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REPORT | BRISBANE 8th Asia Pacific Triennial of Contemporary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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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최정화 < Alchemy > 아크릴 LED조명 가변설치 2015 < Cosmos > 2015 아래 < Mandala of Flowers > (바닥 설치) 플라스틱 병뚜껑 2015 ‘APT KIDS’ 프로그램으로 출품된 작업. 개막식에서 아이들이 최정화의 작품을 이용한 체험활동을 하고 있다

 1993년 처음 개최된 <아시아퍼시픽트리엔날레(Asia Pacific Triennial, APT)>가 올해 8회 대회를 맞았다. <APT>는 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미술관(Queensland Art Gallery)이 아시아와 태평양 인접 아시아 국가를 리서치하여 동시대 아시아 미술의 현장을 생생히 보여주려는 취지에서 설립한 전시다. QAG와 현대미술관(Gallery of Modern Art)에서 열린 <APT8>(2015.11.21~4.10)에는 특히, 한국의 최정화, 양혜규, 정은영 작가가 초청받아 그 의의를 더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APT8>의 현장을 현지 취재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 생생하게 전한다.
현지취재, 사진=황석권 수석기자

전시장에 펼쳐진 아시아의 미술지도

황석권 수석기자

한국보다 1시간 먼저 아침을 맞이하는 오스트레일리아 브리즈번(Brisbane). 오스트레일리아에서 3번째 규모의 도시인 이곳은 1859년부터 퀸즐랜드(Queensland)의 주도였다. 이곳을 방문한 이들은 대부분 태평양과 인접하여 놀라운 자연풍광을 뽐내는 골드코스트(Gold Coast)를 떠올릴 것이다. 그렇지만 도심에도 이런 광경 못지않은 문화적 즐길거리가 풍성하다. 한국에선 초겨울인 11월이 브리즈번에선 여름이다. 이곳의 강렬한 태양빛을 받으며 브리즈번 강을 건너자 퀸즐랜드미술관(Queensland Art Gallery, QAG)과 현대미술관(Gallery of Modern Art, GOMA)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주변에 문화 콤플렉스가 조성되어 있다. 이번 <APT>가 열리는 두 미술관을 비롯, 박물관과 과학관, 주립도서관, 대규모 공연장(QPAC)이 강변의 산책길에 조성되어 있어 산책을 하다 바로 미술관을 방문할 수 있다.
<아시아퍼시픽트리엔날레(Asia Pacific Triennial of Contemporary Art, APT)>는 바로 QAG와 GOMA에서 열린다. APT 측은 1993년 처음 열린 <APT>부터 지금까지 이 행사를 통해 소장품을 확충해왔다는 점에서 여타 비엔날레나 트리엔날레와 차별성을 갖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차별점은 몇 가지 더 있다.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인 ‘APT KIDS’를 1999년부터 전시에 적용해왔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책 출간과 원거리 거주 아이들을 위한 투어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2006년부터는 ‘APT CINEMA’를 열어 동시대미술과 영화(영상)의 조우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운영방식을 이어온 <APT>는 지금까지 누적관람객 240만여 명을 기록하고 있으며, 2009년에는 56만여 명이 다녀가 최다 관람객을 기록했다고 한다.
전시 형식에서도 차별점은 드러난다. 트리엔날레 형식을 취하지만 전시에는 특별한 주제가 없다. 여기엔 루벤 키한 (Ruben Keehan) QAG 아시아담당 큐레이터가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리서치에 근거한 학술적 연구의 결과로서 만들어진 전시에서는 큰 주제하에 작품을 늘어놓는 형식보다 상이한 작업을 비교하면서 보는 데서 유의미성을 찾을 수 있다는 전시기획팀의 의도가 숨어있다. 