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토픽] 아름다운 케이오스, 21세기의 앗상블라주

contents 2014.2. world topic | 아름다운 케이오스, 21세기의 앗상블라주
서상숙│미술사
“이제 더는 다른 사람의 예술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죠. 아니면 다른 사람의 예술에 대한 관심을 끓었다고 할까요. 그저 제 작품만 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더 이상 그런 일들로 나 자신을 버겁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건 원하질 않아요. 난 지금 완전히 자유롭습니다.”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를 앞두고 독일관 큐레이터인 니콜라스 샤프하우젠 (Nicolaus Schafhausen)이 선정작가인 이사 겐즈켄(Isa Genzken, 1948~)을 상대로 진행했던 인터뷰에서 21세기에 들면서 급격하게 변화한 작업에 대한
겐즈켄 자신의 대답이다. 당시 59세였던 겐즈켄이 이제 다른 작가들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만의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확언하고 있는 것이다. 중견을 넘어선 작가, 그리고 세계 미술계에 잘 알려진, 영향력 있는 이 작가의 놀랍도록 솔직한 고백을 독일관 카탈로그를 통해 읽으면서 무더운 날씨에 들이켜는 차가운 한잔의 얼음물처럼 시원함이 느껴졌다. 그 후 6년이 지난 올해 뉴욕의 근대미술관(MoMA, Museum of Modern Art)에서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대규모의 겐즈켄 회고전(2013.11.23~3.10)이 열리고 있다. 초기의 포스트 미니멀리즘 작업부터 최근의 앗상블라주까지 150여 점이 연대기 순으로 전시되고 있다.
이사 겐즈켄은 독일 출신의 조각가이다. 비중있는 미술관에서의 전시는 물론 베니스비엔날레(2007)와 세 번의 도쿠멘타에 선정되는 등 유럽에서는 매우 잘 알려진 작가지만 미국인에겐 비교적 낯선 작가이다. 아마 겐즈켄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미국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장미 한 송이를 극사실적으로 묘사한 높이 90미터가 넘는 조각품, <장미Ⅱ> 정도일 것이다. 1993년 작을 2007년 다시 만든 것으로 2010년부터 뉴욕 뉴뮤지엄 건물 앞에 3년 가까이 전시되었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작가들의 작가’라고 불리우는 겐즈켄을 미국에 대대적으로 소개하는 전시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프로타주 페인팅 등 초기 작품들도 다수 전시되고 있어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겐즈켄은 독일이 나치와 히틀러 그리고 유대인 학살이라는, 결코 잊힐 수 없는 오욕과 상처를 남긴 2차 세계대전(1939~1945) 직후인 1948년에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가 나치였으며 전쟁으로 인한 물질적, 정신적 폐허를 복구하
려던 전후 독일에서 성장했다. 몇몇 대학을 거치며 미술에 점점 흥미를 느끼게 된 겐즈켄은 당시 남자친구이자 뒤셀도르프 대학에서 미술이론을 가르치던 벤자민 부흘로 (Benjamin Buchloh, 1941~)의 소개로 1973년부터 1977년까지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1932~)의 문하에서 공부하면서 자신의 인생과 작품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현재 하버드 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인 부흘로는 1945년 이후의 전후 현대미술을 논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이론가 중 하나다. 겐즈켄의 전남편이며 지금까지 생존하는 작가 중 최고의 가격으로 그림이 거래된 바 있는 게하르트 리히터 작품에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결정적 인물이며 겐즈켄에 관한 책 《그라운드 제로》의 저자이기도 하다.
