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최인선-날것의 빛

최인선  __  날것의 빛
갤러리3 4.4-25

전시장에 들어서면 백색의 색점들이 다채롭게 반짝거리며 나란히 놓인 3점의 <백색의 침실>(2013) 시리즈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작가가 왜 이런 작품을 그렸는지를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이 관람자는 경쾌한 웃음소리가 퍼져나가는 듯한 감각의 축제 속에 던져진다. 그러나 숨을 돌리고 찬찬히 살펴보면, 그 감각의 축제는 단순한 감각적 쾌락의 장면이 아니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물성이 짙게 드러나는 날것의 빛, 색으로 이루어진 점, 선, 면, 그리고 회화공간의 구성은 최인선이라는 작가가 우리 시대에 요구되는 새로운 회화와 인간 사유의 본성에 대해 얼마나 치밀하게 회화적 행위를 통해 사유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최인선은 타고난 모더니스트이다. 그는 자신의 회화에 대해 ‘감각논리’나 ‘색채질서’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감각은 세계의 사물들과 그 성질들을 우리 마음속에 질서지우는 통로이다. 미술가의 사유는 감각논리로 형상화된 색채질서로서 드러난다. 나는 이번 최인선의 전시를 통해 한 명의 포스트모던 모더니스트를 보았고, 최근 예술학계에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감성적 인식의 과학이 최인선만의 감각논리와 색채질서로서 육화되는 현장을 보았다고 해야 할까?
<백색의 침실>이 보여주는 눈부신 백색 점들로 구성된 화면은 숨쉴 틈을 만들 듯 사이사이에 올려진 원색의 두꺼운 색점들로 인해 더욱 다채롭고 경쾌한 빛의 향연을 선사한다. 빛을 만드는 것은 그림자이며, 그림자 없이는 빛이 없다. 빛과 그림자는 형상을 만든다. 최인선의 화면에 쏟아지는 무수한 백색 점은 화면에 바로 짜낸 두꺼운 물감덩어리의 색점 하나하나가 스스로 그림자를 품고 있기에 영롱한 빛으로 현현한다. 그것은 감각 속에서 육화되는 빛, 물감덩어리들이다. 백색점 하나하나가 서로 어우러져 반짝거리는 화면이 주는 감각적 즐거움은 작가의 치밀한 감각적 사유가 색채질서를 통제하고 있기에 가능한 즐거움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색점으로 이루어진 빛을 보면 인상파가 떠오른다. 언뜻 보면 ‘날것의 빛’이라는 용어는 인상파 화가들의 감각인상으로 파악된 빛과 유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상파의 빛이 자연 관찰과 광학적 사실주의를 드러내는 태양이 비추는 야외의 빛이라면, 최인선의 빛은 태양이 없는 실내로 들어온다. 그것은 우리의 감각을 통해 마음속으로 들어온 ‘날것의 빛’이다. 인상파의 빛이 태양에 기원을 둔 ‘광학적 과학’의 빛이라면, 최인선의 빛은 세계의 물성을 감지하는 몸, 감각적 사유라는 ‘마음의 과학’이 창조하는 빛이다. 그의 빛은 감각의 총체로서 몸이 미술의 집인 미술관에서만 만날 수 있는, 개념화로 걸러지지 않은 생생한 빛이다. 이것이 그가 <뮤지엄 실내-날것의 빛>이라는 제목을 사용하는 이유일 것이다.
날것의 빛이 주는 감각적 즐거움은 백색과 원색으로 구성된 질서로만 드러나지 않는다. 전시장 입구 왼편에 놓인 회색 톤의 <미술관 실내-날것의 빛>(2014)에서 보듯이, 이작품은 두꺼운 백색이나 원색 점들의 향연 대신, 겹겹이 쌓이고 축적된 평면적인 붓질의 흔적을 드러내는 회색톤의 실내공간이다. 수직과 수평으로 분할된 공간 속에서 중첩된 붓질의 면들만큼 묘사된 사물들도 중첩되고 있다. 작품 왼쪽의 화면에 수직으로 분할된 두 개의 화면은 각각 다른 시점의 분리된 공간을 보여주고 있지만, 여인이 그려진 오른쪽의 화면은 다르다. 오른쪽도 여전히 수직과 수평의 화면으로 구성돼 있으나, 그려진 사물들은 수직선에 의해 분리되지 않고 오히려 중첩되면서 공간적 깊이와 실재감을 주는 것이 흥미롭다. 팔걸이의자와 여인의 치마의 중첩, 소파테이블과 여인의 치마의 중첩, 여인의 가슴부위를 지나가는 책장의 수평선의 중첩이 있다.
이는 마치 사진을 찍을 때 전경과 후경 어디에 초점이 맞추어지느냐에 따라 전경의 물체가 드러나기도 하고 후경의 물체가 드러나기도 하는 것처럼 이러한 중첩은 화면 공간의 깊이를 전해준다. 수직의 구성에 의해 잘려나간 여인의 손목은 이 장면 속의 시간성까지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여인이 오른쪽으로 걸어가는 움직임을 보고 있는 듯, 여인이 존재했던 순간의 공간과 여인이 사라진 공간을 중첩시키면서 시간의 경과를 화면 속에 담아낸다. 이처럼 이번 최인선의 전시 ‘날것의 빛’은 경쾌한 감각적 즐거움에서 출발하여 지각적 공간, 감각적으로 육화된 영성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비범한 감각과 작가적 욕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김연희・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