어떻게 보면 미술 빅이벤트들이 주제로 내세우는 ‘표어’들은 관람객에게 선입견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비평가들이 비슷한 평가를 내리게 만드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APT8>이 주제를 드러내지 않기에 오히려 관람객은 스스로가 나름의 주제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관람객은 주제를 찾고, 주어진 맥락을 따라야 하는 스트레스 없이 전시장을 누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전시 형식이 주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그것은 마치 아시아의 지도를 보는 듯한 경험을 하게 했다는 점이다. 이는 <APT>가 꽤 오랜 기간, 그리고 지속적으로 아시아 지역 작가에 대한 방대한 리서치를 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출품작가를 보면 이른바 지역적 치우침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이른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인 터키부터 ‘중동’으로 불리는 서아시아, 인도 및 중앙아시아, 그리고 한국과 중국, 일본이 있는 동아시아까지 아시아 지역을 섭렵해 보여준다. 따라서 주제에 따른 동선에 맞춘 디스플레이 방식을 취하지 않는데다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국가가 메인 공간을 차지하는 법도 없어 전시는 ‘비교’를 통한 관람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도작가 칼리얀 조쉬(Kalyan Joshi)의 <Hanuman Chalisa>(2015)나 몽골의 노민 볼드(Nomin Bold)가 제작한 <Tomorrow>(2014) 같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신화적 상상력 가득한 작품을 만나다가 필리핀 작가 라야 마틴(Raya Martin)의 <Now Showing>(2008) 같은 일상을 담은 영상작업을 보게 되는 식이다.
전시 장소별로 몇몇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자. 우선 QAG. 이곳에선 이른바 토속적(vernacular)인 작품이 꽤 많이 눈에 들어왔다. 주로 종족성이나 민속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작품이 점점 더 복잡한 양상을 띠는 동시대미술과 어떤 영향관계에 있는지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작가인 대니 멜러 (Danie Mellor)의 <Deep(forest)>(2015)은 작품 그 자체와 디스플레이가 마치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정글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인도 작가의 토속성 짙은 작품도 이번 전시의 백미로 꼽힌다. 앞서 소개한 대니 밀러의 작품과 비교하여 볼 때, 각 원주민 종족 고유의 종교성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칼파 파투아(Kalam Patua), 푸슈파 쿠마리(Pushpa Kumari), 만투 치트라카르(Mantu Chitrakar) 등의 인도작가는 우리가 알고 있는 형식과 요소, 그리고 사건이 담긴 작품을 출품했다.
GOMA는 설치와 영상작업이 주를 이뤘다. 대부분 아시아에 거주하는 이들의 일상과 사회상이 담긴 작업이었다. 중국 류딩(Liu Ding)의 <New Man>(2015)이나 필리핀 키리 달레나(Kiri Dalena)의 <Erase slogans>(2015), 뉴질랜드 안젤라 티아티아(Angela Tiatia)의 <Edging and seaming>(2013)이 그예다. 만나기 힘들었던 아시아 여러 국가의 작가 작품을 발견할 수 있었던 점도 흥미로웠다. 미얀마 민테인숭(Min Thein Sung)의 <Another Realm(horse)>(2014)은 만화를 출력해 부착한 벽면 앞, 천으로 외관을 덮은 군마상 작업이며, 네팔 힛만구룽(Hit Man Gurung)의 <Yellow helmet and gray house>(2015), 파키스탄 하이데어 알리 얀(Haider Ali Jan)의 <Laughing>(2008) 연작이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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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규 < Sol LeWitt Upside Down-Structure with Three Towers, Expanded 23 Times > 알루미늄블라인드 637.5×1127×707cm 2015

