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윤지선 – Rag Face

윤지선  __  Rag Face

일우스페이스 5.8-7.2

윤지선은 자신의 초상 사진 위에 천을 덧댄 후 실과 바늘로 꿰매고 이어 붙여 새로운 얼굴들을 창조해낸다. 그렇지만 한 땀 한 땀 곱게 수를 놓아 사진 속 얼굴을 단장하려는 의도와는 거리가 멀다. 공업용 재봉틀의 굵은 바늘이 사정없이 훑고 지나간 사진 위에 남겨진 것은 누더기처럼 기워진 그로테스크한 여자의 얼굴과 엉킨 실타래를 늘어놓은 듯 산발한 머리뿐이다. 얼굴이 온통 바느질의 흔적들로 뒤덮였지만 두 눈만은 선명하게 드러나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는데, 그 눈과 마주치고 나면 아무리 사진이라 해도 얼굴에 바느질을 하는 행위가 얼마나 기괴하고도 불편한 감정을 유발하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윤지선의 이 그로테스크한 여인들은 그리스 신화 속의 메두사를 닮았다. 메두사는 아테나 여신의 저주로 아름다운 여인에서 흉측한 얼굴과 꿈틀거리는 뱀 형상의 머리를 한 괴물로 변하게 된 비운의 주인공이다. 서양미술사 속의 메두사는 주로 페르세우스에 의해 목이 잘린 후의 이미지로 묘사되었다. 봉두난발에 바느질 자국으로 뒤덮인 흉물스러운 얼굴만 덩그러니 남겨진 윤지선의 얼굴들은 그래서 메두사의 잘린 목과 그 고통스러운 비극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신화 속 메두사의 비극은 프랑스의 페미니스트 엘렌 식수 덕에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반전을 맞게 된다.《 메두사의 웃음/출구》라는 텍스트를 통해 식수는 메두사, 마녀 등 저주받은 역사 속 여성상들을 불러와 그녀들에게 덧씌워진 주홍글씨를 벗겨주고 그들만의 신명나는 이야기판을 벌이도록 한다. 메두사의 비극을 웃음이 가득한 희극으로 변모시킨 식수의 텍스트를 통해 메두사는 비극의 주인공에서 여성들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주체적 이야기꾼이자 작가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얼굴 사진 위에 가면처럼 덧씌워진 또 다른 얼굴이 메두사와 오버랩되면서 윤지선의 작품은 신화 속 메두사의 비극과 20세기 메두사의 희극이 씨실과 날실처럼 중첩되어 직조된 텍스트가 된다. 텍스트 같은 가면들을 바꿔써가며 이야기를 펼쳐가는 방식은 겹쳐 쓴 가면들을 한 꺼풀씩 벗어가며 관객들을 울고 웃게 하는 변검술사의 마술과도 유사하며, 윤지선의 얼굴들은 변검 쇼의 장면 장면을 기록한 사진 컷들의 집합처럼 보이기도 한다. 희비극을 넘나들며 연기하는 변검 극장의 메두사와 무수한 내러티브들을 직조하는 이야기꾼으로서의 메두사가 윤지선의 얼굴 위에서 다시 겹쳐지는 것이다.

전유신・독립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