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곽남신 – 껍데기

곽남신 – 껍데기
OCI미술관 3.12 – 4.30

이번 <껍데기>전에서 곽남신은 매우 직설적인 조형언어로 관객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그의 기존 실루엣 연작이 대상의 에센스를 극적 평면성으로 농축시켜 간결하고 임팩트 있게 보여주면서도, 동적인 효과와 공간감을 창출하는 시각 장치와 회화적 효과를 가미함으로써 상상력의 여지를 남겨두었다면,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작품들에서는 평면에서 입체로, 압축적 이미지에서 구체적인 이미지로의 전환이 눈에 띄며, 이러한 성향은 보다 즉각적인 관객의 반응을 이끌어낸다.
캔버스 천에 주름을 잡거나, 컷 아웃에 네온 혹은 LED의 병치, 이미지의 겹치기 잔상 효과 등으로 평면에 기반을 두되 지속적으로 평면성의 탈피를 모색해온 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움직이는 조각적 입체 설치작 <홍동지 와상>을 내놓았다. 홍동지는 민속인형극 꼭두각시놀음에 등장하는 남성성의 상징적 아이콘이다.
그런데 곽남신은 처참히 조각나 숨을 거둬가는 순간에조차 힘겹게 고개를 들어 자신의 남근이 제대로 기능하는지를 확인하는 홍동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홍동지의 몸이 기력을 완전히 잃은 후에도 그의 남근만은 다시 일어나고자 꿈질거리는데, 이 사력을 다한 마지막 2초간의 무의미하고 타성에 젖은 기계적이고 자동적인 남근 세우기는 권력, 외모, 부에 대한 욕망의 제어장치가 없는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또한 허무한 욕망을 끊임없이 조장하는 사회와 대중매체에 대한 비판이자 그렇게 욕망을 좇다가 소중한 것을 잃어가고 있는지조차도 깨닫지 못하는 우리 삶에 대한 연민을 담고 있다. 이는 <끄~응!>, <바디빌더>, <섹시걸>, <꿈꾸는 마초>, <비누거품 남근>, <부풀리기>, <아우라>, <아름다운 인생> 등의 작품들이 <껍데기>라는 제목하에 공통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이다.
곽남신의 예술은 재료나 소재 면에서 지속적으로 대중을 향해 손을 내밀어왔다. 그는 회화, 판화, 드로잉, 오브제, 실루엣 초상과 사진의 로키(low-key) 조명의 원리를 이용한 LED와 네온 작업에서 3차원 키네틱 설치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료와 형식을 소화하면서, 대중매체 이미지를 여과 없이 사용하기까지 점점 더 거침없는 대담한 작업을 선보여왔다.
한국 모더니즘 회화의 절정기에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했던 곽남신은 모더니즘 회화의 엘리티즘의 한계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면서, 복잡한 담론이나 극단적 형식주의를 최소화하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예술을 추구해 온 것이다. 대중매체는 우리 시대 아이콘의 양성소이자 그 광범위한 분배를 통해 우리의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욕망을 끊임없이 조장한다. 대중의 삶에 대한 그의 애정은 자연스럽게 그의 예술에 일상에 대한 직관적 성찰을 담는 팝 이미지의 차용을 요구한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서 두드러지는, 곽남신의 대중매체의 세속적 아이콘 전유는 필연적인 것이다.
그러나 추상의 절정인 하이 모더니즘의 시기를 거쳐 긴 여정을 통해 도달한 대중 친화적 조형언어에 예술가의 관조적 시선 또한 오버랩된다는 사실이 곽남신 식 팝아트의 특징이다. 헛된 욕망에 지배당하는 인간을 연민하는 인간 곽남신의 존재가, 마초 맨과 섹시 걸의 허상과 판타지가 지배하는 우리 사회의 곳곳을 바라보는 더벅머리 곽남신의 실루엣이 그의 작품 하나하나에 드리워져 있는 듯 느껴지기에, 그의 작품은 마치 일기처럼 진한 삶의 리얼리티를 담고 있다. 

이필・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