혼융, 그 자체로 정체성이 되다
이번 전시에는 한국에서 3명의 작가(양혜규, 정은영, 최정화)가 출품했다. <APT>는 첫 대회부터 한국작가가 꾸준히 참여했던 바, 양혜규와 최정화의 작품은 퀸즐랜드미술관 로비에 설치됐다. 양혜규의 출품작은 <Sol LeWitt Upside Down-Structure with Three Towers, Expanded 23 Times>(2015)다. 작가가 솔르윗에게 헌정하기 위해 제작했다고 밝힌 이 작품은 작가 특유의 표현방식인 블라인드를 연결하여 구축했다. 미술관의 높은 천장에 설치된 이 작업은 하부 풀(pool)에 놓인 다리를 지나며 감상할 수 있다. 10m 폭에 3m 높이의 규모로 QAG 로비를 장식하고 있다. 최정화의 작품은 바로 옆에 설치됐다. 그의 <Alchemy>(2015)와 <Cosmos>(2015) 또한 양혜규 못지않은 규모인데, 플라스틱 체인이나 구슬 등을 엮은 형형색색의 줄을 천장에서부터 늘어뜨린 형태다. 정은영 작가는 국극 배우의 세계를 조명한 <Act of Affect>(2013)를 출품했다. 전시기획 담당자는 “관람객들이 한국인의 삶, 특히 한국여성의 삶에 접근하게 하고 싶었다”는 취지를 밝혔다. 또한 한국 작가에 대해서는 “작품의 디스플레이에 있어 강렬하고 성숙함이 발현되어 매우 세련됐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앞서 전했듯 <APT>의 차별화된 프로그램 중 하나가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최정화의 작업도 전시와 아이들 프로그램에 동시에 출품됐다. 전시 오픈식이 끝나고 작품 아래에 마련된 원형의 놀이터는 최 작가가 마련한 여러 크기와 형태의 플라스틱 병뚜껑을 맞춰 색다른 형태를 만들며 노는 아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특히 주정부 문화부 장관이 이곳을 직접 찾아 아이들과 함께 놀이를 체험하는 광경은 이례적이었다. 이처럼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여느 미술 빅 이벤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다. 키한 큐레이터는 아이들을 미술관의 중요한 관람객으로 대하고 있다며 “관람객이 미술관에서 환영 받는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관람객은 환영받는다는 느낌이 없다면 전시장을 찾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예술작품은 관람객을 만날 특별한 기회를 놓칠 것이다. 아이들은 본디 창의적인 존재다. 그리고 어른이 거부하는 예술의 형태에 대해 매우 개방적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동시대미술을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관람객이다. 우리는 세계의 다양한 문화와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예술을 접하는 기회의 교육적 가치를 매우 높게 생각하고 있다”고 <APT>가 왜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중요시 하는지 설명했다. 그래서 매회 <APT>는 아이들을 위한 작품을 출품하는 작가를 선정한다고.
전시를 둘러보면서 <APT>가 왜 아시아미술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지 매우 궁금했다. 역사적으로 백호주의가 기승을 떨친 전력이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말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꽤 오랜 기간 이진 이민정책이 가져온 문화의 혼융이 이제는 바탕에 깔릴 정도가 되었을 것이고, 시장의 시대에 접어든 국제 미술계에서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 또한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스트레일리아는 서구이자 아시아라는 묘한 정체성을 가졌기에 “이 지역이 걸어온 문화적 정체성의 혼재와 전이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데 스스럼이 없다”는 점을 오히려 강점이자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유진상, 《월간미술》, 2016년 1월호, 104쪽) 즉, 그들은 여러 문화의 혼융을 스스로의 정체성으로 정의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분석에 대해 전시장에서 만난 오스트레일리아 미술계 인사들은 대체로 동의했다. 더불어 오스트레일리아는 아시아가 그토록 발견하려 발버둥친 아시아성에 대한 단서를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한다. “<APT8> 같은 전시는 모호하고 좀처럼 그 외양을 드러내지 않는 ‘아시아성’을 발견하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서구의 시선으로 보는 아시아미술의 면모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루벤 키한, QAG 아시아담당 큐레이터) ●

니콜라 몰레(Nicolas Mole)  2015

니콜라 몰레(Nicolas Mole) < They Look at You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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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즈번 강에서 바라본 GOMA전경

브리즈번 강에서 바라본 GOMA전경

interview

“아시아 미술의 특징은 오랜 역사와 빠른 변화의 조합”

