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로와정 – 그 정도 거리

로와정  __  그 정도 거리

갤러리 팩토리 4.30-5.25

정치는 타자와의 관계설정의 문제이다. 나와 타자의 ‘거리’는 이들의 대화 방식을 결정한다. 이 대화는 온전히 일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 불가능성의 인정, 즉 절대적 타자성의 인정이 대화의 첫 번째 전제조건이다. 자신의 언어를 고집하는 것도, 그 언어로 재단하여 연민이나 동정을 보내는 것도 폭력에 가깝다. ‘그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나에게 개입되는 언어를 통해 나의 언어를 반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이 대화는 온전하지 않고, 혼란스럽고, 덜그덕거린다. 불편하다. 이 불편함을 감내하는 것이 타자에 대한 최소한의 윤리이다.
로와정은 이번 전시 <그 정도의 거리>에서 이 ‘거리’ 자체를 전면에 내세운다. 나와 타자의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 없이 거리의 불편함을, 덜그럭거림을 그 자체로 보여준다. 로와정은 거리의 문제를 중심과 주변의 (위계적) 관계가 야기한 것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경계를 지운다는 하나마나한 추상적인 답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그들이 제시하는 것은 불편함 그 자체이다. 나의 언어가 문제시되고, 타자의 언어가 문제시되는 지점. 즉, 주체가 타자가 되고, 타자가 주체가 될 수 있는 상호 타자성의 인정이 이들 작업의 지향점으로 보인다. 두 다리로 지탱하던 사다리는 서로 연결되어 공간을 구획하고 있고, 전면을 향해야 하는 모니터는 후면을 보인다. (모니터를 보기 위해서는 전면이 마주한 거울을 통해 간접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전시장 배치도는 그 자릴 떠나는 순간 텅 빈 종이가 된다.
그러나 문제는 그 공간의 시각적 장치가 나에게 불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익숙하고 편안했다. 현대미술 어딘가에서 본 익숙한 문법들이다. 낯선 상황에 대한 익숙한 문법의 제시. 불편한 상황적 언어의 제시 그 자체로 이번 전시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도 있지만, 이들이 유지하고자 했던 ‘그 정도의 거리’가 시각적 언어로 발현되지 못함에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중심과 주변의 관계가 그들이 제시하고자 했던 절대적 타자성의 인정, 상호 타자성의 지향을 자욱한 안개 속으로 가져간 것은 아닐까?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이제 시작된, 그리고 중요한 이들의 문제의식이 타자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다성적 공간’에 피어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대범・미술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