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이제-온기

이제  __  온기
갤러리 조선 3.12-4.18

회화는 그녀 자신이 거주하는 세계를 가장 간결하며 필연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방식이자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이다. 이 세계는 폐쇄적이며 섬처럼 독립되어 있으나 그렇다고 완전히 고립된 것은 아니다. 그녀에게 세계는 그녀 자신과 그 밖의 존재들, 사물들, 운동들의 총합이다. 그럼에도 회화는 세계를 간략하게 스케치하고 있다. 마치 세계의 표면을 가볍고 부드럽게 쓰다듬듯. 통속적이며 일상적인 그러나 별 볼일 없는 풍경이 스냅사진처럼 툭툭 던져진다.
사물들, 사건들이 던져져 있다. 그것이 마치 누군가에게 말을 걸 듯, 그러나 자신의 말을 갖고 있지 않은 것들의 대화방식처럼. 불가능한 대화 또는 말걸기. 버벅거리는 혼잣말.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검은 벽을 더듬거리며 길을 따라 가다 보면 흔히 볼 법한 어둑하고 그늘진 애매모호한 풍경이 펼쳐진다. 평범한 일상에 편입되지 않은 또는 거부하는 사물들, 사건들이 연속되는데, 이는 무척이나 미시적이라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끝맺고 제한하지 않는다면 세계와 사물과 사건은 결코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회화의 고유한 존재방식이기도 하다.
그림은 바람을 담고 있고, 사물과 사건을 담고 있다. 검은 새가 불길한 전조를 뿌리면서 세계를 가르면, 검은 인물이 빛 없는 거리에 누워 있으면, 제주도와 브루클린과 종로바닥에서, 해가 지는지 빛이 엷게 번지면, 그녀들은 지나쳐 가고 자동차는 달리기를 멈추고 세계는 불현듯 다가온다. 세계가 너무 갑자기 다가오기 때문에 결코 화합하지 못한다. 그 안에 온전히 들어가지 못하고 삐져나온다. 회화는 그렇게 세계와 결코 만날 수 없는 순간을 담는다. 애초에 실패하는 사건이기에 세계를 담아내는 재료나 방식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회화의 위태로운, 숭고할 정도로 불안한 존엄성이 드러난다.
회화는 단순한 재현의 기술, 눈속임 같은 것이 아니다. 무한히 열려있는 구멍들, 차원들의 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계와 만나고 세계를 번역하는 불투명한 시선들, 언어들, 거의 아무것도 재현하지 않는 마법적인 순간들. 회화는 그 순간에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 아주 미묘하게 흘러가는 공기의 흐름마저 이미지로 포착되는 것. 그 이미지는 투명하기도 하고 불투명하기도 하다. 빛이 있고 그림자가 있는 이미지들이 세계와의 불가능한 만남을 열어놓는다.
작가가 애써 묘사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풍경이 곧 회화로 제시된다. 이렇게 엉성하고 구멍이 많은, 그리하여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이 어딘가로 흘러가버린 텅 빈 회화를 깊이 껴안는다. 몇 년 전 웃통을 벗고 정면을 바라보던 작가의 자화상처럼 회화는 시선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본다.
누구에게나 가슴은 있다. 그녀는 가슴으로 말하고 가슴을 향해 말을 건다. 세계와 만나는 아주 단순한 그러나 영원히 지속되는 고통을 전달한다. 나는 그녀를 통해 회화, 풍경, 세계와 사물이 분리되지 않는 어떤 순간, 어떤 장소를 확인한다. 아니 차라리 한 편의 시(詩)를 본다.

김노암 ・문화역서울284 전시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