루벤 키한(Reuben Keehan) QAG 아시아미술 담당 큐레이터

1993년에 시작된 <아시아퍼시픽트리엔날레(APT)>는 한국에서는 덜 알려져 있다. 우선 <APT>를 소개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하겠다.
<APT>는 아시아와 태평양 인접 아시아 국가의 미술에 초점을 맞춰 3년마다 퀸즐랜드미술관이 주최하는 대규모 전시회다. 전시는 갤러리 내부 기획으로 열리며, 다수의 출품작을 미술관이 소장하게 된다.
1993년 처음 열렸으며 서구의 미술관에서 아시아와 태평양 인접 국가의 미술을 선보였다는 독특한 전시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전시의 규모와 시야를 넓혔다. 1회 <APT>는 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한 남태평양과 동남아, 그리고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미술에 초점을 맞췄다가 제2회 <APT>부터는 이들 국가를 포함해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로 참여국을 넓혔다.

알려졌다시피 일반적으로 큰 미술이벤트는 특별한 주제를 내건다. 그러나 <APT>는 이러한 주제를 표방하고 있지 않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전시의 특별한 주제를 표방하지 않은 것은 무엇보다 <APT>가 매우 복잡 다양한 세계 미술작품을 아우른 학술적 연구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와 태평양 인접 국가에는 약 45억 명의 인구가 밀집해 있다. 따라서 특정 주제에 맞는 특정 작업을 찾는 것보다 상이한 작업들끼리 대화하게끔 하는 데 관심이 있다.
이렇게 해서 인도 토속미술 옆에 전시된 최정화 같은 작가를 보게 되는 것이다. 다른 세계의 예술을 비교하는 것에서 배우는 점이 많다.

이번 <APT8>은 오스트레일리아와 아시아, 그리고 태평양 인접국가의 동시대미술에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연구를 통해 발견한 아시아의 정체성과 아시아 작가의 특징은 무엇인가?
하나를 말하라면 아시아를 통틀어 발견되는 ‘융합’의 다른 정도라고 하겠다. 아시아는 수천년 동안 문화와 언어 그리고 전통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다. 서구화는 이런 점에서 비교적 최근에 벌어진 현상인데 작가들이 서구의 재료 혹은 테크닉을 이용하더라도 각자의 지식이나 경험에 의한 차별화된 시각에서 작업한다.
간혹 작가들이 자신들이 속한 커뮤니티와 관련 있는 이슈를 서구의 기법을 이용해 작업하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동시대의 이슈를 전통적인 기법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성이 내가 아시아 미술 전체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점이다. 나는 동시대 아시아미술 전문가로서 특히 한국, 중국, 일본의 미술에 특별한 배경지식을 갖고 있다.
여기는 세계적으로 매우 역동적인 지역이며 새로운 경향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미술계는 기반이 잘 구축된데다 늘 새로운 면모가 드러난다. 동시에 미얀마, 캄보디아 그리고 몽골 등지에서도 다양한 미술의 출현을 목격했다. 아시아의 오랜 역사와 빠른 변화의 조합은 매우 고무적이다.

한국에서 오스트레일리아 미술계는 매우 낯설다. 오스트레일리아 미술계에 대해 소개를 부탁한다.
오스트레일리아 미술은 유럽에서 온 정착민, 원주민, 그리고 1970년대부터 유입된 이민자, 즉 라틴아메리카, 중동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태평양 인접국가 등지에서 온 이들의 미술이 혼융된 매우 독특한 조합을 이루고 있다. 어떤 의미로는 관람객이 <APT>에서 목도하는 바가 오스트레일리아 사회의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누군가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오스트레일리아 미술은 국제적이지 않아, 해외에 많이 노출되지 못했다”라고. 그러나 오스트레일리아는 이미 국제적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미술의 강점은 앞서 말한 우리의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배우는 것이다.

이후 APT의 행보에 대해 묻고 싶다.
8회 <APT>를 개최하고 이제 겨우 한 숨 돌리고 있는 상태다. 다음 대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시기상조다. 다만 각 <APT>는 그 자체로 독립된 전시이지만, 연속된 전시이기도 하다. 다음 전시를 위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이다. 당장 할 일은 리서치 진행 계획을 수립하고 과거 22년간 전시를 녹여낼 수 있는 긴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다.
브리즈번=황석권 수석기자