건물을 설계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기능주의를 정교하게 이론화하거나 장식을 철저하게 배제한 것은 아니지만, 산업 사회에서 제품의 형태는 기본적으로 기능을 따른다는 경제적 효율성의 개념을 심어주었고, 이는 제품의 규격화, 표준화 개념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기능주의자들 이후에도 많은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이 꽤 근사한 디자인 선언을 했지만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만큼 강력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은우가 이번 팩토리 전시에서 제시하는 사물들은 기능주의자들이 당황스러워 할, 기능은 모두 소거되고 형태와 색채만을 가진 것들이다. 이는 작품 제목에서도 드러나는데, 이전 <근성과 협동전>(2013)에서는 작품명을 통해 기능을 제시한 <인쇄물보관상자>를 만들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물건>, <기둥>, <푸른 사각형>, <녹색 원>, 또는 아예 <제목 없음>과 같은 식으로 모호하게 제시한다. 심지어 형태 자체가 기능임을 부정할 수 없는 바퀴와 공조차 꼼짝없이 벽면에 고정되어 그 기능을 거세당했다. 이렇듯 기능이 소거되거나 형태, 색채, 재료가 제각기 해체된 이은우의 사물을 통해서 우리는 물건의 합당한 존재 방식이라며 합리화에 능한 도구적 인간으로서의 우리의 본성에 의문을 던지게 된다. 동시에 예술로서 사물은 어디까지 기거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우선은 멋스럽게 전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저 사물들이 전시의 궤도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이성휘・하이트문화재단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