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마류밍

마류밍

학고재 9.2~10.5

9월 2일부터 다음 달 초까지 학고재에서 열리는 마류밍 개인전은 ‘펀     (芬)・마류밍’ 탄생 2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이다. ‘펀(芬)・마류밍’은 1993년 마류밍이 그의 행위예술을 통해 처음 고안해낸 작가의 또 다른 자아로, 이번 전시는 작년과 올해 베이징, 상하이에 이어 동일한 제목의 세 번째 전시이다. 이번 서울 전시는 초기 작품들에 대한 기록 영상과 사진이 함께 전시되어 일종의 회고전 형식을 띠고 있다.
전시된 작품은 우선 마류밍의 데뷔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길버트 & 조지와의 대화>(1993)에서부터 여성복을 찾용한 탄생 초기의 ‘펀(芬)・마류밍’, 이후 여성 복장을 벗고 남성의 신체를 드러낸 ‘펀(芬)・마류밍’의 다양한 작품들까지 약 10년간 지속된 마류밍의 행위예술 역사를 축약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 외 2004년부터 2008년 무렵 제작된 회화와 입체작품들도 함께 전시돼 있다. 최근작을 선보인 본관 전시장에는 2000년대 리옹, 뮌스터에서 관객 참여 형식으로 진행된 ‘펀(芬)・마류밍’ 영상이 입구에서 재생되고 있고, 이어지는 공간에 그 작품들을 토대로 그린 회화-설치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마류밍은 흔히 중국 행위예술의 1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중국에 행위예술을 시도한 작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마류밍이 행위예술을 처음 접촉하게 된 계기 역시 1980년대 스승의 행위예술 작업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1980년대 급진적인 아방가르드 미술운동의 조류 속에 시작된 중국의 행위예술은 평론가 가오밍루(高名潞)의 지적대로 서구의 행위예술에 대비되는 나름의 특징을 갖고 있다. 즉 ‘공연(performance)’ 보다는 ‘신체예술(body art)’ 의 성격이 강하고, 각 작품에서 신체가 다뤄지는 방식은 ‘의식화(儀式化)’, ‘사회화’ 된 특징을 띤다는 것인데, 이는 마류밍도 예외가 아니다.
자신의 신체에 양성성을 표현한 그의 작품은 흔히 동성애와 관련된 성 정체성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해석되곤 한다. 그러나 마류밍이 무수히 해명했듯, 그는 동성애 경험이나 취미가 전혀 없고, 단순히 성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 차원에서 인간에게 존재하는 각종      ‘이화(異化)’ 현상과 그 실존을 자신의 신체를 통해 집약적으로 제시한 것일 뿐이다. 그가 ‘펀(芬)’이라는 글자를 통해 여성적 자아를 제시하면서도 ‘마류밍’이라는 이름 사이에 반드시 ‘・’을 배치하는 것은 바로 모순된 두 가지 속성 간의 분리와 구분을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처럼 ‘펀(芬, 分과 동음)’으로 상징되는 모순적, 궤변적 자아는 관객들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듯 다의적 의미의 절대적 ‘미(美)’를 대변하며 마땅히 존중 받아야 할 그 무엇을 상징한다. 그러나 마류밍의 작업에서 ‘미’는 종종 그것과 어울리지 않는 다양한 환경 맥락에 놓임으로써 결국 그의 작품은 인간의 삶과 자유에 관한 사회적 화제로 전환되곤 했다.
2000년대 들어 각종 국제 행위예술제를 통해 그가 관객 참여 형식의 작업을 시도한 것은 전 세계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기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수면제를 복용했든 아니든, 즉 마류밍이든 펀     (芬)・마류밍이든 사람들과의 교류는 점차 유형화되었고, 오히려 진정한 소통과 교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사람 대신 10마리의 토끼를 풀어 사람과의 대화를 거절해버린 그는 2004년 홀로 만리장성을 걸은 후에 10년간 함께해 온 펀(芬)・마류밍과의 인연을 마무리했다.
실제로 마류밍의 실패한 첫사랑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기도 한 ‘펀      (芬)・마류밍’은 그로 하여금 이렇게 ‘분리’를 체감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끊임없는 그리움과 집착을 단절하기 어렵게 만드는 존재이기도 하다. 최근 작품들은 그러한 그리움 속에 진행되고 있는 반복적 관조와 사색을 보여준다. 과거 분리-연결된 자아를 게시, 조명했던 그는 이제 분리-연결된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묵상하는 듯 보인다. 일명 ‘누화법(漏畫法)’이라는 기법은 결코 정면으로 합치될 수 없는 캔버스의 양면을 안료라는 매개로 침투시켜 양자 사이를 배회하며 그 분리된 양면의 관계에 끝없이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20년간 분리-합일이라는 동일한 주제의 양면을 계속해서 왕복하는 마류밍의 작업세계는 그만큼 집요하고 어느 면에서는 자폐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더불어 동일한 주제에 관한 고민이 점차 관념적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는 점은 그가 다루는 주제와 40대 중반에 불과한 연령을 고려할 때 과연 충분한 것일까 하는 우문을 남기기도 한다.
이보연・성신여대 미술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