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김태곤 – Mystic Flower Garden

김태곤  __  Mystic Flower Garden

갤러리W가회 9.26~10.10

김태곤의 ‘신비한 화원’전은 시각과 촉각, 이미지와 문자 이미지의 관계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주제로 작업하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유희적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싱겁고 담담한 스타일의 작업들로 구성되었다. 그러다보니 작가가 작품의 이면에 깔고 있는 생각을 간과하기 쉽다. 언뜻 추상적인 조형요소로 구성되었는데, 사실 조형적 연출이라고 생각한 요소들이 시각장애인의 소통수단인 ‘점자’들이다. 또 이 점자들은 모두 작가가 생각하는 예술과 삶의 관계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품들 가운데 ‘로고스 라이트 윈드 블룸(logos light wind bloom’은 이번 작업을 위한 작가의 기본적인 예술관, 세계관, 인간관을 표현하고 있다. 구약의 ‘태초에 말씀(logos)이 있었다.’ 이후 지구생태계에 꼭 필요한 에너지를 제공하는 빛과 숨 쉴 수 있는 대기와 그럼으로써 생명을 꽃피우는 것을 표현했다.
한편 점자로 표현된 꽃말을 담담하게 그려낸 회화들은 김태곤 작가가 기존 작업에서 조형적 표현을 절제하여 좀 더 사색적인 방향으로 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이번 전시는 시적인 뉘앙스와 영적 태도를 융합하는 시도처럼 보이는데, 제목 그대로 비의적인 신비의 차원에서 이미지와 메시지가 만나고 있다. 작가는 특별한 조건에서 의사소통을 위해 고안된 기능어인 점자를 이미지와 메시지, 감각과 의미의 관계를 성찰하는 데 이용한다.
작가는 전통적인 은유와 상징으로서의 이미지에 대해 다른 시각을 제시하려고 한다. 코드화 한 점자는 촉각이 아닌 시각에 의존하는 평균적인 조건의 사람들에게는 해석되지 않는 무의미한 이미지로 보인다. 마치 도시의 야경이나 네온을 표현한 것처럼 보이거나 아니면 반딧불이와 같은 풀벌레가 날아다니는 자연의 풍경 같기도 한 이미지들이 시각장애인을 위해 꽃말을 표현한 점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눈앞의 이미지들이 다른 차원의 이야기 맥락에 놓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주 구체적인 점자이미지와 그것이 전혀 독해되지 않는 추상의 세계가 만나는 신비를 경험하는 것이다.
오늘날 못 믿을 것이 인간의 감각인 것처럼 인간의 언어 또한 신뢰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인간의 눈을 속이는 다양한 기술이 전통적인 회화의 기술로 전승되었다. 그리고 많은 예술가에 의해 인간의 감각은 물론 인간의 사유를 교란하고 충격을 주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이렇게 싱거우면서도 담담한 태도로 일반적인 이미지와 메시지의 관계를 교란하고 비평하는 것은 현대미술이 이루어온 주요한 성과 중 하나이다. 자신의 확신이 흔들리고 교란되며 인간은 과거 인류의 조상이 그러했듯 교만하지 않고 반성적인 태도를 경험하는 것이다. 해맑은 분위기로 꽃말을 의미하는 점자를 전면에 내놓고 작가는 회화이미지가 어떠해야 할지 숙고한다. 그것은 현대미술과 올바른 삶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무한한 이미지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사회에서, 도덕과 윤리가 바닥을 치는 세계에서 인류의 문화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회화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김노암·문화역서울284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