당시 뒤셀도르프 대학에서는 독일의 통념, 인습, 주류를 타파하는 급진적인 사고를 가진 교수들을 중심으로 개념주의에 기초한 사진과 퍼포먼스 아트 등이 실행되고 있었다.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1921~1986), 동독 출신의 리히터를 비롯 개념주의 작가 마르셀 브루타스(Marcel Broodthaers, 1924~1976) 등이 교수로 재직했다. 겐즈켄이 태어난 1948년은 전후 독일 미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보이스가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던 전쟁에서 돌아와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뒤셀도르프 미술대학(Kunstakademie Dusseldorf)에서 공부하던 시기다. 보이스는 1961년 이 대학의 조각과 교수가 되어 겐즈켄이 입학하기 한 해 전인 1972년 낙방한 학생들을 위한 시위를 벌이다 해임되었으나 겐즈켄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겐즈켄은 도시건축과 환경, 사진 등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고 있으며 1990년대까지 테크놀로지에 바탕을 둔 포스트 미니멀리즘, 개념주의, 비디오, 사진, 필름 등 여러 분야에서 조심스러운 탐구를 이어가던 아카데믹한 작업을 지속하다가 2001년 9월 11일 뉴욕에서 월드트레이드센터 테러 현장을 직접 목격한 후 급격한 변화를 보인다. 테러 이후 변화한 도시풍경, 미국이 이란·이라크등 중동에서 벌이는 전쟁이 야기한 긴장이 흐르는 앗상블라주 작업들이다.
<엠파이어/벰파이어(Empire/Vampire)>(2003~2004) 시리즈,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2007~2008) 시리즈, <오일(Oil)>(2007) 시리즈, <배우들(Schauspieler)>(2013) 시리즈 등이 테러 목격 이후의 대표적인 작업이다. <엠파이어/뱀파이어> 시리즈는 2001년 뉴욕 월드트레이드 센터가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그룹에 의해 공격당한 현장을 소재로 한 시리즈다. 미니어처 장난감 병정들이 총을 겨누고 어린아이들이 무너진 건물더미 위에 쓰러져 있으며 피로 범벅이 된 여성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서사적이며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이 같은 끔찍한 이야기의 전개가 실제 현대인의 도시 생활 주변에서 구한 레디메이드 오브제들을 조합해 만든 사실적 조각작품인 앗상블라주라는 방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테러와의 전쟁으로 시작한 21세기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그린 이 타블로(Tablau)들은 갠즈켄을 통해 재생산되면서 절망이나 위협을 넘어선 따뜻한 연민으로 승화돼 보는 이들과 소통한다. 그 소통을 통해 피로 얼룩진 전쟁터는 복구를 희망하는 아름다운 폐허로 변화하는 것이다.
겐즈켄의 미국, 특히 뉴욕에 대한 애정은 남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교시절 뉴욕을 처음 방문한 후 작업실을 얻어 장기적으로 머무는 등 지속적으로 방문했고 많은 작가와 교류해왔다. <나는 뉴욕을 사랑한다/열정이 넘치는 도시(I love New York/Crazy City)>(1995~1996)라는 사진책 형식의 작품을 만들기도 했고 시카고에서 스카이스크래퍼를 본 후 창문과 고층빌딩을 연상케 하는, 수지와 철 그리고 콘크리트로 만든 일련의 작품, <X>(1992), <창문(Fenster)>(1994) 시리즈가 나왔다.
2000년에 만든 <개 같은 바우하우스(Fuck the Bauhaus)> 시리즈는 뉴욕 등 미국의 견고한 건축물을 독일의 그것과 비교하면서 기능만을 강조한 ‘싸구려 건축물’인 바우하우스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시리즈는 겐즈켄의
본격적인 앗상블라주 조각의 시대를 예고한다. 예를 들어 <개같은 바우하우스 2>는 합판으로 박스를 대충 만들어 건축물을 상징하고 차이나타운에서 구한 “동성 팬시 (Dong Sung Fancy)”라는 상호가 선명한 종이 쇼핑백, 오렌지색의 공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네트, 피자박스, 조화 등이 테이프로 얼기설기 붙어있고 돌, 플라스틱 인조나무, 노란 장난감 뉴욕택시 등이 바닥 여기저기에 놓여 있는 작품이다. <바우하우스 3>과 <바우하우스 4>에는 합판으로 급조한 구조물 표면에 조개껍데기를 붙였다. 나이 40이 넘은 가난한 시인이 미술가가 되기로 작정했던 마르셀 부르타스를 연상케 해 미소를 짓게 한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조개와 텍스트를 즐겨 사용했던 대선배에 대한 존경의 제스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낸 여성작가의 삶의 기록
모마의 6층 특별전시장 입구에는 겐즈켄의 최근작 <배우들> 시리즈가 전시되고 있다. 마네킹에 로큰롤 스타일의 자유분방한 패션을 입혀 놓은 작품들로 전시장 입구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싸구려옷과 장신구들로 치장된 마네킹들은 분주한 주말의 도시풍경을 연상케 한다. 게이나 레즈비언, 혹은 클럽에 가려고 재미있게 한껏 드레스업한 사람들처럼 흥분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벽에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로큰롤 스타일의 패션이 눈길을 끄는 겐즈켄의 대형 사진과 마이클 잭슨이 포함된 그의 사진콜라주 등이 붙어있는데 한때 앤디 워홀에게 전화를 걸어 마이클 잭슨과 함께 밴드를 결성하자는 제의를 했던 작가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들이다. 화려한 <배우들>이 설치된 모마의 전시장 입구를 지나 들어서게 되는 첫 번째 갤러리에는 겐즈켄의 초기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두 개의 가느다란 막대를 세워놓은 <무제>(1974), 112개의 각기 다른 색을 칠한 단색 종이작업을 차례로 늘어놓은 <평행사변형(Parallelogram)>(1975>, 당시 일반인에게는 생소했던 컴퓨터로 무게중심을 계산해 바닥에 떠있는듯 놓여지도록 만든 <평행면/쌍곡면(Ellipsoids/Hyperbolos)>((1976~1983) 시리즈, 그리고 뉴욕거리에서 지나가는 행인들의 귀만을 찍은 <귀(Ohr)>(1980)도 전시되어 있다.
두 번째 전시실에는 겐즈켄의 1980년대와 1990년대의 플래스터와 콘크리트, 수지 작업들이 소개된다. 건축물, 특히 빌딩 이미지를 보이는 미니멀한 선과 형태를 지키면서 거친 표면을 실험한 것들이다. <밍 페이(Ming Pei)>(1985), <은행(Bank)>(1984) 등 콘크리트 작업과 <X>(1992), <창문(Fenster)>(1992) 등 수지와 철을 재료로 역시 빌딩을 연상케하는 한층 가벼워진 이미지의 모던한 추상작업들이다. 특히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프로타주 페인팅 등 1990년대 초반의 회화작업이 함께 소개되고 있다. 겐즈켄이 리히터와 이혼하기 직전의 작품들이다. 겐즈켄의 작업은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급격한 변화를 보인다. 평범한 오브제를 자유롭게 조합하고 변형한 사실주의 콜라주와 앗상블라주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1993년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11년간의 결혼생활을 청산한 이후부터 마치 자신을 억누르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듯하다. 겐즈켄의 초기 막대작업을 리히터는 “뜨개질 바늘”이라고 불렀고 그에 대해 겐즈켄은 “무기”라고 반박한 일화는 그들의 예술적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이혼 후 주거지를 콜론에서 베를린으로 옮기고 게이와 젊은 작가들과의 교류, 나이트 클럽을 통해 접한 테크노 음악의 세계 등 작가의 라이프스타일이 크게 변화한 것도 큰 영향 중의 하나로 꼽힌다. 현재 겐즈켄의 작업이 그의 나이와 관계없이엘리자베스 페이튼 등 젊은 작가들과 함께 기획 전시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만한 점이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요셉 보이스의 유명한 발언은 당시 유럽의 많은 젊은이에게 영향을 끼쳤는데 겐즈켄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베니스비엔날레에 출품한 <오일 XI>(2007)은 고양이, 렘브란트의 사진 등 콜라주가 붙여진 여러 개의 여행가방이 바닥에 놓여 있고 미국의 우주인 3명이 천장에 매달려 있는 작품으로 보이스의 <고통의 방(Schmerzraum)>(1984)을 연상하며 작업했다고 작가가 직접 밝힌 바 있다. <장미> 역시 보이스의 <직접적인 민주주의를 위한 장미(Rose for Direct Democracy)>(1973)를 연상케 한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은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말로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점은 마르셀 뒤샹의 <샘(Fountain)>(1917)이 현대미술의 사고에 끼친 영향이 증명하고 있다. 겐즈켄의 2000년 이후의 작업은 이 두 가지의 개념을 동시에 실천한다. 전후 독일에서 성장했으며 자신의 스승이었던 유명 작가와의 결혼과 이혼, 알코올 중독,바이폴라 우울증 등 개인적인 아픔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작품세계를 찾아 이루어낸 갠즈켄의 작업들은 묵묵히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낸 한 여성작가의 삶의 기록이기도 한다. 특히 겐즈켄의 조각은 1960년대 이후 잊혀졌던 아상블라주의 복귀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냈으며 그에 따르는 일련의 작가군이 형성돼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또 그가 오브제를 찾아 모으고 붙이고 자르는 복잡한 작업과정을 보조작가를 두지 않고 직접 한다는 것도 아이디어만 내면 작업 자체는 보조작가들이나 테크놀로지가 대신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현대의 미술계 풍토에 수제작업의 의미를 다시 한번 일깨우는 것이다. ●

이번 이사 겐즈켄 회고전은 로라 합트먼(50)이 지난 2010년 10월 모마의 큐레이터(조각과 페인팅부)로 임명된 후 수석 큐레이터 사비나 브레트바이저(미디어와 퍼포먼스부 Sabine Breitwieser)와 함께 2년여에 걸쳐 준비한 야심작이다. 합트먼은 1995년부터 2001년까지 모마 드로잉부의 부(副)큐레이터였으며 그 후 피츠버그 카네기미술관 현대미술부장을 거쳐 뉴욕의 뉴뮤지엄에서 일했다.
합트먼은 재능있는 작가를 유명해지기 전에 알아내는 ‘발굴자(picker)’라는 평판을 받고 있다. 현재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른 존 커린, 엘리자베스
페이튼, 뤽 튀망 등이 그가 발굴해낸 스타들이다. 이사 겐즈켄은 그가 뉴뮤
지엄에서 큐레이팅했던 <언모뉴멘털: 21세기의 오브제(Unmonumental:
The Object in the 21st Century)>에 젊은 작가들과 함께 초대했을 만큼
그가 “21세기에 주목할 만한 가장 영향력있는 작가”로 평가하는 작가다.
그는 겐즈켄에 대해 “지난 40년간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대담함으로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해온 작가”라며 “급진적인 사고방식과 창의력으로 일련의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밝힌다. <엠파이어/뱀파이어>, <그라운드 제로> 시리즈 등 뉴욕을 소재로 한 작품이 대량 전시된 것에 대해 “뉴욕 작업에 초점을 맞춘 전시는 아니다”라고 설명하면서 “2000년 이후의 작업은
대형작업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개 같은 바우하우스>를 포함, 주로 뉴욕을 소재로 한 것들이다”고 밝힌다. 그는 <그라운드 제로> 시리즈에 포함되어 있는 <오사마 패션스토어(Osama Fashion Store)>(2008)와 <디스코 순(Disco Soon)>(2008)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이라면서 <창문>, <귀>, <하이파이>, <월드 리시버> 시리즈처럼 초기 작품 이후 겐즈켄은 “현대사회
에서의 소통”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었으며 그가 그리는 것은 “절망보다는 희망이다”라고 말한다.

뉴욕=서상숙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